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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이란의 역사 : 아케메네스 왕조를 중심으로(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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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로렌츠

칼럼 https://theyouthdream.com/free/4316701

 

 

 

6. 제국 전역의 반란과 그 진압 

 

 

이와같은 혼란상 속에, 제국 전역은 반란이 일어났고 심지어 본토인 페르시아마저 반란을 일으키기 시작했습니다. 다리우스는 엘람, 바빌론, 페르시아, 아시리아, 파르티아, 메디아, 이집트를 포함한 제국의 많은 지역들의 반란을 진압함과 동시에 혼란을 틈타 쳐들어온 스키타이 유목민들도 쫓아내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반 다리우스 세력은 모두 일소되었고, 제국을 재통일한 다리우스에게 맞설 세력은 감히 존재할 수 없었습니다. 다리우스의 천하가 도래한 것이죠. 천하를 손안에 쥔 다리우스는 키루스의 딸들과 결혼하였으며, 키루스와 다리우스의 가계도를 조작해서 아케메네스 가문을 창조해내게 됩니다. 파사르가다에에 있는 키루스 대제의 조각상에 아케메네스의 후손이라는 텍스트가 써지기 시작한 것도 다리우스 시기때부터였습니다. 키루스 대제 시절에는 아케메네스가 조상이라고 언급되지 않았습니다.

 

 

 

7. 이어지는 정복 전쟁과 다리우스 치세의 번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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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우스 대제>

 

 

반란을 모두 진압한 다리우스는 리비아, 트라키아, 소그디아나, 마케도니아, 인더스 강 유역을 정복하였습니다. 다리우스는 제국을 경영하는데 뛰어난 수완이 있어서 옛부터 이어지던 길들을 이어 붙여 왕의 길을 정비하게 됩니다. 이 뛰어난 도로망은 수도 파르사(페르세폴리스)에서 제국 서쪽의 맨 끝자락까지 2주 안에 주파할 수 있게 하였고, 이는 동쪽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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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 제국의 팽창. 초록색은 키루스 대제의 번복지이며 파란색은 캄비세스 2세, 붉은색은 다리우스 대제의 정복지이다.>

 

 

다리우스는 새로운 수도인 파르사(페르세폴리스)를 짓고 파르사를 중심으로 한 행정, 우편, 교통체계를 구축하고 관료제를 정비하여 국가의 기초를 탄탄히 다지는 작업에 착수했습니다. 제국을 20개의 사트라피(행정구역)로 나누었고, 법 체계를 정비하여 제국 전역에 통용되는 제국법을 도입하였으며,(이는 로마법에도 영향을 줍니다.) 지중해와 홍해를 잇는 수에즈 운하의 고대 버전을 완공하였습니다. 다릭이라는 금화 역시 따로 주조해서 상업을 활성화시켰으며, 도량형을 통일하여 거래를 수월하게 만들었습니다. 관개 시설 역시 개선하였고 이를 잘 드러내는 표상이 오늘날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슈슈타르 관개시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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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슈타르 관개시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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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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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우스 대제가 완공한 운하와 그 기념비>

 

 

다리우스는 반란 방지를 위해 패배한 왕들이나 지역 유력자들의 자식들을 인질로 삼고 그들을 페르시아 식으로 교육시켰습니다. 또한 고대 아카드 제국(BC 2334- BC 2083) 시대부터 이어져온 사트라프 제도를 강화시켜서, 각지에 임명된 사트라프(총독)에게 행정, 군사, 사법, 외교 등의 폭넓은 권한을 주었지만, 수석 재무관과 수석 서기관이 사트라프를 감시했고, 중앙에서 파견하는 군 사령관에게는 독립적인 군 통수권을 부여했습니다. 군 사령관 역시 황제에게 사트라프의 행적을 보고했죠. 그 외에도 사트라프를 감시하는 왕의 눈과 왕의 귀 라는 직책의 감찰관을 수시로 파견하여 그들을 감제케 하는 견제책도 마련하고요. 

