역대 우리 왕조‧국가, 서민 폭염대책 마련에 사활
韓은 시대역행…정치인‧지망생, 공감대부터 갖추길
단두대와 척서단(滌暑丹)
덥다. 더워도 너무 덥다. 필자라고 해서 예외일 순 없다. 땀 흘려 일할 줄 모르는, 통장에 돈이 얼마 있는지 자신도 모르면서 마르지 않는 샘물로 여기는 일부 무개념 부잣집 2세들은 다르겠지만, 전기료 걱정하는 1인(人)으로서 필자는 에어컨 잠깐 트는 것도 조심스럽다.
영남(嶺南)이 고향인 필자는 약 20년 전 고향 떠나 지금은 집이 수도권 모처에 있지만, 이동의 불편성 때문에 서울 모처에 세 얻어서 서식 중이다. 먹이는 할인마트 등에서 수렵채취로 얻는다. 웬만한 월급쟁이 봉급으론 서울에 집 사는 건 어려운 게 현실이다.
통장에 숫자가 얼마 찍혀 있는지 매일매일 신경 쓰일 수밖에 없는 필자의 안방엔 자연히 선풍기 돌아가는 소리만 가득한 가운데 무더위가 흐르곤 한다. 찬물 끼얹고서 선풍기 앞에 앉아 있어도 냉기(冷氣)는 잠깐, 조금만 지나면 물기는 완전히 말라버린다.
얼마나 더우면 뒷골마저 땡길 정도다. 잠도 안 와서 지금처럼 야밤에 체조 아닌 칼럼을 쓰기도 한다. 냉동고에 넣어둔 시원한 맥주 따놓고 땅콩이랑 먹으면 금세 온(溫)맥주가 되고 만다. 배가 출출해도 평소 간식(間食) 같은 주식(主食)인 라면 하나 끓이기도 겁난다. 뜨거운 쌀밥도 속만 덥힌다. 요즘은 바깥에선 콩국수 등을, 집에선 비빔면 찬물에 헹궈 먹고 있다. 참고로 광화문 쪽에 김치가 기막히게 맛있는 콩국수집이 하나 있다.
필자는 아마추어 역사광. 더위도 잊을 겸 심심함도 잊을 겸 인터넷 등 찾아보고 타 자료들이랑 교차검증해보니, 과거에도 지금과 같은 가마솥더위는 존재했다고 한다.
왜군(倭軍)과 맞서 싸우며 이 땅을 지키신 충무공(忠武公) 이순신(李純信‧생몰연도 서기 1554~1611) 장군도 염(炎)장군 앞에선 백기 들었다고 한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당시 장군이 직접 서술한 난중일기(亂中日記)에는 ‘쇠도 녹일 듯한 더위’란 표현이 등장한다고 한다.
장군 본인도 수시로 복통‧식은땀‧몸살‧곽란(癨亂‧음식이 체해 토하고 설사하는 급성위장병) 등에 시달렸다고 기록했다. 지난해 1월 공주대 대기과학과 서명석 교수, 차소영 연구원은 한국기상학회 저널 ‘대기(Atmosphere)’ 기고문에서 “(폭염과 위생 등) 열악한 환경에서 생사(生死)를 다투는 전쟁, 그로 인한 불규칙한 생활, 과로‧스트레스에 의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전장(戰場) 누빈 거친 바다사나이마저도 쉽사리 이기지 못한 염장군 앞에 역대 한민족(韓民族) 왕조는 종종 대책을 강구하곤 했다.
교육부 산하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자료에 따르면, 기원전 4세기 또는 기원전 2세기경부터 서기 494년까지 북만주(北滿洲)에 존재한 예맥족(濊貊族) 국가 부여(夫餘)는 가뭄이 그치지 않으면 왕을 ‘처형’했다고 한다. 조선시대 세종대왕(世宗大王‧1397~1450)의 경우 가뭄이 지속되자 열흘 밤을 지새울 정도로 대책마련에 심혈 기울였다.
