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A사 신상 비빔면서 느낀 가붕개 향기
일말의 자정(自淨) 여지도 없는 韓 정치판
필자의 추억
일부는 빼고 여느 사람이 거의 다 그렇겠지만 필자는 어려서부터 인스턴트 라면을 먹어왔다. 유년기(幼年期)에 집안 사정상 부산 모처 조부모(祖父母)님 댁에서 몇년 간 살 때도 모 회사 컵라면을 먹었다.
어린 시절 평상(平牀)에 앉아 먼 산 바라보며, 그 산 꼭대기엔 할아버지 왈 “도깨비불”이라던 송전탑(送電塔) 혹은 송출탑(送出塔)도 있었더랬다, 후루룩 컵라면 먹던 그 때가 지금도 어렴풋이 기억난다.
당신께선 각 친척들이 가져오는 물과 뭍의 귀한 음식들을 손주 먼저 먹이곤 하셨으나, 필자는 왠지 라면이 그렇게 맛있었더랬다. 조부모님 댁을 떠난 뒤에도 종종 찾아뵈면 “라면 삶아주까(줄까)” 하시던 할머님의 정겨운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다. 지금은 조부모님 두 분 다 선산(先山)에서 쉬고 계시기에 만나 뵈려 해도 그럴 수 없다.
나이를 조금씩 먹어 어느덧 불혹(不惑)을 넘긴 지금도 필자는 라면을 쟁여놓고 밥 삼아 먹곤 한다. 한창 혈기왕성하던 10~20대 시절엔 라면 두 개도 모자라 식은 밥도 말아 거뜬히 먹곤 했으나, 지금은 한 개만 먹어도 배부르다.
지금까지 먹은 라면 중 가장 맛있었던 건, 소년 시절 어른들과 바닷가 갯바위 낚시 갔다가 휴대용 가스버너에서 큰 냄비로 한껏 끓인 뒤 작은 컵에 덜어 해풍(海風) 맞으며 나무젓가락으로 먹었던 라면이다. 그 맛은 철없고 순수했던 시절이 함께 녹은 맛이기에, 아마 앞으로도 두 번 다시 그 낙을 느끼진 못하리라 생각한다.
속도와 맛과 포만감이 한 그릇에
버릇처럼 역사 얘기를 첨언(添言)한다. 2008~2009년 국산 다큐멘터리 누들로드(Noodle Road)에서도 다뤘듯, ‘국수’는 인류 최초 패스트푸드(Fast Food)라고 한다.
면과 육수(肉水)를 미리 삶고 고명‧양념장을 미리 만들어놓은 뒤, 주문 들어오면 뜨근히 데운 육수에 면‧고명‧양념장을 얹어 간단한 반찬과 함께 내면 그만이다. 수저도 젓가락만 있으면 된다. 미끈한 면은 씹을 틈도 없이 목구멍을 넘어가고, 시원한 육수는 답답한 속을 씻어 내린다.
국수가 첫 탄생한 곳은 지금의 중동 지역인 메소포타미아(Mesopotamia)였다고 한다. 당시엔 반죽을 1~5㎝ 길이로 짧게 끊어 삶은 뒤 말려서 보존식품으로 활용했다고 한다. 국수는 이후 아시아‧유럽으로 퍼져나가 수천년에 걸쳐 지금의 형태가 완성됐다.
과거엔 이탈리아식 국수인 파스타(Pasta) 기원은 실크로드(Silk Road) 교역 과정 중 유럽으로 넘어간 아시아식 국수 아니었냐는 설(說)이 있었으나, 지금은 중동 국수가 이태리로 가서 독자적으로 발전했다는 추측도 힘을 얻고 있다. 베네치아(Venezia) 등 이태리 상인은 유라시아대륙 구석구석 안 간 곳이 없는 것으로 유명하다.