 

 

 

 

요충지에는 페르시아 본국에서 파견한 군대를 주둔시켰으며, 상비군을 창설했습니다. 세금 제도 역시 효율적으로 개선하여 각 지역의 경제력에 맞춰서 세금을 걷었고, 국가 행정망의 역량을 확장시켜 제국 곳곳에서 세금을 성공적으로 거두어들였습니다. 제국이 안정세에 접어들자, 제국은 경제적으로 풍족해졌고, 기원전 500년 당시 2400~3000만에 달하는 인구를 보유했으며 세계 인구의 24~30%, 세계 경제의 약 24~30%를 점유하게 되어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국가의 위엄을 뽐냈습니다. 현재 미국의 세계 경제 점유율이 약 25%인 것을 보면 정말로 경이로운 수치인 것이죠.(물론 미국은 1960년 41%까지 차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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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우스 대제 치세의 페르시아와 세계. 인도는 십육대국 시대였고 중국은 춘추시대였다. 카르타고가 성장하고 있었고 로마는 작은 도시에 불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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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시아 제국의 인구 추정치는 기원전 500년 1700만에서  3500만으로 추정된다. 평균적으로 2600만정도 되지않나 싶다.>

 

 

 

8. 연이은 그리스 정벌, 크세르크세스의 그리스 원정 실패와 제해권 상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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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세르크세스 1세>

 

 

다리우스 대제 시기, 이오니아에서 반란이 일어나게 되고, 아테네가 이들을 도와주게 됩니다. 반란군은 옛 리디아 왕국의 수도였던 사르디스를 불태우기에 이르렀고, 이에 분노한 다리우스는 군을 투입해서 이오니아 반란군을 진압했습니다. 

 

 

 

이후 군을 투입해 바다를 건너가게 하였습니다만 폭풍 때문에 아테네와 싸워보지도 못하고 원정 자체가 무산되고 맙니다. 그 후에도 군을 투입해서 아테네를 공격하려고 했으나, 마라톤 전투에서 패배하여 두 번째의 시도도 무산되고 맙니다. 다리우스는 이후의 원정을 준비했지만, 이집트에서 반란이 일어나서 그를 진압하다가 건강이 악화되어 사망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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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라톤 전투>

 

 

황위를 물려받은 크세르크세스는 당대 최대의 군세를 모아서 그리스로 향했습니다. 그 수는 헤로도토스는 물경 500만이 넘는다고 기록하지만, 학계에서 추산한 수치는 전투병 10~20만입니다. 페르시아의 대군은 테르모필레에서 스파르타와 동맹국들을 전사시켰고, 아테네 시를 파괴하는 데 성공합니다만, 크세르크세스가 굳이 싸울 필요 없었던 살라미스 해전에서 패배하여 페르시아 해군은 엄청난 타격을 입습니다. 이 전투로 인해 다 이긴 전쟁을 말아먹게 되었지요. 크세르크세스는 철수했고, 남은 페르시아군은 육군은 플라타이아이 전투에서, 해군은 미칼레 해전에서 각각 패배하여 괴멸되고 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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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르모필레 전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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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라미스 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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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타이아이 전투>

 

 

이 전쟁의 여파로 페르시아는 그리스를 평정하기는 커녕 수십만의 인력을 소모하고, 육군과 해군이 괴멸적 타격을 입었으며, 에게 해의 제해권을 상실하고, 이오니아 지역의 지배권을 상실하게 됩니다. 또한 적대국인 아테네는 델로스 동맹을 창설하여 제국이 되었고 페르시아에 역공을 가하게 됩니다. 페르시아가 해군을 재건한다는 소식을 듣자 아나톨리아 한복판까지 거슬러와 재건중인 해군을 격파하고 유유히 사라지는가 하면, 키프로스 섬을 공격하고 이집트가 반란을 일으키자 이집트를 지원하기까지 하죠. 크세르크세스는 정치에 관심을 끄고 건축 프로젝트에만 몰두하다가 결국 쿠데타로 인해 살해되고, 그의 아들 아르타크세르크세스(고대 페르시아어 아르타크샤샤)1세가 즉위하게 되죠.

