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안보를 지켜내야 군 인권도 있다>한국군이 고(故) 채수근 해병 상병 순직 사건 수사를 둘러싼 외압설로 뒤숭숭하다. 당시 해병대수사단장 박 모 대령이 사단장에서 부사관에 이르는 8명의 지휘계선 간부들에 대한 범죄를 인지하는 조사내용을 경찰에 이첩하자 대통령실과 국방부 고위자들이 ‘외압’을 넣어 처벌 대상을 대대장 선으로 축소했고, 박 대령이 이에 저항하면서 ‘항명’ 혐의로 수사를 받게 되었다는 것이 사건의 줄거리다.
이 사건은 박 대령이 기자회견과 방송 출연을 통해 억울함을 호소하고 방송이 이를 대서특필하고 시민단체가 ‘박 대령 인권 보호’를 명분으로 개입하면서 졸지에 또 하나의 ‘군 인권’ 사건으로 비화되었다. 방송에 비친 모습대로라면, 박 대령은 책임감과 소신으로 ‘불의의 외압’에 맞서는 ‘정의의 흑기사’며, 처벌 범위 축소를 지시한 고위자들은 영락없는 ’악(惡)의 무리‘다.
하지만, 이 나라에는 이 사건을 그런 시각으로 보지 않는 사람들도 많다. 정부와 군 그리고 사건의 당사자들은 이들이 던지는 질문에도 귀를 기울여야 한다.
■ 박 대령은 ‘불법적인 외압’에 맞서 싸우는 ‘정의의 흑기사’인가?
첫째, 채 상병의 죽음은 너무나 애석하지만, 그 어느 때보다 튼튼한 안보가 절박한 시기에 그 누구의 악의(惡意)도 개입되지 않고 모두가 안타깝게 생각하는 한 병사의 순직을 놓고 지휘계선상에 있는 상사들을 무차별적으로 처벌하는 식이라면 군의 사기는 어떻게 되는가? 많은 예산을 들여 양성한 고위 지휘관과 간부들을 이런 식으로 퇴출시킨다면, 누가 나서서 강군을 육성하려 하겠는가? 국민이 사랑하는 군대를 만들 수 있겠는가? 전쟁은 제대로 할 수 있겠는가? 누가 강훈을 시키고 누가 대민봉사를 지시하며 누가 돌격 명령을 내릴 수 있겠는가? 그러면서 군에게 목숨을 바쳐 나라를 지키라고 요구할 수 있는가?
이런 것이 고인이 된 채 상병이나 유족들이 바라는 바는 아닐 것이다.
둘째, 국가안보와 군의 사기를 걱정하는 ‘고위자’들이라면 파렴치 범죄가 아닌 이런 일로 많은 사람을 처벌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판단할 수 있는 것이며, 그렇다면 처벌 범위를 좁히자고 의견을 낼 수도 있고 지시를 할 수도 있을 터이다. 그런데, 그것이 왜 ‘불법적인 외압’이 되나?
군 사망사고 수사권과 재판권을 민간법원으로 넘긴 2021년 개정 군사법원법이 그런 것까지 불법화하는 것이라면, 솔직히 그 법은 예뻐 보이지 않는다.
셋째, 박 대령에게 묻고 싶다. 그도 국가안보를 최우선시하는 ‘귀신 잡는 해병’의 일원이라면, 그리고 죄질이 나쁜 범죄를 조사하는 상황이 아님을 유념했다면, 애초부터 안 해도 되는 처벌은 가급적 하지 않아야 한다는 자세로 임해야 했지 않았는가? 그것이 ‘싸우면 이기고 지면 죽는 해병대’로 가는 길이 아닌가? 그게 아니었다면, 지휘계선상에 있는 간부들을 쥐잡듯이 모조리 잡아 처벌 대상자를 최대화하는 것이 이 시대의 정의이고 해병대 정신이라고 믿었던 것인가?
이런 의문들을 가진 사람들이 바라보는 박 대령의 모습은 결코 ‘정의의 흑기사’가 아니다.
