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12일 발표한 대국민 담화는 '비상계엄 사태'에 대한 국회의 탄액소추안 표결과 내란 혐의 강제 수사를 앞두고 마지막 승부수를 던진 것으로 풀이된다.
이날 오전 공개한 대국민 담화 '국민께 드리는 말씀'을 통해 비상계엄 선포의 정당성을 부각하면서 동시에 거대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을 향해 '탄핵 남발', '입법 독재', '감액 예산 처리', '안보 위협' 등을 비판하며 궁극적으로 '나라를 망치려는 반(反)국가 세력'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도대체 어느 나라 정당이고, 어느 나라 국회인지 알 수 없다"며 비상계엄 선포의 정당성을 거듭 호소했다. 이 과정에서 취임 후 민주당이 자행해 온 위헌적 행위를 적나라하게 비판했다.
◆"탄핵 남발로 국정 마비" … 이재명 '셀프 방탄' 입법 직격윤 대통령은 민주당에 대해 "대통령의 국정 운영을 마비시키기 위해 우리 정부 출범 이후 지금까지 수십 명의 정부 공직자 탄핵을 추진했다"며 "탄핵 남발로 국정을 마비시켜 온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장관, 방통위원장 등을 비롯해 자신들의 비위를 조사한 감사원장과 검사들을 탄핵하고, 판사들을 겁박하는 지경에 이르렀다"며 "자신들의 비위를 덮기 위한 방탄 탄핵이고, 공직 기강과 법질서를 완전히 무너뜨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또 "급기야 범죄자가 스스로 자신에게 면죄부를 주는 셀프 방탄 입법까지 밀어붙이고 있다"며 "거대 야당이 지배하는 국회가 자유민주주의의 기반이 아니라 자유민주주의 헌정 질서를 파괴하는 괴물이 됐다"고 강조했다.
이는 12개 범죄 혐의로 5개의 재판을 받는 이재명 민주당 대표를 정조준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 대표는 지난달 15일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1심 재판에서 징역 1년, 집행유예 2년 형을 선고받았다. 이 형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면 이 대표는 10년간 '피선거권이 박탈'돼 다음 대선에 출마할 수 없다.
민주당은 이 대표 1심 선고 전후인 지난달 14일과 15일 이틀간 공직선거법상 허위사실공표죄 부분을 삭제하고, 당선무효의 기준을 현행 벌금 100만 원에서 1000만 원으로 상향하는 개정안을 발의했다. 이를 두고 '이재명 방탄법'이라는 비판이 쏟아졌다.
◆"도대체 어느 나라 정당이고 어느 나라 국회인가"
윤 대통령은 지난달 40대 중국인이 '드론'으로 국가정보원을 촬영하다 붙잡힌 사건을 언급하면서 "현행 법률로는 외국인의 간첩 행위를 간첩죄로 처벌할 길이 없다. 이러한 상황을 막고자 형법의 간첩죄 조항을 수정하려 했지만, 거대 야당이 완강히 가로막고 있다"고 지적했다.
민주당이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완전 박탈한 것에 대해선 "지난 정권 당시 국정원의 대공수사권을 박탈한 것도 모자라 국가보안법 폐지도 시도하고 있다"며 "국가 안보를 위협하는 간첩을 잡지 말라는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또 "민주당이 북한의 불법적인 핵무장과 미사일 위협 도발, GPS 교란과 오물풍선, 민주노총 간첩 사건에 동조하고 있다"며 "도대체 어느 나라 정당이고, 어느 나라 국회인지 알 수가 없다"고 비판했다.
윤 대통령은 이어 민주당이 검찰과 경찰의 내년도 특경비, 특활비 예산을 '0원'으로 깎은 것을 두고 "자신들을 향한 수사 방해를 넘어 마약 수사, 조폭 수사와 같은 민생사범 수사까지 가로막는 것"이라며 "그래 놓고 자신들의 특권을 유지하기 위한 국회 예산은 오히려 늘렸다"고 강조했다.
특히 "원전 생태계 지원 예산을 삭감하고, 체코 원전 수출 지원 예산은 무려 90%를 깎아 버렸다"며 "거대 야당은 대한민국의 성장동력까지 꺼트리려 하고 있다"고 밝혔다.
