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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대학병원 전문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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펭하

존경하는 시장님께,
저희 내부의 분위기를 조금이라도 말씀드리고 싶어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저는 수도권 대학병원에서 근무하는 12년차 내과 전문의입니다. 잔업을 포함하면 주 100시간 정도 일하고 있고, 서울대 김모 교수가 말하는 (30대 중반 전문의) 연봉의 4분의 1 정도를 받습니다.

 

십수년 전 분위기는 분명 지금과 달랐습니다. 물론 그 때에도 피부과, 성형외과가 인기 있었지만 내과, 외과와 같은 메이저 과, 신경외과, 흉부외과와 같은 고난이도 과에 대해서는 ‘멋있다’와 같은 선망의 분위기가 있었습니다. 도제식 교육의 탈을 쓰고 의국 내에 폭행도 있었고, 당직을 서다 한 연차의 누군가가 실수하면 한 기수 전공의 전체가 일주일동안 아무도 퇴근하지 못하고 24시간동안 일하면서 병원을 지켜야 하는 일도 있었지만, 그것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였습니다.

 

하지만 세상이 바뀌었습니다. 요즘 젊은 세대는 실리적이 되었고, 부당한 요구를 참지 않습니다. 저희 때에는 가정을 버리다시피 하면서도 대학교수 말석의 자리를 기다리는 전임의들이 많이 있었지만, 요즘은 어느 정도의 수련을 거치면, 일하면서 자신의 삶을 누리기 원합니다. 대학병원에는 그들에게 노동과 인내를 강요할 요인이 더 이상 없습니다.

 

시장님, 제가 아는 대다수의 의사들은 ‘의대정원 증원’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필수의료와 지방의료 문제의 해법이 고작 의대정원 증원’인 것이 문제라고 합니다.

 

꼭 필요한 분야에 인재들이 가지 않으려고 한다면, 갈 수 있는 유인요인을 조금씩이라도 만들었으면 좋겠다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던 사람들에게, ‘많이 뽑으면 누군가는 가겠지’가 대책으로 나온 것입니다. 우둔한 저희 세대는 ‘그런가? 천 명 뽑으면 그래도 한 열 명은 우리 과로 올까?’ 라고 고개를 갸웃거리고 있을 때에, 젊은 세대는 ‘꼭 전문의를 할 필요가 없구나’라며 전문의 수련을 그만둔 것입니다. 그리고 저희 생각에 그들은 의사면허를 가진 한 명의 의사이고, 전문의 수련은 누군가가 강제하여 하는 것이 아니기에, 수련을 유지하라고 ‘명령’ 할 수는 없는 노릇입니다. 

 

그들이 수련을 포기함으로써 국민들이 불편해진 것은 우리나라 대학병원 시스템의 한계일 것입니다. 대학병원의 역할은 언젠가 바뀌어야 했지만, 이렇게 급진적인 방식은 아닙니다. 사실 저는 의사가 늘면 한국 의료의 문제가 해결될지 아직 잘 모르겠습니다. 국민들이 의사를 늘리기 원하면 시장님 말씀대로 조금씩 늘려가며 조정하는 것이 현실적인 대안이었을 것입니다. 

 

지금 병원을 지키고 있는 의사들은 말 그대로 멘붕에 빠져 있습니다. 병원은 적자이고, 몸은 힘든데, 눈앞에는 환자가 있어 떠날 수는 없고, 사람들은 의사를 욕합니다. 저는 지난 대선 때에 시장님을 지지하면서 미래에 대한 희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 희망은 점차 꺼져갔고, 지금은 그저 깜깜하기만 합니다. 가깝거나 먼 미래에, 시장님께서 우리나라에 힘이 되어 주실 수 있다면, 저희의 상황도 아주 조금이나마 이해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긴 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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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준표형
    2024.03.21

    우선 의료보험수가부터 조정해야할 겁니다.난이도가 큰 과는 그만큼 보수가 더주어져야겠지요.단계적 증원을 했으면 합니다만 유감입니다.

     

    나는 이과출신이고 의대지망생 이었으나 대입시 한달 앞두고 문과로 돌려 법대를 갔기에 의사분들에대한 동경이 아직도 있습니다. 그래도 세상은 흘러 가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