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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담] 박정희동상을 세우자

오주한

말 그대로 지극히 개인적 소견의 담론

전 세계가 인정하는 朴 공로 인정해야

 

철(鐵)은 인류역사와 떼놓을 수 없는 전략물자다. 철강산업은 고대는 물론 지금도 한 나라를 먹여 살리는 젖줄이다.

 

고대의 금속은 주로 침략전쟁을 통해 국력확장에 기여했다. 선진시대(先秦時代) 제련기술의 총아(寵兒)는 월왕구천검(越王勾踐劍)이다. 1965년 출토된 이 청동검은 춘추시대(春秋時代) 월나라를 다스린 구천(생몰연도 ?~기원전 464)의 보검이었다. 약 2500년 전의 물건임에도 여전히 예리하게 날이 살아있다고 한다.

 

간장막야(干將莫耶)도 이름난 전설의 검이다. 오월춘추(吳越春秋) 등에 의하면 오왕(吳王) 합려(闔閭‧?~기원전 496)는 대장장이 부부인 간장‧막야에게 한 쌍의 검을 만들도록 지시했다. 이들은 최상의 재료들을 모아 제작에 돌입했으나 노(炉)의 온도가 급격히 낮아져 애를 태웠다. 부부는 과거 그들의 스승 부부가 가마 속에 투신(投身)해 불길을 일으킨 것을 떠올리고서 손톱 등을 던져 넣었다. 그리고 동자(童子) 수백 명에게 밤낮으로 풀무를 밟게 했다. 부부는 간장검은 숨긴 채 막야검만 합려에게 진상했다.

 

서력기원에 접어들고서도 동아시아에선 많은 명검(名劍)들이 제작됐다. 소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로 친숙한 촉한(蜀漢)의 제갈량(諸葛亮)은 포원(蒲元)이란 자에게 병기 제작을 주문했다. 포원은 유비(劉備)의 명으로 5만 자루의 예리한 병장기를 생산한 바 있는 특급 대장공이었다. 포원은 장강(長江)의 물로 신도(神刀)라는 쇠칼을 만들었는데 갑옷‧투구를 가를 정도였다고 한다.

 

우리나라는 대륙 이상의 질 좋은 쇠를 대량생산했다고 한다. 2022년 3월 이한상 대전대 역사문화학전공 교수는 동아일보 기고문에서 정사삼국지(正史三國志)의 ‘변진(弁辰)에서 생산된 철을 중국 군현(郡縣)에 공급한다. 마한(馬韓)‧동예(東濊)‧왜(倭)도 와서 사간다’는 구절을 바탕으로 “지금까지의 발굴 결과로 보면 변진의 철 생산을 신라(新羅)가 일찍부터 주도한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다.

 

서구도 철강생산에 사활을 걸었다. 스페인은 무슬림 지배로부터 독립하기 위한 전쟁 레콩키스타(Reconquista)를 서기 711년부터 1492년까지 무려 781년 간 지속했다. 그 과정에서 제련 노하우를 쌓은 스페인 시민들은 해방 후 식민지 개척에 나섰다. 콩키스타도르(Conquistador)라 명명된 다수 퇴역군인‧민간인들은 자본을 갹출해 범선 등을 마련한 뒤 신대륙을 찾아 떠났다.

 

에르난 코르테스(Hernán Cortés‧1484~1547)도 그들 중 하나였다. 그가 이끈 병력은 수백명에 불과한 반면 주변 약소부족을 상대로 인신공양(人身御供) 일삼던 아즈텍제국(Aztec empire)은 백만대군에 달했다.

 

그러나 코르테스는 믿기지 않는 승리를 거두고 누에바 에스파냐(Nueva España‧지금의 멕시코)를 건설했다. 기적의 배경에는 톨레도 검(Toledo sword)이 있었다. 아즈텍 식인종들이 몽둥이로 쇠갑옷 두들기다가 제풀에 지쳐 쓰러질 때 콩키스타도르는 약간의 힘으로 날카로운 검을 휘두르는 것만으로도 적군의 손‧발목을 쉽게 잘라냈다.

 

산업혁명 이후의 오늘날에도 철은 기간산업(基幹産業)으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흔히 철은 ‘산업의 쌀’로 불린다. 어떤 산업이든 철을 떠나 생각하긴 힘들다. 철강 자력생산 능력이 있어야 제조업 부흥도 담보된다.