국수의 즉석식품 성격은 동아시아에서 특히 강했다. 불야성(不夜城)과 판관 포청천(包靑天)으로 유명한 송(宋)나라 수도 동경(東京) 개봉부(開封府) 시장에선, 인산인해(人山人海) 이룬 소비자들에게 기기묘묘한 국수가 판매됐다. 일본 도쿠가와막부(德川幕府) 시절 도쿄가 개발되자 각지 요리사들은 인부들 상대로 초밥‧라멘(ラーメン) 등을 팔았다. 우리나라도 잔치국수‧칼국수‧콩국수‧냉면 등 갖가지 면요리가 있다.
인류 식량사(史)에 획기적 분수령(分水嶺)이 된 인스턴트 라면은 1958년 일본에서 탄생했다. 개발자는 대만계 일본인인 안도 모모후쿠(安藤百福‧생몰연도 1910~2007)다. 젊은 시절 도일(渡日)해 면 사업을 펼친 그는 장사가 망해 거액의 빚을 졌다. 태평양전쟁 기간엔 군수(軍需)공장에서 일했으나 걸핏하면 악명 높은 일제(日帝) 헌병대에 끌려가곤 했다.
“어떻게든 살아야 한다” 각오한 모모후쿠는 1957년 아내가 튀김요리 하는 것에서 사업아이템을 착안(着眼)했다. 그가 내놓은 ‘튀긴 국수’는 간편함·장기보존성과 맛 등으로 선풍적 인기 끌었다. 쟁여놓은 인스턴트 라면은 고명 등 얹는 절차 없이 불(火)과 물‧냄비‧수저만 있으면 약 3~5분만에 완성된다. 때문에 국제사회 관련 학계에선 “라면이 없었다면 제3세계 등의 식량난 극복도 없었다”가 중론(衆論)이다.
모모후쿠의 닛신식품(日清食品)은 승승장구했다. 배경에는 2007년 향년(享年) 97세로 사망할 때까지 인스턴트 라면을 매일 먹고 또 끊임없이 맛을 연구한 모모후쿠의 노력이 있었다.
라면은 타사(他社)들에 의해 카피되기 시작했다. 그 중 한 곳인 묘조식품(明星食品)은 인스턴트 라면 기술을 한국 모 업체에 무상(無償)으로 기증했다. 당초 닛신의 인스턴트 라면은 하얀 국물이었다. 스프도 따로 없었으며 면에 각종 조미료가 함유돼 있었다. 따라서 1960년대 한국에 첫 선 보인 라면도 처음엔 백(白)라면이었다. 지금의 맵고 얼큰한 한국식 라면을 완성시킨 건 박정희 전 대통령이었다.
6‧25 직후 범국민 식량난에 번민(煩悶)하던 박 전 대통령은, 라면 소식 접하자 매우 반가워하며 청와대까지 공수(空輸)해 직접 맛봤다. 그리고는 “우리 한국인은 매운 걸 좋아하니 고춧가루를 넣으면 어떻겠나” 제안했다. 박 전 대통령 바람과 달리 ‘이 신기한 음식’은 애초엔 국민 사이에서 고급요리로 취급됐으나, 정재계(政財界) 노력 덕분에 서민음식으로 자리 잡아 필자 같은 이들의 출출한 배를 채워주게 됐다.
정치권에 필요한 ‘2+1’ 떨이행사
필자는 오늘도 저녁을 라면 한 그릇, 김치 한 접시로 때웠다. 필자가 특별히 좋아하는 라면은 국민 모두가 다 아는 A업체 라면이다. 쇠고기맛 진하게 밴 국물에 둥둥 뜬 버섯 건더기와 면발은 쉽게 질리지 않는 측면이 있다. 한 동물 이름을 딴 동사(同社)의 다른 라면은 해물맛이 일품이다.
거의 모든 대한민국 업체들 라면 맛이 한 때 근거 불분명한 ‘노 조미료(MSG)’ 열풍 탓에 하향평준화 된 적 있지만, 근래에는 다시금 옛 맛을 그럭저럭 찾아가는 듯하다.
