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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하필 지금…" 국내 유력 경제단체 고위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다. 상법 개정안이 시행되면 재계가 생각하는 일보다 더 심각한 상황이 펼쳐질 수 있다는 걱정과 함께다. 숨가뿐 경영환경에서 신속한 판단을 내릴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게 상법 개정을 반대하는 핵심 논리다.
하지만 반대 여론도 만만치 않다고 한다. 회사를 위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소액주주의 투자금을 뺏어가는 소위 'K-국장'에 대한 반감이 커져서다. 이 관계자는 "그동안 우리 기업들이 해 온 행태를 보면 상법 개정을 무작정 '악법(惡法)'으로 매도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것은 사실"이라고 했다.
하필 국회가 상법 개정안을 통과시킨 다음날, 조(兆) 단위 유상증자를 단행한 기업이 있다. 삼성 SDI다. 여론전이 치열한 시기에 이뤄진 2조원 규모의 유상증자를 두고 냉소적인 시선이 쏟아진다. 상법 개정안 통과로 경영이 어려워 지는 것은 싫지만, 상습적인 물적분할, 유상증자 등으로 상법 개정안에 빌미를 제공하는 한국 기업들의 이중적인 행태가 이번에 드러났다고 일각에서 꼬집는다.
삼성SDI가 유상증자를 공시한 14일 회사의 주가는 오전 장중 전일 대비 7% 넘게 빠진 18만9600원까지 내려앉아 19만원대가 깨졌다. 삼성SDI 유상증자로 인한 주가 하락의 피해는 개인 투자자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갈 것으로 우려된다.
공교룝게도 유상증자를 앞두고 지난 2월 27일부터 3월 13일까지 기관은 단 하루를 제외하고 삼성SDI 주식을 매도했다. 외국인도 단 3일을 제외하고 같은기간 삼성SDI 주식을 매도했다. 기관과 외국인이 던진 물량은 전부 '개미' 투자자들 매수하며 온몸으로 받아냈다. 주식 게시판에서 흔히 보이는 'K-국장'의 전형적인 사례다.
기관과 외국인이 삼성SDI의 유상증자 소식을 미리 파악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이같은 사례가 상법 개정안 통과를 위한 훌륭한 예시가 되리라는 점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국회는 전날 본회의를 열고 상법 개정안을 가결했다. 재석 279명 중 찬성 184명, 반대 91명, 기권 4명이었다.
민주당은 상법 개정안을 통해 "알짜 사업부 떼어내 중복 상장하고, 핵심 계열사를 총수 회사와 헐값에 합병하고, 의도적으로 주가를 떨어뜨리는 비일비재한 행태"를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면 국민의힘과 재계는 상법 개정안을 결사 반대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경영 현실을 전혀 모르는 초보자들이 만든 위험한 탁상공론의 결과물"이라며 "소위 노란봉투법 등 전형적인 포퓰리즘 법안이며 기업 활동 위축이 불가피하다"고 반발하고 있다.
국민의힘은 전날 최상목 대통령 권한대행에게 상법 개정안에 '거부권' 행사를 건의하겠다고 나서는 등 여야 갈등이 최고조에 오르는 와중에 삼성SDI가 유상증자를 해버린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SDI가 전기차 캐즘으로 현금 확보가 시급한 것은 사실이지만 시의적절한지 의문"이라며 "다른 기업도 아니고 재계를 대변하는 삼성전자 계열사가 이런 의사결정을 내리면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삼성전자는 이번에 신규 사외이사로 문재인 정부 고위직을 대거 영입했는데, 계열사인 삼성SDI가 민주당 당론과 반대되는 행보를 펼치고 있다"며 "삼성 내에서 소통이 제대로 되고 있는지 우려된다"고 덧붙였다.
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25/03/14/2025031400118.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