◆"선관위 비밀번호 '12345' …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 가능"
윤 대통령은 이와 함께 비상계엄 때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병력을 투입한 이유에 대해서도 적극적으로 설명했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하반기 선관위를 비롯한 헌법 기관들과 정부 기관에 대해 북한의 해킹 공격이 있었다면서 국정원이 이를 발견하고 정보 유출과 전산시스템 안전성을 점검하고자 했지만, 다른 모든 기관과 달리 선관위는 헌법 기관임을 내세워 완강히 거부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윤 대통령은 "국정원 직원이 해커로서 해킹을 시도하자 얼마든지 데이터 조작이 가능하였고 방화벽도 사실상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비밀번호도 '12345' 같은 식이었다"며 "민주주의 핵심인 선거를 관리하는 전산시스템이 이렇게 엉터리인데, 어떻게 국민이 선거 결과를 신뢰할 수 있겠냐. 그래서 저는 이번에 국방부 장관에게 선관위 전산시스템을 점검하도록 지시한 것"이라고 부연했다.
윤 대통령은 또 "최근 거대 야당 민주당이 자신들의 비리를 수사하고 감사하는 서울중앙지검장과 검사들, 헌법기관인 감사원장을 탄핵하겠다고 했을 때 이제 더는 그냥 지켜볼 수만 없다고 판단했다"며 "이들은 이제 곧 사법부에도 탄핵의 칼을 들이댈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비상계엄령 발동을 생각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거대 야당이 헌법상 권한을 남용해 위헌적 조치를 계속 반복했지만, 저는 헌법의 틀 내에서 대통령의 권한을 행사하기로 했다"며 "현재의 망국적 국정 마비 상황을 사회 교란으로 인한 행정 사법의 국가 기능 붕괴 상태로 판단해 계엄령을 발동하되, 그 목적은 국민에게 거대 야당의 반국가적 패악을 알려 이를 멈추도록 경고하는 것이었다"고 강조했다.
윤 대통령은 이번 비상계엄이 대한민국 헌정 질서와 국헌을 망가뜨리려는 의도가 없었음을 시사했다.
윤 대통령은 "국민에게 망국의 위기 상황을 알려드려 헌정 질서와 국헌을 지키고 회복하기 위해 비상계엄을 선포했다"며 "병력을 국회에 투입한 것은 질서 유지를 하기 위한 것이지, 국회를 해산하거나 기능을 마비시키려는 것이 아니다"라고 언급했다.
◆"이재명, 국가 시스템 무너뜨려 범죄 덮고 국정 장악하려는 것"
윤 대통령은 자신이 내란 혐의 피의자로 입건된 데 대해 "어떻게든 내란죄를 만들어 대통령을 끌어내리기 위해 수많은 허위 선동을 만들어내고 있다"며 "도대체 2시간짜리 내란이라는 것이 있냐"고 반문했다.
이 대표를 향해서는 "거대 야당 대표의 유죄 선고가 임박하자, 대통령의 탄핵을 통해 이를 회피하고 조기 대선을 치르려는 것"이라며 "국가 시스템을 무너뜨려서라도 자신의 범죄를 덮고 국정을 장악하려는 것이다. 이야말로 국헌 문란 행위 아니냐"고 했다.
윤 대통령은 비상계엄 선포는 '대통령의 헌법적 결단이자 통치 행위'로 규정하며 "대통령의 비상계엄 선포권 행사는 사면권 행사, 외교권 행사와 같은 사법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 통치행위"라고 주장했다.
윤 대통령은 이날 대국민 담화를 통해 사실상 하야 할 뜻이 없다는 점을 분명히 했다. 향후 국회에서 탄핵안이 가결되면 헌법재판소의 탄핵 심판 과정에서 거대 야당의 위헌적 행위와 비상계엄 선포의 정당성을 부각해 '기각'을 노려보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윤 대통령이 탄핵 심판을 받겠다는 뜻을 내비치면서 내란 혐의 수사도 장기화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대통령실이 압수수색에 협조하지 않고, 윤 대통령이 소환 요구에 응하지 않을 경우 강제수사를 위한 길이 사실상 막히게 된다.
형사소송법 제110조에 따르면, 군사상 비밀을 요하는 장소는 책임자 승낙 없이 압수수색할 수 없다.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수사 때도 특검팀은 청와대 압수수색을 시도했다가 이같은 이유로 거부돼 임의제출 형식으로 자료를 건네받았다.
또 수사기관이 현직 대통령을 강제구인 하기 위해선 대통령실 또는 관저 경비 병력을 뚫고 체포조가 진입해야 하기 때문에, 소환조사 과정에서 체포하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방법이다.
그러나 기회만 오면 '긴급체포'하겠다는 수사기관의 소환 요구에 윤 대통령이 순순히 응할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
끝으로 윤 대통령은 "저는 오로지 국민만 바라보며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고 재건하기 위해 불의와 부정, 민주주의를 가장한 폭거에 맞서 싸웠다"며 "저를 탄핵하든, 수사하든 저는 이에 당당히 맞설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날 윤 대통령은 지난 국무회의에서 의결된 국회 제출 법률안·대통령시행령 등 42개 안건을 재가하며 헌법이 부여한 대통령으로서의 법적 권한을 행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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