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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담] 이김보다 어려운 게 지키기다

오주한

말 그대로 지극히 개인적인 소견의 담론

위기 후엔 마상득지 마상치지를 깨닫길

 

마상득지 마상치지(馬上得之 馬上治之)라는 말이 있다. “말 위에서 천하를 얻을 순 있어도 말 위에서 천하를 다스릴 순 없다”는 의미다.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생몰연도 기원전 247~기원전 195)과 육가(陸賈‧기원전 240~기원전 170)의 대화가 출처다.

 

육생(陸生)이라는 별칭이 따라붙었던 육가는 당대의 독보적인 유학자(儒學者)였다. 당(唐)나라의 사관(史官) 유지기(劉知幾)가 저서 사통(史通)에서 “한나라가 처음 일어났을 때 글을 아는 이는 오직 육가뿐이었다”고 평가할 정도였다. 여기에서의 ‘글’은 말 그대로 문자가 아닌 학식(學識)을 뜻한다.

 

당시 한고조의 주변 핵심인사 대다수는 치국(治國)과는 거리가 멀었다. 개백정 출신의 용장 번쾌(樊噲)는 적장 10여명을 사로잡고 재상급 한 명을 생포하는 등 용맹했다. 교도관을 지낸 조참(曹參) 또한 온 몸에 흉터 70여개가 있을 정도로 무쌍(無雙)을 뽐냈다.

 

그만큼 이들은 말보다는 주먹이 먼저 나가는 성격들이었다. 사기(史記) 유경숙손통열전(劉敬叔孫通列傳)에 따르면 한나라 창업 후 논공행상(論功行賞)이 실시되자 제장(諸將)들은 서로의 멱살을 잡고 제 공이 더 크다 싸웠다. 정확한 열전 표현을 옮기자면 “연회석에서 공을 다투다가 만취해 검을 뽑아들고 기둥을 내려찍는 이들도 있을” 정도였다.

 

이 와중에 육가는 한고조에게 간언할 때마다 늘 시경(詩經)‧서경(書經) 등의 옛 고사를 인용했다. 마찬가지로 ‘백수건달’ 출신으로서 몸소 전장(戰場)을 누빈 거친 사나이였던 한고조는 듣다못해 짜증을 냈다.

 

한고조의 평소 행실이 어떠했는지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주창(周昌)이란 신하가 어느 날 상소를 위해 방문하자 한고조는 한창 음주가무(혹은 ‘그짓’)를 즐기고 있었다. 목덜미 부여잡은 주창이 돌아서자 쫓아 달려온 한고조는 주창 다리에 태클을 걸어 쓰러뜨리고서 깔고 앉았다. 얼큰한 표정의 한고조가 “난 어떤 임금이냐?” 묻자 분통 터진 주창은 “바로 걸주(桀紂) 같은 폭군이시오!” 냅다 고함질렀다. 한고조는 파안대소(破顔大笑)하며 굴러 나자빠졌다.

 

아무튼 한고조는 글 좀 읽은 고명한 유생(儒生)이 문자 쓰고 훈계하자 이렇게 말하며 비웃음 날렸다. “이 마상옹(馬上翁‧말 좀 타신 어르신이라는 쯤의 의미. 한고조 자신을 지칭)께선 말 위에서 천하를 얻으셨다. 저따위 시서(詩書)가 무슨 소용이란 말이냐?”

 

그러자 육가는 빙그레 웃으며 이렇게 답했다. “말 위에서 얻은 천하를 말 위에서 다스릴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서 주무왕(周武王) 등은 무력으로 나라를 세웠으나 현명한 다스림으로 지킨 반면 진시황(秦始皇)은 가혹한 형벌 등으로 몰락을 자초한 점을 일깨웠다.

 

정신이 번쩍 든 한고조는 “내가 천하를 얻을 수 있었던 비결과 옛 나라들의 성공‧실패 사례를 망라‧분석한 백서(白書)를 지어 올려라” 명했다. 육가가 명을 받들어 집필한 12권의 책이 신어(新語)였다. 한고조는 이를 탐독하고 육가의 해설을 들으면서 정치의 요체(要諦)를 배워나갔다.

 

한편으론 칼 뽑아 기둥 찍는 애들 주둥이를 손으로 잡아 다물게 하고선 소하(蕭何)를 일등공신으로 올렸다. 제장들이 “우리가 나가 싸울 때 쌀 배달이나 한 소하가 무슨 공이 있다는 건지 원참” 툴툴거리자 한고조는 이렇게 유식하게 말했다. “사냥할 때 짐승을 잡는 건 사냥개의 역할이다. 그러나 짐승 소재를 파악해 알려주는 사냥꾼이 없으면 사냥개는 무용지물(無用之物)이다. 소하의 공로는 마치 사냥꾼과 같은 것이다” 일자무식 싸움꾼들은 “와 뭔가 있어 보이는 말이다” 엄지손가락 세우며 모두 순응했다.

 

마상득지 마상치지의 고사처럼 천하를 얻는 것보다 다스리는 게 훨씬 더 어렵다. 싸움하는 재주 따로 있고 위무(慰撫)하는 재주 따로 있음을 보여주는 사례는 항우(項羽),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풍신수길), 마오쩌둥(毛澤東‧모택동) 등 차고 넘친다. 배우는 건 결코 부끄러운 게 아니다. 28일은 ‘화요일의 위기’가 있는 날이다. 위기가 가신다면 윤석열 대통령은 남은 3년 동안 두 재주를 모두 갖춘 백전노장으로부터 치국‧정치의 핵심을 배우며 당(黨)과 나라를 살리는데 헌신하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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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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