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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담] 더불어막간당의 의정질서 말살

오주한

말 그대로 지극히 개인적인 소견의 담론

도 넘은 국회의장 겁박에 곳곳서 장탄식

 

여기 정치인이라 쓰고 시정잡배라 읽는 물건이 있다. 남북조시대(南北朝時代) 동위(東魏)의 실권자 고징(高澄‧생몰연도 서기 521~549)이 주인공이다. 고징의 부친 이름은 하필 고환(高歡)이었다.

 

북제서(北齊書) 등에 의하면 고징은 어려서부터 색마(色魔)로 악명 떨쳤다. 그는 아버지의 애첩인 정대차(鄭大車)와 간통하다가 딱 걸렸다. 고환은 고징을 내쫓으려 했으나 아들의 어미를 생각해 차마 그러지 못하고 그만뒀다.

 

정신 못 차린 고징은 이번엔 북예주자사(北豫州刺史) 고중밀(高仲密)의 아내 이창의(李昌儀)를 겁탈하려다 실패했다. 분노한 고중밀은 북예주의 주도(州都) 호뢰(虎牢)를 서위(西魏)에 바치고 투항했다. 이로 인해 동위는 하지 않아도 될 전쟁까지 치렀다. 동위가 서위와의 싸움에서 이기고 호뢰를 탈환하자 고징은 기어이 이창의를 제 첩으로 삼았다.

 

이런 성격파탄자에게 권력까지 더해지면 사달이 날 것은 불을 보듯 뻔했다. 부친 고환도 권신(權臣)이긴 했으나 천자(天子)에게 최소한의 예는 갖췄다. 효정제(孝靜帝)에게 엎드려 절하는 것은 물론 국가대소사를 빠짐없이 먼저 고하는 등 나라의 질서를 준수했다.

 

반면 부친 사후(死後) 자리를 물려받은 고징은 황제를 제 집 노비 부리듯 했다. 심복 최계서(崔季舒)를 시켜 천자의 일거수일투족을 시간장소 가리지 않고 감시하는 건 기본이요, 주변과의 대화에서 효정제를 “무식한 놈”으로 호칭했다. 효정제는 하다못해 말(馬) 달리는 속도까지도 고징의 허락을 받아야 했다.

 

고징의 막가파 클라이맥스는 ‘황제 폭행’이었다. 어느 날 연회에서 얼큰하게 취한 고징은 “신(臣)이 한 잔 따라 줄 테니 원샷 하쇼” 효정제에게 친구 대하듯 술을 권했다. 위계(位階)라곤 눈곱만큼도 존중 않는 이 건달에게 눈앞이 아득해진 효정제는 장탄식과 함께 푸념했다. “짐(朕)이 이렇게 살아 뭣하겠나” 그러자 고징이 내놓은 답변이 걸작이었다. “짐은 무슨 놈의 짐. 개다리 짐(狗脚朕)이냐?!” 그리곤 최계서를 시켜 ‘황제’를 마구 ‘구타’했다. 효정제는 사상 최초로 신하에게 얻어맞은 황제가 됐다.

 

고징의 패악질은 이게 끝이 아니었다. 이튿날 그는 자신이 아닌 최계서가 황제에게 사과토록 했다. 그러자 피해자 효정제는 ‘맞사과’를 하고선 폭행범에게 비단 100필을 ‘상’으로 내렸다. 울화통 터진 효정제가 친위쿠데타를 기도하다 발각되자 고징은 “어이 폐하, 어찌하여 ‘반역’을 꾀했소?” 물었다. 또 건수 잡았다는 듯 효정제를 유폐했다.

 

악행(惡行)은 결국 업보로 돌아왔다. 고징이 심복들과 함께 제위(帝位)에 오를 방법을 밤낮으로 궁리하던 어느 날이었다. 난경(蘭京)이라는 노복(奴僕)이 술안주를 갖고 밀실로 들어왔다. 고징은 “내가 언제 들어오라 시켰나” 벌컥 화를 냈다. 난경은 쟁반 밑에 숨겼던 흉기를 꺼내 들며 “역적의 목을 취하러 왔다!” 일갈했다. 진원강(陳元康)이란 자가 난경 앞을 막아섰으나 내장이 쏟아질 정도의 큰 부상을 입고 쓰러졌다. 몸통은 다져진 고깃덩이가 되고 머리는 분리돼 굴러다닌 고징은 비참하게 숨이 끊어졌다.

 

김진표 국회의장에 대한 더불어민주당 상당수 인사의 태도가 물의를 빚고 있다. 의장은 여야 사이에서의 중립이 관례임에도 민주당은 마치 고징 같은 태도로 ‘개처럼 기어라’는 식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심지어 “개xx”라는 귀를 의심케 하는 공개욕설까지 나왔다. 의정(議政)질서를 짓밟는 행태 앞에 비분강개(悲憤慷慨)한 국민들 사이에선 ‘더불어막간당’ 등의 개탄(慨歎)의 목소리가 고조된다. 패거리정치에도 정도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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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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