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로그인

아이디
비밀번호
ID/PW 찾기
아직 회원이 아니신가요? 회원가입 하기

어제 한 학생이 언급한 감성대한민국

profile
두요노덴마크심

 

스크린샷 2025-03-20 오후 6.34.28.png.jpg<사회적 살인>

 

며칠 전, 배우 김새론 씨가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은 걸로 추정되죠. 스물다섯의, 너무나 짧은 삶이었습니다.

 

영화 아저씨를 다시 보는데, 앞서 틀어드린 장면을 보고 심경이 복잡했습니다.

 

예, 분명 김새론은 잘못을 했습니다. 2022년 5월, 만취 상태로 음주운전을 했고, 사고를 냈죠. 다행히 인명피해는 없었습니다만, 변압기를 들이받아 인근 상점 여러 곳에 전력이 끊기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이 정도로 끝난 게 천만다행이죠. 음주운전은 잠재적 살인입니다. 주취자가 핸들을 잡는 순간 자동차는 도로 위 흉기가 되고, 누군가의 생명을 빼앗을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우리 사회는 유독 연예인이나 유명인에게 가혹합니다. 당장 대통령 유력 주자이자 제1야당 대표라는 사람이 음주운전 전과자입니다. 이재명, 설훈, 손학규, 허은아, 이상민, 정의용, 허영, 박용진 등, 여러 차례 국회의원을 하고, 공당의 대표나 최고위원을 하고, 장관까지 한 사람들도 음주운전 전과가 있습니다. 지난 22대 총선에서 음주운전 전과가 있거나 음주측정 거부 전과가 있는 후보만 국민의힘에서 22명, 민주당에서 21명이 나왔습니다.

 

저는 국가공동체를 이끄는 이런 권력자들에게 적용되는 도덕적 기준이, 연예인이나 일반 유명인에게 적용되는 것보다 훨씬 더 엄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정반대죠. 권력자의 이런 잘못은 크게 이슈가 되지 않습니다. 그저 좌우 정치 싸움으로만 소비될 뿐, 범대중적 비난이 일지 않습니다. 목숨 걸고 쉴드치는 사람들이 있으니까요. 하지만 연예인이나 유명인이 이런 잘못을 했다? 난리가 납니다. 온 나라가 돌을 던지죠. 만만하기 때문입니다.

 

대중의 인기로 먹고사는 게 연예인입니다. 그런 연예인이 구설에 올라 대중적 비난을 받는 순간, 대한민국에서 가장 만만한 표적이 됩니다. 그렇게 도덕적 비판을 명분으로 내세운 집단적 왕따와 괴롭힘이 시작되죠.

 

아시다시피 저는 그간 대한민국의 이런 광기어린 캔슬컬쳐와 조리돌림에 대해 여러 차례 비판해왔습니다. 여러 유명인들을 죽음으로 몰고간 이런 사회현상은 해외에서도 주목하고 있죠. 외신도 유명인에게 지나치게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는 한국 사회에 대해 조명한 바 있습니다. 이번 김새론 사망 사건도 매우 비판적으로 보도하고 있죠.

 

이런 이야기를 하면, 꼭 나오는 반응이 있죠. “그래서 쟤가 잘못이 없다는 거냐?” 이번 경우에는, “그래서 음주운전을 한 김새론이 잘못하지 않았다는 거냐?”가 되겠네요. 이전 영상들에서도 지적한 부분이지만, 이건 논리 모순입니다. 이런 질문은 문제의 본질을 ‘잘못의 유무’로 바꿔버립니다. 답변은 “잘못을 하긴 했지”가 될 수 밖에 없고, 그렇게 한 개인에 대한 국가 차원의 집단적 괴롭힘에 대해 문제의식을 느끼는 사람으로 하여금 “잘못한 사람”을 쉴드치는 입장이 되게 합니다. 이건 틀린 질문입니다. 올바른 질문은 이겁니다. “저 사람이 그 잘못에 비례한 벌을 받고 있는가?”

 

군중의 법정에는 비례의 원칙이 적용되지 않습니다. 잘못한 만큼 죗값을 치르는 게 아니라, 잘못한 순간 무슨 괴롭힘을 당해도 된다는 식의, 그런 도덕적 확신에 가득찬 야만적인 군중들의 폭력만 있을 뿐입니다.