■ 국가가 있어야 인권도 있고 인권단체도 존재한다
넷째, 군 인권을 다룬다는 단체들에도 주문하고 싶은 것이 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누구든 군을 질책할 수 있고 개선을 요구할 수 있지만, 그 질책은 군을 아끼고 사랑하는 마음에서 비롯되어야 한다. 군 인권 개선 운동도 마찬가지다. 훈련병 사망 사건, 성범죄, 집단구타 등에 대한 조사가 축소·은폐되지 않게 감시하여 개선책 강구에 도움이 된다면 당연히 국방에 이바지하는 활동이다.
하지만, 좌파적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군에 대한 적개심 또는 군을 무력화시키고자 하는 의도를 가지고 인권을 앞세워 군을 ‘물고 뜯는’ 것은 결코 용인할 수는 없다. 또한, 어떤 단체든 국가안보라는 대명제를 생각해야 하며, 자신들이 관심사인 하나의 소명제로 군 전체를 훈육하려 들어서는 안 된다. 이는 자신의 눈에 보이는 터널 비전으로 온 세상을 재단하려 해서는 안 되는 것과 같은 이치다.
때문에 군 인권 개선을 위해 군에 개입하고자 하는 단체들이라면, “우리는 군을 사랑하는 사람들인가,” “우리는 군을 얼마나 알고 있는가,” “군 인권문제에 속하는 것이라면 동성애 허용 등 어떤 것이든 요구해도 되는가” 등을 먼저 자문해보고 스스로 분수와 범위를 지키면서 활동할 것을 권하고 싶다.
국가 안위를 걱정하면서 살아온 노병(老兵)들의 눈에 자신들이 어떤 모습으로 비칠 것인지에 대해서도 가끔 생각해볼 것을 권하고 싶다.
모든 것을 넘어, “우리가 하는 일이 국가안보라는 대명제와 관련해서는 어떤 역할을 할 것인가”를 반드시 자문해야 한다. 국가가 있어야 인권도 있고 시민단체도 존재할 수 있기 때문이다.
■ 정치풍랑 속에서도 군(軍)은 무력화 거부해야
차제에, 이번 사건을 계기로 군도 스스로를 되돌아봐야 한다. 군은 2021년 군사법원법 개정으로 치욕을 겪었다. 그로 인해 부대장의 사법 업무 개입이 제한되고 사망사고에 대한 군의 1, 2심 재판권이 민간법원으로 넘어가면서 부대별 검찰부와 고등군사법원도 폐지되었다. 일반 사건을 다루는 1심 군사법원도 절반으로 줄었다.
‘군사재판을 관할하는 군사법원’의 존재를 인정한 헌법 제110조에 비추어 볼 때 개정법에 위헌 소지가 의심되는 부분이 없지 않음에도, 군은 묵묵히 순응했다.수많은 파렴치 범죄, 성폭행 범죄, 의문사 등에 대한 수사가 ‘은폐·축소’ 의혹의 대상이 되면서 국민 눈높이를 맞추지 못했던 ‘과거의 씨앗’들도 하나의 이유였을 것이다. 즉, 자업자득인 측면이 없지 않았음을 인정하고, 군의 자존심을 살리기 위해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가늠해보아야 할 것이다.
그럼에도, 더 어려운 부탁이 하나 더 있다. ‘문민 통제’라는 대명제에 순종해야 하는 군으로서는 정치권의 군 개입에 취약할 수밖에 없다. 정치가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는 시대에는 군도 함께 흔들리기 쉽고, 정치 바람에 흔들리다 보면 기강도 자존심도 함께 흔들리고 기죽은 군대가 되기 쉽다.
그런 군대는 전쟁에서 이길 수도 없고 전쟁을 할 수도 없다. 1975년 월맹군이 2년 전의 파리평화협정을 위배하고 남침을 재개했을 때 월남군은 무기를 길바닥에 버리고 도주했고, 자유 월남은 56일 만에 지도상에서 사라졌다. 이후 10년 동안 공산 통일 베트남은 죽음의 산야(killing field)로 돌변했다.
정말, 한국군은 온갖 비바람 속에서도 시퍼렇게 중심을 잡고 있어야 한다. 반드시 그래야 한다. 다시 한번 고(故) 채 상병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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