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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한미정상회담의 워싱턴 선언에 대한 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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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율곡 한국핵자강전략포럼 사무총장(2023년 4월 28일 -

이번 선언은 나토식 핵공유보다도 낮은 수준이고, 기존 확장억제를 종잇장으로 재확인하는 정도에 그치는 외교적 수사로 이뤄진 체면치레용 사탕발림에 불과합니다. 미 전략자산을 아무리 전개해도 무뎌진 한국과 오히려 역도발을 하는 북한의 반응 때문에 회담을 계기로 동맹국 체면만 살려주는 쇼를 한 것이나 다름 없습니다.

 

핵우산의 근본적인 한계는 그 어떤 조치로도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선언에서 ”상시“가 아닌 “정기” 전략자산 전개라고 표현한 것은 상시 전개보다 실효성도 떨어지고 얼마나 “정기적”으로 배치할지도 미국 의중에 따라 달라진다는 것으로 읽힙니다. 한국이 포함하길 원한 “북의 핵공격 시 미국도 핵보복한다”는 문구 또한 미국이 부정적이었습니다. 백악관에 따르면 핵무기 사용여부 결정은 미 대통령의 권한인 만큼 핵사용 결정권에 대한 한국의 권한은 없을 것이라고 못박았습니다. 악화된 현 안보 상황에서 한미동맹이 끈끈하고 강한 것과는 별개로, 우리의 핵자산이 아니므로 명백한 한계가 있기에 타국이 핵전쟁에서 대리보복을 해준다는 개념은 회의적이라는 말이 계속 터져나오는 것입니다.

 

또한 조삼모사라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이미 한미 양국 간에는 차관급 확장억제전략협의체(EDSCG)를 비롯한 여러 레벨의 협의체가 많이 존재합니다. 이번에 NCG(핵협의그룹)라는 이름으로 협의체를 또 하나 만들었으니 그저 옥상옥 조직에 불과합니다. 명칭만 나토의 핵공유 협의체인 NPG(핵기획그룹)에서 따온 듯 합니다.

 

핵미사일을 탑재한 전략핵잠수함(SSBN)을 “자주” 배치하겠다고 선언하였는데, 내년 대선을 앞둔 바이든이 공화당에 열세이고, 공화당 내에서는 론 드산티스 후보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우세한 상황입니다. 트럼프 또는 자국 우선주의를 내세우는 공화당 후보가 당선되면 NCG와 미 핵잠 배치에 대해 별도의 거액 청구서를 내밀거나 다시 터무니 없는 방위비 분담금 인상을 요구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 중국과의 경제, 안보 경쟁이 치열한 상황에서 공화당이 집권할 경우 이 종잇조각에 불과한 워싱턴 선언은 어찌 될 것인지도 불확실하며, 한국은 이 선언적인 것에 자국의 운명을 걸 수 없습니다. 핵보유국에 둘러싸인 리스크를 무릅쓰고 비핵국 지위를 힘겹게 유지하는 한국이 외교적 수사를 간과한 채 이를 철석같이 믿으면서 안보를 맡기고 기댄다면, 그건 국익과 5천만 국민을 담보로 하는 위험한 도박입니다.

 

설상가상으로 이번 선언은 해석의 여지에 따라 잠재적 핵무장 포기를 내어준 것과 같습니다. 미국은 기존의 워딩을 미묘하게 수정하여 확장억제를 “강화”하겠노라 말하는 대신 한국은 이를 믿고 어떠한 상황에서도 핵우산만 믿고 NPT를 준수하며 자체 핵무장을 하지 않겠다는 비확산 의지를 천명했기 때문입니다. 이로 인해 핵포기를 확고히 하는 족쇄만 채워졌습니다. 워싱턴은 동맹을 신뢰하라고 말하지만 이는 국내 한미관계 인식에 관한 여론조사에서 이미 여러 차례 수치로 확인된 바 있습니다. 책임있는 동맹인 한국과 그 역량을 믿지 못하는 건 정작 워싱턴으로 보여질 소지가 다분합니다.