고려(高麗)는 1050년께 뙤약볕이 내리쬐자 성벽(城壁) 보수공사를 중단했다. 조선왕조도 1430년 건축공사를 중단시켰으며, 1794년엔 수원 화성(華城) 공사장에 척서단(滌暑丹)이라는 약을 대량 보급했다. 해당 약은 정조대왕(正祖大王)이 특별히 지시해 만든 신약(新藥)으로, 속을 축여주고 열을 내려 서병(暑病‧열사병) 사망자는 단 한 사람도 없었다고 한다.
실외기 빵빵한 섬동네
민생(民生)현장과 지근거리인 전국 각 지자체가 8월의 폭염에 대비해 방책 짜내고 있다.
서울시의 경우 1일부터 시(市)‧자치구 공무원 수백명을 동원해 오전 9시~오후 7시 폭염상황 관리, 응급환자 구급활동, 취약계층 보호활동 등 상황대처에 임하고 있다. 도로 노면(路面) 온도를 낮추기 위한 살수차는 기존 160대에서 212대로 늘렸다. 대구시도 특히 쪽방촌 폭염피해 예방을 위해 다량의 에어컨을 지원하는 한편, 사회복지공동모금회 후원으로 7~8월 전기료를 월 5만원 한도로 지원하기로 했다.
그런데 유독 ‘섬동네(여의도)’ 등은 조용하다. 내년 총선을 감안해서라도 여야가 경쟁적으로 뭔가 대책을 쏟아내도 모자랄 판에 이상하게 조용하다. 국회의사당‧국회의원회관 등에 빵빵하게 돌아가는 에어컨이 ‘섬노예’, 즉 국민의 공복(公僕)의 머리 또는 위기감을 무뎌지게 만든 건지도 모르겠다.
다만 필자가 다년간 출입반장 등으로 국회밥 먹어본 결과에 의하면, 어디까지나 개인적 생각이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상당수 ‘섬노예들’은 서민(庶民) 삶을 겪어본 적 없기에 공감대가 없거나 관심이 없다는 것이다.
여의도든 외제차든 100평대 집이든 실외기가 24시간 허리케인처럼 돌아가기에, 적잖은 정치인과 ‘2시 청년’ ‘10시 청년’들은 “이렇게 시원한데 왜 저 사람들은 난리지?” 고개 갸웃거리거나, “너희는 더워라. 난 아니니까. 멍멍꿀꿀” 식이다.
마찬가지로 필자의 개인적 생각이지만, 적어도 국민의 공복이라면 국민 삶에 공감할 줄 아는 자세는 기본으로 깔려야하지 않을까 싶다. 이러한 정신이 이 땅에 부재(不在) 중이기에 새만금 잼버리(Jamboree) 같은 사태 빚어진 건 아닌가 싶다.
그저 필요할 땐 이용해먹고, 필요 없어지면 막 대하는 자세는 결단코 지양(止揚)돼야 한다. 누구든 사람을 바보취급하면 안 된다. 부여는 개념 없고 일 못하는 정치인은 밥 먹고 물 마실 자격 없다는 식으로 아예 목을 쳐버렸다. 부여의 후손인 대한민국도 그러하지 말라는 법 없다.
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email protected]
언제나 좋은 칼럼 적어주셔서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더 좋은 칼럼 위해 부단히 노력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 더위의 가장 큰 애로사항은 짜증이 난다는 것을 꼽습니다. 건설적인 계획의 의욕을 저해하고 쉽게 싸움이 나며 일의 능률도 떨어집니다. 그리고 관리자로서는 기회로 봅니다. 이때 뿌리는 구구콘과 얼음컵 음료는 적은비용으로 고효율을 뽑는 사원복지를 실현합니다. 팀원의 감정을 통제하고 사기를 진작하고 한몸이 될수있는 절호의 기회. 드라마입니다.
정치인에게 그런 적극적인 액션은 바라지도 않습니다. 짜증이나고 안그래도 더워서 천불이 나는데 여전히 정치인의 뚫린 입에서는 구구절절 상대에 대한 비방과 불평, 그리고 변명만이 새어나옵니다. 단순히 한마디, 더워서 힘드시죠? 같이 힘내봅시다라는 말을 꺼내기가 그렇게 힘이듭니다. 이자들은 분명자신이 서있는 위치가 관료나 의원이 아니라 인터넷 댓글러나 평론가라고 생각하고 있는것이 분명합니다.
대충주의 한탕주의 선민사상이 판 치는 서글픈 세상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