헌데 이제는 MSG 때문이 아닌 다른 원인으로 라면 맛이 질적 하향되는 듯하다. A사가 2021년 출시한 모 비빔면이 특히 ‘걸작’이다. 일부러 맛없게 만들려 해도 이렇게 훌륭한 작품이 나오진 않을 것이다. 질긴 면, 정체불명 건더기, 식초 맛 짙은 액상스프 조합(組合)은 만감(萬感)이 교차하게 한다. 아마도 지금까지의 필자 생에 있어서 돈 아깝게 중간에 먹다가 버린 라면은 이게 처음일 것이다.
인터넷을 검색해보니 공교롭게도 국민 미각(味覺) 헌신했던 A사 창업주는 이미 별세(別世)하고, 2~3세 경영체제가 2021년 무렵 시작됐다고 한다. 새로운 오너(Owner)들 안색을 보니 라면과는 거리가 광년 단위로 멀다. 7성급 호텔에서 양식(洋食)이나 먹을법한 인상들이다.
그러고 보니 A사 신상 비빔면 맛이 이해가 간다. 어딘가 모르게 쫄면을 흉내 낸 듯한 신상 비빔면, “우리 회사 소비자는 ‘가붕개(가재‧붕어‧개구리)’니 서민답게 쫄면 먹여주면 좋아하겠지” 메시지 담긴 듯한 신상 비빔면.
허나 단단히 착각했다. 편의점 등에 가보면 해당 비빔면은 ‘2+1’ 행사 들어간 지 오래다. 이 때문인지 공교롭게도 A사 2세 오너는 올해 초 A사 지주회사(持株會社) 대표이사직에서 사임했다고 한다. 모모후쿠처럼, A사 창업주처럼 직접 맛보지도 않으면서 덜컥 ‘가붕개 라면’이나 출시해 사측에 막대한 적자(赤字) 안긴 탓이 아닌가 생각한다.
비단 A사뿐만 아니라 정치권도 마찬가지다. 모두가 그런 건 아니지만, 이 땅의 상당수 청년‧기성 정치인들은 ‘단칸방’ 살아본 경험도 없고 배 굶어본 적도 없으면서, 즉 눈물 흘려본 적도 없으면서, 서민팔이에 나서고 있다. “못 사는 것들 대충 좋아하는 거 쥐어주면 되겠지” “있는 척 유식(有識)하게 떠들면 알아서 받들어 뫼시겠지” “청년 청년 거리면 가붕개들은 황홀함에 몸 떨겠지” 식이다.
재계는 적자생존(適者生存)의 세계이기에, 다시 말해 소비자가 외면하고 타사 제품 찾으면 도산(倒産)이기에 최소 자정(自淨) 여지는 있다. 이건희 삼성그룹 회장이 “마누라와 자식 빼고 다 바꿔라” 포효(咆哮)하고 휴대전화 15만대를 불태운 것도 이 때문이다.
허나 정당(政黨)은 절대평가(絕對評價) 아닌 상대평가(相對評價)이기에 망할 일이 없다. A정당이 전체 유권자 중 2%를 득표했다 해도 B정당이 1%를 득표하면 A정당은 승리한다. B정당은 졌다 해도 대체수단 없기에 존속된다. 망할 일이 없으니 여야 막론하고 ‘가붕개송’이 합창된다.
가재‧붕어‧개구리가 혀를 찰 노릇이다. 이제 더 이상의 가붕개 정치는 안 된다. 여야는 국민 눈쌀 찌푸리게 하는 요소를 신속히 2+1 떨이로 처리해야 한다. 수요가 있어야 공급도 있는 법, 유권자도 이들에게 휘둘리거나 귀 닫는 대신 올바른 인물 찾아 적극 목소리를 내야 한다. 정치가 살아야 나라도 산다.
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email protected]
그러면 자신들은 상어, 고래, 참치리고 할지도 모르겠네요.
그간 쭉 해온 업적을 봐야하는데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사람을 뽑으니 문제입니다.
이래서 우리 나라가 유독 종교사업이 번창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속에서 열불이 나니 말 나온 김에 매운 라면이나 끊여 먹고 자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