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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담] “이것이 본토의 시바루세키”

오주한

말 그대로 지극히 개인적인 소견의 담론

모 연예 관계자 ‘욕설 기자회견’에 암담

군자지덕풍인 법… 올바른 리더 나오길

 

논어(論語)에는 군자지덕풍(君子之德風)이라는 말이 나온다. ‘군자의 덕은 바람과 같아서 백성은 모두 그 풍화(風化)를 입는다’는 뜻으로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도 맑다는 의미다. 상행하효(上行下效)‧상즉불리(相卽不離) 등도 같은 맥락에서 쓰이는 사자성어다.

 

맹상군(孟嘗君) 전문(田文‧생몰연도 ?~기원전 279)은 전국사군자(戰國四君子) 중 한 명이다. 사기(史記) 맹상군열전(孟嘗君列傳) 등에 의하면 어려서 부친에게 버림받았다가 기지로서 가문의 당주(當主)가 된 그는 수천 명의 식객(食客)으로 유명했다. 제(齊)나라로부터 받아 대대로 세습한 가문의 영지 설읍(薛邑)은 전문이 그러모은 가지각색 외지인들로 북적거렸다.

 

식객 면면을 살펴보자. 하루는 전문이 수행원들 이끌고 진(秦)나라 소양왕(昭襄王)을 방문했을 때였다. 제나라를 견제한 소양왕은 대뜸 전문을 잡아 가둬버렸다. 전문은 소양왕의 애첩을 꼬드겨 베갯머리송사하게 함으로써 위기를 타개하려 했다.

 

그러자면 우선 애첩을 만나야 했다. 이 때 나선 식객은 ‘탈옥’ ‘주거침입’이 전문인 상습 전과자였다. 얼굴에 스타킹 뒤집어쓴 채 교도소를 월담해 애첩 침실로 기어들어간 식객 A는 맹상군에게 돌아와 “귀한 호백구(狐白裘‧여우 겨드랑이의 흰 털로만 만든 가죽옷)를 바치면 청을 들어주겠다 합니다” 쑥덕거렸다.

 

이미 호백구를 소양왕에게 바쳤던 전문은 땅을 쳤다. 그 때 나선 게 이웃집 금고 따기가 전문인 ‘날강도’였다. 스타킹맨의 도움을 받아 야밤에 담 넘은 식객 B는 소양왕의 궁궐로 침입했다. 삼엄한 경계 펼치던 진병(秦兵)들에게 들킬 때마다 B는 네 발로 으르렁 멍멍 하는가 하면 때로는 한 쪽 다리 들고 기둥에 볼일 보면서 개 흉내를 내 위기를 모면했다. 기록엔 명확치 않으나 B가 무사했던 걸 보면 진병들은 틀림없는 애견인‧채식주의자였던 듯하다.

 

B가 개구멍으로 들어와 호백구를 바치자 A가 다시 애첩 침실로 달려들어 호백구를 바쳤다. 이튿날 애첩은 소양왕 품으로 파고들며 “그만 풀어주시와요” 교태롭게 청했다. 8‧15특사로 풀려난 전문과 도둑들은 두부 먹을 새도 없이 미친 듯 내달려 함곡관(函谷關) 아래에 다다랐다.

 

그런데 변심한 소양왕은 포졸들 풀어 날도둑들 잡아오게 했다. 앞에는 거대한 관문이 버티고 있고 뒤에는 삐뽀삐뽀 추격이 거세질 찰나, 가진 재주라곤 닭 울음 흉내내기가 전부인 식객 C가 소몰이창법 동원해 “꼬끼오~” 울었다. 새벽 첫 닭이 울어야 문을 열던 수문장(守門將)은 “발성이 남다른 백숙이구먼” 감탄하며 대문 열어제꼈다.

 

그런데 전문은 식객들 머릿수와 그 재주를 사소한 것 하나까지 이용만 했을 뿐 “우리 인간이길 포기한 놈들 하고 싶은 거 다해” 방치하며 교화(敎化)하지 않았던 듯하다.

 

전문 사망으로부터 백수십년이 지난 어느 날, 행동파 학자였던 사마천은 맹상군열전을 쓰기 앞서 검증을 위해 설읍을 견학했다. 그런데 전문의 계명구도(鷄鳴狗盜)를 아름답게 미화한 옛 문헌(文獻)들 내용과 달리 설읍은 갱스터굴 그 자체였다.

 

스타킹‧미친개‧닭백숙의 후손들은 사마천과의 인터뷰 또는 기자회견에서 침 찍찍 뱉고 건들대며 “개저씨” “양아치” “18” “욕이 안 나올 수 없다” 등 비속어를 마구 쏟아냈다. 맹상군랜드에 대한 환상이 박살난 사마천은 사기에서 “내 일찍이 설읍을 지났는데 유학(儒學)의 나라인 노(魯)나라‧추(鄒)나라와 달리 그 풍속이 문란했다”며 신랄히 비웃고 비판했다.

 

최근 모 연예기획사 내분과 관련된 핵심 당사자의 기자회견 내용이 부정적 의미로 화제다. 해당 인사는 국민‧소비자 앞에서 변(辨)을 내놓는 공적인 자리에서 귀를 의심케 하는 육두문자들을 쏟아냈다고 한다.

 

그런데 한 술 더 떠서 이게 이웃나라 일본에서 안 좋은 방향으로 센세이션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필자가 직접 확인한 건 아니나 K팝에 열광했던 일본인들은 “본고장의 시바루세키, 격이 다르다” “기자회견에 시바루세키가 나오는 건 처음 봤다” “한국 느와르영화 외에 시바루세키 들은 건 처음” 등 충격이라는 반응을 온라인상에서 쏟아내고 있다고 한다. 게다가 일부 우리 청소년‧청년은 욕설 회견을 ‘쿨’하다며 열광하고 있다고 한다.

 

필자는 모 기획사 내홍에 관심도 없고 누구 편을 들지도 않는다. 당사자들끼리 합의하든 법정 가든 해결하면 된다. 그런데 국가망신으로까지 직결되고 우리 사회의 미풍양속(美風良俗)을 한 층 오염시킨다는 점에는 분개하지 않을 수 없다.

 

어쩌다 나라가 이 지경이 됐는지 통탄(痛歎)을 금할 수 없다. 돌이켜보면 “하고 싶은 거 다 해” 운운하며 전국 단위로 해방구(解放區)를 조성했고 조성 중인 특정 정치세력 탓이 아닌가 싶다. 군자지덕풍인 법이다. 반드시 올바른 리더가 나와 이 아수라판을 정리해주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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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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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오주한
    작성자
    2024.04.28

    일본 혐한주의자들뿐만 아니라 한국을 좋게 보던 일본인들까지도 시바루민코쿠(18민국)이라 조롱하지 않을까 염려됩니다. 교도통신 등 일본 사람들 업무상 만나기가 겁나네요, 속으로 어떻게 한국을 생각할지. 어이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