 

무엇하나 필요한 걸 얻은 게 없습니다. 윤 대통령은 방미 전부터 미국 도청사건을 묻어 넘어갔고, 중-러에도 대립각을 세웠으며, 대미투자를 진행하는 한편 직접적인 우크라이나 지원을 언급했고, 여론의 거센 비판을 무릅써서 한일관계 정상화까지 내주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회담의 가장 중요한 문제에서는 기존의 확장억제만 얻었을 뿐입니다. 국내에서는 당장의 독자 핵무장은 어렵더라도 원자력협정 개정 및 핵 재처리, 원자력추진잠수함 개발, G8 체제 확립, 쿼드플러스 가입 등의 포석을 놓을 수 있는 결과가 나오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결국 우리 국민들의 절박함과 불안감을 해소시킬 근본적인 조치는 전혀 나오지 않았습니다. 

 

워싱턴 선언은 우리 국민들을 장기적으로 안심시키기에는 불충분합니다. 유감스럽게도 미국은 동맹이 원하는 것에 대해선 능수능란하게 무응답하되 자체 핵무장에만 못을 박았습니다. 이는 우리 정부와의 협의 없이는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에 동의하였다면 지금까지, 그리고 어쩌면 앞으로도 불가피한 자위적 핵자강을 힘겹지만 굳게 지지하는 대다수 국민들의 안보 불안과 나라의 앞날에 대한 진심어린 걱정을 외면한 것과 다름 없습니다.

 

기존의 확장억제만 재탕하여 나오고 구체적인 조치는 없는 고작 그 불확실함의 대가로 한국은 핵무장을 하지 않겠다는 선언적 공개약속까지 했으니 미국은 실리와 이익을 다 얻은 반면 우리는 빈 손으로 핵우산만 유사시 잘 펴지기를 기도해야 할 판입니다. 기존 입장, 이전 상황과 거의 변한 게 없다시피 하니 이를 믿고 무조건 안심하라는 말은 쉬이 납득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도 방어적 목적을 위한 핵자강의 필요성에 대한 국민들의 염원과 지지는 오히려 더욱 강해질 것입니다. 

 

신냉전으로 돌입하는 엄중한 시대에 균형을 이루기 위한 생존 본능을 막는 것은 미국을 앞장서 도울 수 있는 핵심 동맹국의 운신의 폭을 제한할 뿐 아니라, 오히려 핵능력 증강을 서로 조장 및 묵인하고 있는 북-중-러만 웃게 한다는 역설을 명심해야 합니다. 이는 미국이 동맹과 함께 이루길 원하는 구 공산권 견제의 대전략과도 상충할 것입니다. 

 

우리는 타국의 핵우산 및 핵자산이 필요하면 언제든 요청해 가져다 쓸 수 있는 우리 것인 양 당연히 여겨서는 안될 것입니다. 비핵화를 대가로 우크라이나 안전을 보장하던 부다페스트 안전보장 각서가 한순간에 종잇조각으로 전락하는 걸 본 우리는 “한국형 핵공유”와 같은 언론과 정부의 워딩에 혹해서 핵문제가 크게 해결되었다고 판단하는 것은 지양해야 합니다.

 

이제 알을 깨고 나올 시간입니다. 우리 정부는 1992년 한반도비핵화공동선언이 북의 핵개발로 무효화 되었음을 선언해야 합니다. 한국 내에 핵무기가 일절 없는 반면 북은 핵보유 정권이므로, 한반도 비핵화는 전제 자체가 틀렸음을 인정하고 더 늦기 전에 한반도 핵균형을 위한 새로운 판을 구상할 때가 되었습니다. 이제 재래식 위주 안보전략을 탈피하지 않고서는 뾰족한 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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