 

누구나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6‧25 동란으로 인해 온 국토가 잿더미가 됐다. 미국은 한국이 재건되는데 최소 100년이 걸릴 것으로 전망했다. 그러나 국제사회는 한 가지를 잊고 있었다. 단 한 명의 철인(鐵人)의 존재가 역사를 바꿀 수 있음을 말이다.

 

우리나라는 천연자원의 불모지다. 박정희(朴正熙‧1917~1979) 전 대통령은 한민족의 존망(存亡)이 중화학공업 육성에 달려 있음을 내다봤다. 국제사회는 “돈도 기술도 없는 한국이 무모한 도전을 한다”며 비웃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불가능을 가능케 했다. 1973년 6월9일 포항제철소 1고로(高爐)는 펄펄 끓어오르는 쇳물을 처음으로 쏟아냈다.

 

이 중화학공업 발전 신호탄을 시작으로 대한민국은 휴전으로부터 불과 20여년만인 1977년 수출 100억 달러, 1인당 국민소득 1000달러 돌파라는 ‘한강의 기적’을 달성했다. 우리나라는 중진국 함정(Middle income trap)도 가뿐히 극복한 채 선진국 반열에 올라 약 반세기만에 ‘원조 받는 나라에서 원조하는 나라’로 탈바꿈했다.

 

필자도 어느덧 칠순이 넘으신 부모님으로부터 어려웠던 시절 말씀을 듣곤 했다. 평범한 이들은 국을 끓여도 물이 많게 해 물배 채우는 게 일상이었고 고기는 언감생심(焉敢生心)이었다고 한다. 그런 국민에게 양질의 일자리와 기술습득 기회를 제공함으로써 부족함 없는 식사와 자녀교육‧보건의료 등을 가능케 한 게 박 전 대통령이었다.

 

대구시가 박정희동상 건립을 추진 중이다. 야당과 일부 세력은 유독 박 전 대통령의 과(過)만을 부각하며 이를 격렬히 반대 중이다.

 

오늘날의 대한민국은 박 전 대통령이 있었기에 존재할 수 있다는 게 주지(周知)의 사실이다. 세계은행(WBG)은 1965~1990년대 동아시아 국가들 급속성장을 분석해 1993년 발표한 보고서 ‘동아시아의 기적(EAST ASIA MIRACLE)’에서 한국을 고평가했다. 야권의 양대 정신적 지주(支柱)인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도 각각 “근대화에 큰 업적” “경제성장은 사실”이라고 박 전 대통령을 회고한 바 있다. 중국 덩샤오핑(鄧小平)도 박정희식 경제발전 모델을 모방한 것으로 알려진다.

 

식위민천(食爲民天) 실천보다 더 큰 공(功)은 없다. 다 죽어가는 국민을 먹여 살리고 선진국 진입 토대를 다진 지도자의 업적은 기리는 게 마땅하다. 그건 한 나라의 자존심이자 후대에 대한 교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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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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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풀소유

    철에서 철인(鐵人)으로 이어지는 논리의 흐름에 감탄하고 갑니다!

  • 풀소유
    오주한
    작성자
    2024.04.26
    @풀소유 님에게 보내는 답글

    부족합니다. 감사합니다

  • Mango

    저도 가끔 칼럼을 써보고 하는데 이렇게 잘쓰고 싶은데 필력이 한참 부족해서 따라하기도 힘듭니다 ㅎㅎ

  • Mango
    오주한
    작성자
    2024.04.27
    @Mango 님에게 보내는 답글

    돈 주고도 못할 삶의 고생을 많이 하면 되는 듯합니다. 저는 인생 대선배님들 비해 아직 크게 부족합니다. 감사합니다

  • whiteheart
    2024.04.27

    좋은말씀 오늘도 잘보고 갑니다~~^^

  • whiteheart
    오주한
    작성자
    2024.04.27
    @whiteheart 님에게 보내는 답글

    우둔한 제 머리에 써봤습니다. 박통의 공과 평가가 세간에 엇갈리긴 합니다만 업적은 감히 단언컨대 우리 한민족 역사에 길이 남지 않을까 싶습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