 

김새론의 경우를 볼까요. 22살의 어린 나이에 저지른 잘못. 그녀는 음주운전 사건 이후 사법부가 판시한 죗값을 치렀습니다. 물론 벌금을 냈다고 음주운전이라는 큰 잘못에 대한 도의적 책임을 모두 졌다고 볼 수는 없을 겁니다. 하지만 김새론은, 제가 보기에, 다른 음주운전자에 비해 훨씬 더 많은 사죄와 반성을 했습니다. 자필 사과문을 올린 이후, 그녀는 성실하게 조사를 받았으며, 전력이 끊겨서 피해를 받은 상가들을 직접 찾아가서 사과를 했다고 합니다. 김새론이 개인적으로 찾아와 사과를 하는 모습을 보고 상인들은 놀랐다고 하죠. 금전적 피해도 보상을 해줬다고 합니다. 한 곳만 너무나 큰 금액을 요구해서 돈을 주지 못했다고 합니다.

 

이 사건 이후 김새론의 삶은 매우 힘들어집니다. 이 일로 그녀는 여러 방송 활동에서 하차를 해야만 했고, 방송국에서 출연 정지 처분을 받습니다. 약 7억 원 정도로 추산되는 막대한 위약금도 지불해야하는 상황이었죠. 하지만 경제활동이 어려워진 상황. 돈을 벌 방법이 없었습니다.

 

김새론은 실질적 가장이었습니다. 그동안 번 돈은 모두 부모님 사업자금과 가족 생활비로 써서 재산이 거의 없었다고 합니다. 동생과 함께 살던 집은 소속사 명의였는데, 계약이 해지되며 그 집에서도 나오게 됐습니다. 그렇게 빚더미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생활고에 시달리게 됩니다.

 

김세론은 돈을 벌기 위해, 그리고 배우로써 재기하기 위해 발버둥칩니다. 생계를 위해 하루종일 카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는 한편, 연극 오디션을 보며 복귀를 시도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이런 김새론을 집요하게 괴롭힙니다.

 

음주운전 사건으로 밉상이 되어버린 김새론은, 언론, 유튜브, 커뮤니티 등에 의해 지속적인 공격을 받습니다. 일관되게 부정적인 이야기들이 쏟아집니다. 지금 보여드리는 기사 제목들을 보시죠. 무려 언론이 이런 짓을 했습니다. SNS에 좋아요 눌렀다고 난리를 치지 않나, 반성이 없다 그러고, 관종이라고 비난합니다. 지인과 개인적으로 주고받은 댓글에도 시비를 걸고, 친분과시니, 어그로니, SNS 병이니 온갖 황당한 이유로 공격합니다. 음주운전 사건으로부터 무려 3년이 지난 시점에 셀카를 올렸는데, 그걸 가지고 반성이 없다며 시비를 겁니다. 이런 논란 때문에 게시글을 삭제하자, 이번에는 또 삭제했다고 난리죠. 김새론이랑 전혀 관련 없는 불법도박을 엮어서 공격하기도 하고, 김새론이 공유한 영화의 한 대사를 끌고와서 마치 김새론이 욕을 한 것처럼 기사를 쓰기도 합니다. 기자라는 인간들이, 언론이라는 기관이, 거짓으로 한 사람을 인격살해한 겁니다. 조회수를 위해서요.

 

유튜브와 커뮤니티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에서는 대중적으로 미움받는 사람이면, 어떤 새빨간 거짓말을 해도 상관이 없는 것 같습니다. 인터넷은 그런 지옥같은 공간이죠. 누군가를 괴롭힘으로써 자신의 초라한 인생에 조그마한 힘을 느껴보고 싶은 사이코패스 같은 인간들이, 밑도 끝도 없는 뇌피셜과 거짓말로 김새론을 괴롭힙니다. 심지어는 언론이 이런 거짓말을 기본적인 팩트체크조차 하지 않고 보도합니다. 그렇게 생활고가 가짜라는 둥, 카페에서 알바하는 게 연출이라는 둥, 김새론이 힘든 척 하면서 뒤에서는 부귀영화를 누리며 온갖 악행을 일삼는다는, 그런 악당으로 만들어버립니다. 그녀에게 쏟아진 비난의 내용들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이렇다 할 내용도 없습니다. 음주운전 말고는 딱히 논란이나 잘못한 게 없는 게 김새론이다보니, 그냥 억지스럽게 프레임을 짜서 공격할 뿐입니다.

 

이미 김새론이 무슨 잘못을 했는지는 더 이상 중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온 나라로부터 미움을 받고 있다는 게 중요한 거죠. 악인으로서 이미 낙인이 찍혔고, 좌표가 찍혔습니다. 그때부터 사람들은 아무 구실이나 갖다붙여 김새론을 공격했습니다. 잘못을 해서 욕하는 게 아니라, 그냥 욕하려고 욕하는 겁니다. 욕하는 것 자체가 목적이 된 거죠. 따분한 일상 속, 억눌린 폭력성을, 김새론이라는 ‘동네 북’에게 푸는 겁니다. 마치 학창시절 힘없고 따돌림 당하는 그런 친구를 괴롭히며 낄낄거리던 저열한 인간들과 조금도 다를 게 없습니다. 그러면서 자신들은 나쁜 사람을 비난한 거라는 식의, 비뚤어진 도덕적 우월감까지 느끼면서요.

