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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면초가' 투란도트 … 연출자는 '떠나고', 관객은 '환불 요구', 주인공은 '목 아프다'고 하차

뉴데일리

"지금 테너 목 상태가 안 좋아서 다른 대체 배우가 오고 있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시겠습니까? 외국에선 이런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지난 23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코엑스 D홀에서 열린 대형오페라 '어게인 2024 투란도트(Turandot)'의 1막이 끝나고 인터미션이 되자, 한 제작 관계자가 마이크를 잡고 긴급 안내 방송을 했다. 극 중 왕자 '칼라프(Calaf)' 역을 맡은 한 배우(테너)가 목 상태가 너무 안 좋아 더블 캐스팅 된 다른 배우가 급히 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 관계자는 관객들에게 양해를 부탁한 뒤 "외국에선 이런 경우가 종종 있다"며 별 일 아니라는 식으로 사태를 수습하려 했다.

그러자 객석 중 누군가가 "지금 외국을 무시하는 거냐"고 쏘아붙였다. 큰 목소리는 아니었지만 워낙 조용한 상태였기에 상당수 관객들이 들을 수 있었다. 그 말과 동시에 사방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났다.

객석 반응이 심상치 않자, 이 관계자는 "일단 그냥 시작하고, 배우가 오면 교체하는 걸로 할까요?"라고 묻더니, 잠시 후 막을 올렸다.

정황상 긴급 호출을 받은 '대체 배우'가 아직 공연장에 도착하지 않은 것으로 보였다. 그럼에도 2막이 시작됐고 배우들은 정상적으로 공연을 펼쳤다. '칼라프'는 2막 중·후반에 등장할 예정이었다. 그동안 기존 배우가 빠르게 컨디션을 회복하기만을 바랄 뿐이었다.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칼라프. 그런데 얼굴이 달랐다. 제작 관계자가 언급했던 배우가 무대에 대신 오른 것이었다.하지만 엉겁결에 합류한 탓이었을까. 이 배우는 화장을 거의 하지 않은 맨 얼굴이었다. 여타 배우들이 짙은 색조 화장을 한 탓에 칼라프의 '민낯'이 더욱 도드라져 보였다.

'무사히' 2막을 마친 칼라프는 3막에선 정상대로 화장을 하고 등장해 마지막까지 최선을 다해 연기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급하게 불려 나와 연기를 펼친 것치고는 대단히 훌륭했다. 이번 작품을 두고 '성악가들이 혼신의 힘으로 막아낸 총체적 난국'이라는 어느 기사의 제목이 떠오른 순간이었다.

지난 22일 개막한 '어게인 2024 투란도트'는 첫날부터 허술한 공연장 운영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이달 초 청천벽력 같은 '계엄 사태'가 벌어진 후 취소표가 쏟아지자, 제작사인 투란도트문화산업전문회사 측은 당초 6800석으로 예정했던 객석을 4000석 이하로 줄였다. 6800석으로 공연을 시작하면 빈 좌석이 너무 많이 보일 것 같아 줄였다는 게 박현준 '어게인 2024 투란도트' 총예술감독의 해명이었다.

그런데 이 사실이 관객들에게 제대로 공지되지 않으면서 사달이 났다. 사전에 개별 연락을 받지 못하고 공연장을 찾은 예매 관객들은 극장 앞에서 자신이 예매한 좌석이 없다는 걸 확인하고 분통을 터뜨렸다. 보도에 따르면 제작사 측이 관람석 숫자를 줄인 후에도 한 예매 사이트가 이를 반영하지 않아, 존재하지도 않는 좌석이 팔린 경우도 있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티켓 수령처 직원들이 부랴부랴 예매 관객들을 빈 좌석이나 VIP석으로 안내했으나, 공연이 임박한 상황에서 절대적으로 시간이 부족했다. 이 와중에 일부 관객은 환불을 약속받고 발걸음을 돌리기도 했다.

그러면서 제자리를 찾지 못한 관객들의 성토가 공연장 안팎에서 빗발쳤고, 뒤늦게 공연이 시작한 후에도 제작사를 비난하는 목소리가 로비에서 계속 들리는 아수라장이 벌어졌다.

어렵게 자리에 앉았으나 이번엔 '시야'가 문제였다. 무대 전면 양쪽에 위치한 두 개의 큰 기둥이 일부 관객들의 시야를 가리면서 배우들의 얼굴을 제대로 볼 수 없는 상태에 놓인 것.

또한 객석에 단차(段差)가 없어, 뒷자리에 앉은 관객은 전면에 기둥이 없어도 앞 사람의 '뒤통수'만 감상하는 신세가 됐다. 결국 양옆에 설치된 스크린으로 공연을 봐야 했는데, 그 마저도 크기가 작은 데다 가창자의 모습을 비추지 않는 경우가 많아 공연을 제대로 관람하기 어려웠다. 접의식 의자에 달랑 천 시트 하나만 씌운 의자도 관객들의 안락한 관람을 방해하는 요소가 됐다.

공연 직전 이탈리아 출신 연출가 다비데 리베르모어가 한국 제작사와 '결별'을 선언한 것도 커다한 흠집으로 남게 됐다. 리베르모어는 박현준 총예술감독이 장이머우가 연출했던 '2003년 상암월드컵경기장 투란도트 버전'으로 준비해 달라고 요구한 것에 크게 반발한 것으로 전해졌다.

"제작진과 연출가 사이의 건설적인 대립은 일반적인 관행이지만, 이번 경우에는 그러한 협력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았다"며 "이는 협력이 아닌 비전문적인 아마추어 수준의 권위주의적 강요였다"는 게 리베르모어 측의 주장.

반면 투란도트문화산업전문회사는 "그동안 한국 오페라를 우습게 여겨왔던 이탈리아 오페라 관계자들이 다시 한번 한국을 봉으로 아는 추태를 보였다"며 "그들은 제작진 의도를 듣지 않고 전혀 다른 방향으로 연출하려 했고, '리베르모어 연출 조력자인 샤칼루가가 지난달 25일 입국한 뒤 연출 관련 업무를 전혀 하지 않았으면서도 개런티(보수)를 요구했다"고 리베르모어 측의 불성실한 태도를 문제 삼았다. 현재까지 양측이 고집을 굽히지 않으면서 이번 사태가 소송전으로까지 비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우여곡절 끝에 박 감독이 연출을 맡아 막을 올린 '어게인 2024 투란도트'는 공연 첫날 미숙한 운영으로 도마 위에 오르더니, 둘째 날엔 주연 배우가 컨디션 난조로 공연 중 교체되는 불상사까지 일어났다.

이번 공연은 '세계 3대 테너'로 꼽히는 플라시도 도밍고와 테너 겸 지휘자인 호세 쿠라 등이 합류해 제작 단계부터 화제를 모았던 작품이다. 출연진의 명성에 걸맞게 VIP 귀빈석 티켓이 100만 원에 팔릴 정도로 초호화급 오페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뚜껑을 연 공연은 개막부터 파행으로 치닫으며 관객들의 줄 잇는 환불 요구에 골머리를 앓는 지경에 이르렀다.

대체 어디에서부터 잘못된 걸까. 제작비 200억 원이 투입된 역대급 대형오페라의 갈팡질팡 행보에 공연계의 이목이 쏠리고 있다. '어게인 2024 투란도트'는 같은 장소에서 오는 31일까지 공연된다.



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24/12/24/2024122400144.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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