 

 

 

9.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의 사십년의 치세 : 회복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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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

 

 

아르타크세르크세스는 이집트의 반란을 진압하고 대 그리스 외교의 기조가 직접적인 정벌에서 자금을 활용한 그리스 도시국가끼리의 갈등 유도로 전환되게 한 군주입니다. 그는 아테네의 델로스 동맹을 스파르타의 펠로폰네소스 동맹과 맞붙게 하여 그리스 도시국가들을 효과적으로 견제하는 동시에, 키프로스를 수복하고 이오니아의 세력을 차츰차츰 회복해나갔습니다. 재정상태 또한 국가를 수십년간 안정시키니 재정이 좋아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관용 정책의 기조 역시 유지하여 그의 시대에 느혜미야가 예루살렘 성벽을 완공하게 되죠. 사십몇년간 나라를 위해 힘쓴 아르타크세르크세스 1세는 기원전 424년에 평온하게 눈을 감았습니다. 그리고, 치열한 황위 다툼이 벌어지게 되죠.

 

 

 

10. 치열한 권력 투쟁 : 골육상쟁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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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리우스 2세>

 

 

아르타크세르크세스의 뒤를 이어 즉위한 크세르크세스 2세는 45일 동안만 통치했으며 그는 이복형제인 소그디아누스에게 살해당했습니다. 소그디아누스 역시 6개월 동안만 통치했으며 그 역시 이복형제 다리우스 2세에게 살해당했습니다. 다리우스 2세는 막후에서 펠로폰네소스 전쟁에 개입하여 스파르타가 아테네에게서 승리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에서의 성공적인 성과는 빛바래고 마는데, 그가 사망할 무렵인 기원전 404년 이집트가 마침내 페르시아로부터 독립에 성공하게 되기 때문이죠.(이집트는 기원전 343년 다시 정복될 때까지 약 60여년간 독립을 유지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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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집트는 기원전 404년 독립에 성공했다. 중국은 전국 시대를 향해 나아가고 있었고 인도는 마가다국의 세력이 커졌다.>

 

 

이후 다리우스는 사망하고 다리우스의 뒤를 이은 아르타크세르크세스 2세는 재위 초기에 그의 동생 키루스의 반란을 마주하게 되는데, 기원전 401년, 쿠낙사 전투에서 키루스가 고용한 그리스 용병 약 1만명과, 키루스의 부대 약 3만명으로 구성된 약 4만여명의 반란군을 6만~10만에 달했을 대군을 동원해 뭉개버리는 데 성공하죠. 비록 그리스 용병들이 메소포타미아 한복판에서 탈출에 성공하여 그리스 본토까지 도착하기는 하지만 말이죠. 이를 기록한 사람이 소크라테스의 제자 중 한명인 크세노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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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세노폰이 이끄는 만인대는 그리스 본토로 도망치는 데 성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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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킬로렌츠
    작성자
    2021.12.11
    @ 님에게 보내는 답글

    감사합니다.

  • 타키

    데마시아(페르시아)의 왕 다리우스의 이오니아(아이오니아) 정복기

  • 타키
    킬로렌츠
    작성자
    2021.12.11
    @타키 님에게 보내는 답글

    재치있는 농담이군요. 감사합니다.

  • 유가영
    2021.12.11

    저것이 그 유명한 마라톤전투

  • 유가영
    킬로렌츠
    작성자
    2021.12.11
    @유가영 님에게 보내는 답글

    그 유명한 마라톤 전투이지요. 아직도 이란은 마라톤에 참가하지 않습니다.

  • 박근혜
    2021.12.11

    페르시아 제국은 덩치에 걸맞게 주위에서 견제도 많이 받고 반란에 시달렸군요 페르시아의 역사를 보니 이란인들이 자부심을 느낄만하네요

  • 박근혜
    킬로렌츠
    작성자
    2021.12.11
    @박근혜 님에게 보내는 답글

    이란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국가였으니 자부심을 느낄만 하지요. 아케메네스조 이후로도 이란은 유서깊은 강대국으로써 세계에 군림하였으니 대단하다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