 

스물 두 살의 나이에 저지른 한 번의 잘못으로 인해, 김새론은 수 년을 이런 지옥 속에서 살아야만 했습니다.

 

극심한 생활고와 정신적 고통을 겪던 김새론은, 이름을 ‘김아임’으로 개명하고 새출발을 하려고 했습니다. 개명한 이름으로 카페에 지원서를 쓰고 면접을 봐서 아르바이트를 시작했습니다. 안경을 쓰고, 이름을 바꿨기에 카페에서도 그녀의 과거를 몰랐다고 하는데요. 아르바이트중 사진이 찍혔고, SNS와 온라인 커뮤니티에 그녀가 김새론이라는 사실이 알려지자, 카페에서는 김새론이냐며 해고 통보를 했다고 합니다. 새출발을 하려고 해도 계속 이렇게 과거가 발목을 잡았고, 생계를 위해 일하는 것조차 쉽지 않은 상황이었습니다. 한편, 김새론 관련 검색어로 지속적으로 뜨는 악성 기사와 유튜브 영상, 커뮤니티 글에 의해 심적 고통은 나날이 더해져갔습니다. 루머가 루머를 낳았고, 김새론이 왜 이렇게까지 욕먹어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람은 없었지만, 일관되게 부정적인 이야기들은, 김새론을 잘 모르는 사람조차 뭔가 문제가 있는 사람이라는 인식을 가지게 만듭니다. 꾸준히 정신과 치료를 받아왔지만, 이런 괴롭힘이 사라지지 않는 이상, 문제의 원인이 해결될 수는 없었죠.

 

그렇게 김새론은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22살 음주운전 이후, 지난 3년간, 정신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고통받아왔던 그녀는, 결국 그런 선택을 했습니다.

 

온 나라가 이제 막 성인이 된 그녀를 물고 씹고 뜯으며 괴롭힘의 대상으로써 착취했지만, 그녀의 고통을, 그 죽음을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그저 괴롭힘이 멈췄을 뿐입니다. 아마 이런 비보가 전해지지 않았다면, 그녀는 여전히 용서받지 못했겠죠.

 

언론, 유튜브, 소셜미디어, 커뮤니티 등등. 여러 매체에서 여러 사람들이 김새론을 괴롭혔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이제와서 사람들이 과했다는 이야기들을 하며, 마치 본인들은 아무 책임이 없는 양 굴고 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 사회는 미쳐가고 있습니다. 매일매일 바뀌어가는 이슈 속에서, 누군가를 타겟으로 잡고 괴롭히며 분풀이를 하고 스트레스를 푸는 그런 사회가 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화형대에 올라가는 마녀는 매일매일 바뀝니다. 사람이 컨텐츠로 소비되고 있고, 한 인격이 심심해서 질겅질겅 씹다가 질려버리면 퉤 하고 뱉어버리는 그런 껌같은 존재가 되고 있습니다.

 

오늘 영상 제목이 “김새론을 죽인 사람들”입니다. 아마 이 제목을 보고, 누구를 욕해야 하나 하며 들어오신 분들도 계실 거라고 생각합니다. 글쎄요. 김새론을 집요하게 괴롭힌 기자, 유튜버, 네티즌 몇 명을 문제삼고, 그들을 또 괴롭힌다고, 이 문제가 해결될까요? 천만에요. 이건 김새론을 괴롭힌 사람 몇 명 찝어서 비판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의 이슈 소비 문화 자체가 바뀌어야 합니다. 수요가 존재하는 이상 반드시 공급이 존재합니다. 이런 사회 풍조 자체를 바꿔나가지 않으면, 이런 사회적 살인, 인격 살인은 계속해서 반복될 것이고, 매일매일 또다른 피해자가 등장할 뿐입니다.

 

우리가 죽인 겁니다. 우리가 공동체로서, 한 약자를 표적으로 삼고 괴롭혀, 죽음에 이르게 한 겁니다. 이야말로 세계 앞에 수치스러운 더러운 K 컬쳐입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우리 사회의 뒤늦은 반성과 후회가 그녀를 되살릴 수는 없겠지만, 또 다른 피해자가 생기는 건 막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우원재였습니다.

댓글
0
댓글 쓰기
권한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