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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주나라와 국민의힘

오주한

무능·집안싸움 끝에 쓸쓸히 멸망한 주나라
국민의힘, 책임 있는 집권여당 모습 보이길

 

주(周)나라는 기원전 1046년 건국한 국가다. 주나라는 당초 상(商)나라의 제후국이었다. 목야대전(牧野大戰)에서 상나라를 거꾸러뜨린 주나라는 왕족들을 여러 갈래로 보내 대륙 곳곳에 제후국을 건설토록 했다. 그 과정에서 상나라 잔존 세력도 병합해 제후로 삼았다. 대륙에는 주나라 왕실을 중심으로 한 여대야소(與大野小)의 정치 질서가 자리 잡았다.

 

그러나 기원전 771년 주나라가 이민족 견융(犬戎)의 침입을 받아 천도하면서 질서에는 균열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동주(東周) 시대가 열리면서 주나라는 일개 도시 하나만 다스리는 성읍국가로 전락했다. 제후들은 쫓겨 온 주나라를 처음에는 종주국이자 종가로서 여전히 우대하고 두려워했다. 주나라 재상을 맡게 된 정(鄭)나라의 2대 국군 무공(武公)은 종가에 충성을 다했다. 이때가 춘추시대(春秋時代)다.

 

하지만 소국으로 전락한 주나라는 무능함을 여실히 드러냈다. 14대 천자(天子)였던 환왕(桓王)은 정나라 국군을 견제한다면서 재상으로서의 권한을 크게 줄여버렸다. 그리고는 여대야소로의 회귀를 노리며 기원전 707년 거병했다. 그러나 환왕은 정나라 측 화살에 맞아 낙마하는 추태를 선보이며 왕실의 무능만 만천하에 광고했다.

 

더 이상 눈치 볼 게 없어진 야권은 삼진(三晉) 분립 등 종주국 권위에 노골적으로 도전하면서 전국시대(戰國時代)를 개막했다. 언제 나라가 사라질지 모르는 절체절명의 여소야대(與小野大) 정국임에도 주나라는 내부 계파 싸움에만 열중했다.

 

기원전 441년 선왕을 시해하고 즉위한 주나라 고왕(考王) 대에는 안 그래도 작은 나라가 두 개로 쪼개졌다. 마지막 천자 난왕(赧王) 대에는 두 개의 주나라가 전쟁을 벌이기도 했다. 그 사이 야권은 엄청난 체급으로 덩치를 불렸다. 결국 주나라는 기원전 256년 진(秦)나라 소양왕(昭壤王)에 의해 멸망했다. 그는 한(韓)나라를 치러가던 중 거치적거리는 한주먹거리 주나라를 치워버렸다.

 

국민의힘의 총선 가도에 비상등이 켜졌다. 이는 기대에 못 미치는 실적과 계파 갈등 등으로 잇달아 국민에게 실망을 안긴 국민의힘이 자초한 면도 없잖아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10일 결과가 어찌 나올지는 모르나 이후에는 유능하고 단합하는 대한민국 집권 여당으로서의 모습을 보여주길 바란다.

 

※4.8 전국 일간 스카이데일리 지면·네이버에 송출될 예정인 필자 칼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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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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