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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소] 눈 온다

오주한

한양 섬동네에도 눈이 온다. 왜 겨울이 이리 따뜻하나, 이러면 여름에 쪄죽는다 집 앞 편의점 어리고 성실한 알바남동생에게 얘기했던 게 어느덧 보름 전인데.

 

춥다. 경기도 모처의 집 냅두고 일터와 가까운 데 떠도는 홀애비종 외기러기과인 필자의 새로운 도래지 서식지 둥지 튼지 이제 두 달 쯤 된다. 이사 첫 날에도 그랬고 엊그제도 뭔 보일러가 안 돌아가서 냉방에 찬물이라 집주인에게 얘기해야 되나 다이얼 돌릴 뻔 했는데, 요행히 지금은 잘 돌아가서 골방에 홀로 이불 덮고 등 지지고 있다. 가스비 얼마 나올진 모르겠다만..

 

사십하고도 숫자 몇개 더할 나이 되니 눈이 와도 별 감흥이 없다. 구둣발 신고 다니다 미끄러지지 않을까 신경쓰일 뿐이다. 구청이 염화나트륨 뿌리나 안 뿌리나 보면서.

 

그래도 이제 막 유치원인 집안 꼬맹이들 눈싸움하며 히히거리는 것 보면 잊고 지냈던, 감흥도 없었던 동심이란 게 새삼 샘솟긴 한다.

 

연말이다. 며칠 또 있으면 한 살 더 먹는다. 송년회 몇 번 다니다보면 새해 오는 줄도 모른다. 더구나 필자 업계는 성탄절에도 신정에도 일해야 한다.

 

그럼에도 틈틈이 아이들 환한 웃음 떠올리며 애써 여유를 찾고자 한다. 동시에 근미래에 이 홀애비에게 시집 올지도 모를 이름도 얼굴도 미상인 미지의 여자, 심성 착한인생의 동반자도 누굴지 철없는 상상해보고.. 못난 아빠 뽀뽀해줄 미래의 내 아가야도 상상해보고..

 

팍팍하다 못해 남미 멕시코 북부처럼 돼 가는 사회도 여유를 스스로 찾는 풍토 되길. 살기는 억눌러지길.

 

ps. 한강 이남 일부 지역은 인외마경이었는데 그래도 섬동네는 상대적으로 짐승이 아닌 사람들 사는 동네인 듯하다. 예전 일터 삼아 오갈 땐 몰랐는데.. 이사 잘 온 것 같다, 일단은. 이사 직후 대낮에 뽕 빨았니 어쨌니 집 근처에서 태연히 떠들던 뽕브라더스들도 귀신이 경찰이 검찰이 안전제일부가 잡아갔는지 안 보이고.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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