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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담] 민주당發 탱자 논란

오주한

말 그대로 지극히 개인적 소견의 담론

모 인사 ‘고기 둔갑’ 의혹에 비판 고조

‘대파‧고기’ 아닌 정책대결 계기 되길

 

가난을 딛고 일어선 사람은 역사상 많다. 그들 중에는 한고조(漢高祖)‧명태조(明太祖)처럼 입신양명(立身揚名) 후 어려웠던 시절을 잊지 않은 이들도 있다.

 

반면 졸부(猝富)라는 부정적 의미의 단어가 괜히 생겨난 게 아니듯, 귤이 회수(淮水)를 건너면 전혀 다른 탱자가 되듯, 가난했던 시절을 까마득히 잊는 이들도 있다. 나아가 “내가 이렇게 초가삼간 출신으로서 여러분들 심정을 아니 표 좀 주쇼” 제 권세에 이용하는 이들도 있다.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 즉 귤화위지(橘化爲枳) 고사의 주인공은 춘추시대(春秋時代) 제(齊)나라의 재상 안영(晏嬰‧생몰연도 기원전 578~기원전 500)이다. 그는 귤화위지의 사례처럼 ‘고도의 돌려까기’ 명인이었다. 본론에 들어가기에 앞서 몇몇 일화를 살펴보자.

 

안영이 모시던 경공(景公)은 새를 좋아했는데 촉추(燭雛)라는 이에게 관리를 맡겼다. 그런데 그만 새장이 열리면서 진귀한 새들이 모두 날아가 버렸다. 진노한 경공이 촉추를 죽이려는데 부리나케 달려온 안영이 검을 빼앗아 촉추를 마구 두들겨 패면서 이렇게 말했다.

 

“네 이놈, 네 죄를 알렸다. 첫째, 주인이 애완조를 잃게 한 것. 둘째, 주인이 새 하나 때문에 사람을 죽이게 만든 것. 셋째, 주인이 새 따위 때문에 사람을 죽여 폭군이라 만천하에 욕x먹게 한 것이다. 잘 가라 이놈” 안영이 분노에 파르르 떨며 검을 내리치려 하자 경공은 그를 필사적으로 뜯어말리면서 “그래 내가 죽일 놈이다” 사과했다.

 

또 다른 일화. 안영은 대궐 같은 주택이 아닌 시끄럽고 지저분한 시장가 모퉁이에 살았다. 보다 못한 경공이 초호화 펜트하우스를 선물하려 했으나 안영은 거절했다. 경공이 이유를 묻자 안영은 “시장이 가까워서 물건을 쉽게 살 수 있어 좋습니다” 답했다.

 

경공은 “그러면 경(卿)은 현재 물가를 잘 알겠군” 물었다. 안영은 “당연하지요. 용(踊)이 가장 비싸고 구(屨)가 가장 쌉니다” 답했다. 구는 보통 신발이고 용은 월각형(刖脚刑) 즉 발뒤꿈치를 자르는 형벌을 받은 자가 신는 신발이었다. 안영의 말은 곧 “얼마나 중형에 처해진 죄인이 많으면 용 가격이 가장 비싸겠냐. 작작 자르고 범죄 근절되게 경제 살려라 이 화상아”라는 의미였다.

 

시장가 전‧월세방 일화에서 알 수 있듯 안영은 근검절약을 몸소 실천하고 인간의 도리를 중시했다. 어느 날 안영의 집에 경공이 행차했는데 마중 나온 안영의 처는 행색이 초라한 평범한 아낙네였다. 경공은 안영에게 “젊고 아리따운 내 딸을 주겠소. 내 사위가 되시오” 은근히 권했다. 공족(公族)이 될 수 있는 기회였으나 안영은 단호히 고개를 내저었다. 그는 “비록 신(臣)의 아내가 늙었으나 신을 굳게 믿고 의지하고 있습니다. 조강지처(糟糠之妻)를 버리는 일은 결코 없을 것이옵니다” 일언(一言)에 거절했다.

 

경공은 이러한 안영을 꺼리는 대신 외교 등 다방면에서 크게 중용했다. 안영은 경공의 명으로 남쪽의 강국 초(楚)나라에 사신으로 가게 됐다. 초나라 영왕(靈王)은 천하에 이름 높은 안영의 콧대를 눌러 북방의 강국 제나라를 굴복시키고자 했다. 이 과정에서 귤화위지의 고사가 나왔다.

