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떻게 풀 것인가
윤석열 정부와 의료계의 충돌엔 비(非)전문가로서 섣불리 개입하지 않겠다.
그러나 상식인으로서 한 가지만은 강조한다.
1885년 4월 10일 《제중원(濟衆院)》이 한국 최초의 서양의료기관으로 선 것은, 미국 선교사 호러스 뉴턴 알렌과 조선 정부의 [대결] 아닌 [협력]이 있었기에 가능했다는 사실이다.
그 후 서양 의료계는 한국 근대화 과정에서 《왕권→식민통치권→대한민국 관권》이 한 몫 외에, 민간으로서 할 몫을 톡톡히 했다. 의료교육, 의료인 양성과 배출, 병원운영에서 특히!
■ 한 의사의 삶과 죽음
6.25 전쟁 때는 민간 의료인들의 상황이 더욱 처절해졌다. 한국의 슈바이처 장기려 박사의 사연은 눈물겹고 비통하고 감동적이다.
그는 전쟁 중 이동하면서 부인을 놓쳤다. 아들만 데리고 남하했다.
부산 영도(影島)에서 목사님들과 함께 무료병원을 열었다. 평생을 [기독교 정신 + 의료봉사 + 아내 그리움]으로 살았다. 제자들이 사모님과 편법으로라도 만나게 해보겠다고 했다. 그는 말했다.
“이산가족이 나 하나인가. 어찌 혼자서 그런 특혜를 바라겠는가?”
그는 1995년 눈을 감았다. 2004년 아내의 편지가 올 줄도 모른 채.
아내는 적었다.
“그리운 당신에게. 기도 속에서 늘 당신을 만납니다. 미안해하지 마세요. 힘든 일이 생길 때마다 당신에게 물었습니다. 당신은 당신 생각을 말해 주었습니다. 전 그대로 했습니다.”
부인은 그해 부군 뒤를 따라갔다.
■ 의료는 무엇인가, 근본적 질문
오늘의 [의·정] 갈등과 관련해 그 어떤 [정치공학적 타결책(妥結策)]을 내놓기보다는,갑자기 의료인 장기려의 《성령으로 말미암은 일대기》를 상기하는 충정은 다른 데 있지 않다.
모든 유의미한 의료적 결단 원점에는 [기교적 방편] 이전에 《고매한 영성》과 《아름다운 감성》이 먼저 터 잡고 있어야만 순서라고 느낄 따름이다.
장기려 박사와 그 부인이 언제 [정치적 해법] 같은 걸, 말이나 했던가?
노(no).
그들은,《의료인의 소명(召命)+히포크라테스의 선서+지순한 사랑》을 전인적(全人的)으로 살았을 뿐이다.
이걸 객관화하면, 이런 설명이 가능할지 모른다.
※ 의료 먼저냐, 정부 먼저냐, 갈등히는 건 부질 없다.
※ 정부가 태어나기 [전에] 민간 의료계가 있었다. 이걸 존중해야 한다.
※ 의료에 대한 국가지배, 관료지배는 안 된다. 권위주의적 통제도, 설익은 좌파 통제도 금물이다. ■ 한국 의료진, 대단하다
최근 한 기업인이 수술을 받고 퇴원했다. 그는 감탄했다.
“한국 의사들, 간호사들 [최고]더이다!”
의료개혁이 필요하면 해야 한다. 그러나, 그 [최고]들의 자발성과 자긍심이 존중되는 개혁이어야 한다.
장기려 박사님 내외분, 여기 이곳에 임하소서!대한민국 의료발전을 지도하고 기도해 주소서!
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24/09/24/2024092400001.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