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 리살(José Rizal) 박사는 작가, 의사, 언론인, 예술가, 사업가 등을 겸한 필리핀의 민족주의 운동가로, 필리핀의 민족영웅 중 가장 위상이 높은 인물입니다.
그는 당시 스페인 식민당국이 필리핀에 저지른 악정을 폭로하고 필리핀인들에게 스페인인들과 동등한 권리를 나눠줄 것을 요구하는 민족주의 운동을 전개했습니다.
1861년 6월 19일 스페인 치하 필리핀의 라구나성(Lalawigan ng Laguna) 칼람바시(Lungsod ng Calamba)에서 중국인, 일본인, 스페인인, 원주민 혼혈로 태어난 그는 어렸을 때부터 마닐라(Manila)로 가서 명문교육을 받고 1882년 서구의 여러 나라들에 유학을 다니며 22개국어를 구사하는 등 당대의 저명한 석학들에게 상당한 수재로 주목받았습니다.
그러나 거기서 인종차별을 겪고 나서는 민족주의 운동을 벌였고, 그의 대표작이자 스페인 식민당국이 필리핀에 저지른 악정을 폭로하는 소설 《놀리 메 탕헤레》(Noli Me Tángere)와 《엘 필리부스테리스모》(El Filibusterismo) 등도 이 때 발표했습니다. 스페인 당국은 그의 책들을 금서로 지정했으나 그는 1887년 8월 5일에 필리핀으로 돌아와서 스페인 신부들이 필리핀 소작농들을 착취하는 것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습니다.
이 때문에 그는 스페인과 모국에서 반체제 인사로 찍혀 자신의 소설 《놀리 메 탕헤레》(Noli Me Tángere)의 여주인공의 모델이 된 레오노르 리베라(Leonor Rivera)와의 혼인성사에도 실패하는 등 갖가지 수난을 겪어야 했으나, 뜻을 굽히지 않고 1892년에 라 리가 필리피나(La Liga Filipina)라는 비밀결사를 결성하는데, 훗날 필리핀혁명(Himagsikang Pilipino)을 연 안드레스 보니파시오(Andres Bonifacio) 장군도 저기서 일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해 7월 스페인 식민당국은 그를 잠보앙가성(Lalawigan ng Zamboanga) 다피탄시(Lungsod ng Dapitan)로 유배보내면서 그가 결성했던 라 리가 필리피나도 강제로 해산되었으나 유배지에서 그는 자신이 모은 재산으로 학교와 병원을 세우고 교육과 농업에 종사했습니다. 그리고 4년의 유배기간 동안 그의 동문들과 예수회 신부들이 지속적으로 구명운동을 벌였지만, 그의 밑에서 일했던 안드레스 보니파시오 장군이 1896년 카티푸난(Katipunan)을 결성하면서 필리핀 내부에서 스페인에 저항하는 무장독립투쟁이 시작됩니다.
정작 리살 박사 본인은 무장독립투쟁이 아닌 비폭력운동을 통한 권리보장을 설파하고 다닌 것과는 다르게 스페인 식민당국은 그를 카티푸난의 배후로 단정짓고 바르셀로나(Barcelona)에서 당시 스페인의 또다른 식민지였던 쿠바로 봉사활동을 가려던 그를 체포해 마닐라로 압송한 뒤 반란죄로 사형을 선고합니다. 그리고 그 해 12월 30일 그는 《마지막 인사》(Mi último adiós)라는 시를 남기고 양 팔을 결박당한 채로 총살형에 처해져 젊은 나이에 생을 마감했습니다.
그의 유해는 무덤도 없이 비밀리에 매장당했다가 그의 누이의 노력으로 그의 유해가 묻힌 곳을 찾았는데, 오늘날 그곳에는 그를 기리는 리살공원(Liwasang Rizal)이라는 큰 공원이 세워져 있습니다.
그의 죽음으로 필리핀인들은 더 이상 스페인에 충성할 이유가 없어져서 대부분 카티푸난에 입대해 무장투쟁에 가담했습니다. 이후 미국이 스페인과의 전쟁에서 이기면서 필리핀은 1898년에 쿠바와 함께 독립했다가 미국의 식민지배를 받게 되는데, 미국에서도 그의 업적을 인정하여 그가 총살형을 당한 날인 12월 30일을 필리핀의 공휴일 중 하나로 지정했습니다. 그리고 필리핀이 완전히 독립한 뒤에도 그의 기일은 현재까지 필리핀의 공휴일 중 하나로 남아있습니다.
필리핀 뿐만 아니라 동북아에서도 중국의 손중산(孫中山), 인도의 라빈드라나트 타고르(Rabindranath Tagore)와 함께 동양을 대표하는 위인으로 널리 이름을 알렸으며 특히 필리핀의 군사동맹국 중 하나인 한국의 조선회사 현대중공업에서는 2019년 그의 이름을 딴 호세 리살급 호위함(Jose Rizal-class Frigate)을 건조해 필리핀 해군에 보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