 

안영이 초나라 도읍에 도착하자 성문은 굳게 닫혀 있고 대신 옆에 조그만 ‘개구멍’이 하나 있었다. 안영이 “문 열어라” 외치자 한 무명소졸이 귀 후비며 성벽 위에 나타나 “지금 공사 중이오. 급한 대로 옆의 개구멍으로 들어오시오” 말했다.

 

그러자 안영은 “난 사람이라 그리로는 못 들어가네. 초나라 사람들은 네 발로 기면서 개구멍으로 다니는 개xx들이라고 중원(中原) 여러 나라에 고하겠네. 아 재밌겠다” 답했다. 몰래 엿듣고 있다가 졸지에 개껌 씹게 생긴 초나라 중신들은 성문 열고 후다닥 달려 나와 사신을 맞았다.

 

안영은 키가 매우 작고 풍채도 볼품없었다. 그를 만난 영왕은 거드름을 피우며 “제나라엔 영 사람이 없는가 보네. 저런 난장이똥자루를 보낸 걸 보니” 대놓고 인신공격하며 모욕감 줬다. 안영은 허허 웃으며 “아직 모르시는군요. 저희 제나라 외교에는 한 가지 원칙이 있답니다. 대국(大國)에는 거인을 보내고 소국(小國)에는 소인을 보낸다는 겁니다” 받아쳤다.

 

부글부글 끓은 영왕은 이번에는 돌연 남의 집 월담하다 잡힌 한 죄수를 불러왔다. 영왕이 “넌 어느 나라 출신이냐?” 묻자 죄수는 “제나라 출신입니다” 답했다. 영왕은 “이거 원 참. 제나라엔 순 도둑놈들만 사나 보네?” 혼잣말처럼 중얼거리며 좌우 대신들과 피식피식 낄낄 웃었다.

 

여기에서 안영은 귤화위지를 언급했다. 그는 “신이 듣건대 귤은 회수 이남에 심으면 귤이 되나 회수 이북에 심으면 탱자가 된다고 합니다. 왜일까요? 풍토(風土)가 다르기 때문입니다. 제나라엔 도둑이라곤 없고 모두가 대문 열고 사는데 저 자가 초나라에 와서 도둑이 된 걸 보면 필시 초나라는...” 견국(犬國)‧소국에 이어 아예 갱스터스 파라다이스가 될 판인 영왕은 용상에서 굴러 떨어지듯 달려 내려와 안영의 입을 틀어막고선 마침내 백기를 들었다.

 

더불어민주당의 ‘책임 있는 인사’가 ‘고기 둔갑’ 의혹에 휩싸였다. 최근 한 식당에서 고기를 먹고서 “돼지고기 잘 먹었다”는 취지로 SNS에서 밝혔는데 실은 ‘소고기’를 먹은 것 아니냐는 추측이다.

 

의혹 진위여부는 아직 알 수 없다. 그러나 만에 하나 사실이라면 씁쓸함을 금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책임 있는 인사’가 유년(幼年) 시절 매우 어렵게 살았다는 점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런 그가 민주당에 장기간 몸담고 고관대작(高官大爵)이 되더니 어려웠던 시절은 까마득히 잊은 채 마블링 살아 있는 상대적 고가(高價)의 소고기를 즐기고, 나아가 이도 안 쑤신 채 저렴한 삼겹살 먹었다고 주장하며 “나 서민이요” 혹세무민(惑世誣民)에 나서는 것 아니냐는 점에서 분노를 표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사실 총선 국면에서 ‘책임 있는 인사’가 돼지고기를 먹었든 소고기를 먹었든 관심 갖지 않는 이들도 있다. 마찬가지로 정부여당에 대한 야당의 ‘대파 공세’에도 염증을 내는 국민이 상당수다. 민주당은 ‘고기 둔갑’ 의혹이 해프닝으로 끝나길 바란다면 먼저 시작했던 소모적 논쟁과 대파 말장난을 중단하고 정책을 내놓길 바란다. 국민은 밑도 끝도 없는 고기‧대파 대결이 아닌 이제는 정책 대결을 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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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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