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3월 자그마한 체구의 중년 여성이 중국의 탈북자 강제 북송을 저지하고자 주한중국대사관 앞에서 11일째 단식 농성을 벌이다 실신해 병원으로 이송됐다. 제18대 국회의원이던 박선영 물망초 이사장의 모습이 국민의 뇌리에 생생히 각인된 순간이다.
탈북자 강제 북송을 둘러싼 현실은 그때보단 나아졌다. 한국 외교부는 중국에 할 말도 제대로 하지 못하던 '조용한 외교'에서 비교적 진일보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한미일 3국이 협력을 강화하고 북한이 러시아와 밀착하자, 중국은 약 석 달째 탈북자 강제 북송을 중단했고, 한국에 일방적으로 '비자 면제'라는 선물을 안겼다.
'탈북자들의 대모'로 불리는 박 이사장은 지난 25일 서울 영등포구 물망초 사무실에서 뉴데일리와 만나 "남남갈등만 없으면 지금은 외교하기에 가장 좋은 때다. 이는 곧 통일로 가는 길이 열리기 좋은 때라는 뜻도 된다"고 현 상황을 평가했다.
박 이사장은 정부가 탈북자를 '도망자'가 아닌 '난민'으로 규정하고 난민촌을 결성해야 한다고 호소했다. 그는 더불어민주당이 이사 추천을 미뤄 8년째 표류 중인 북한인권재단을 '2인 체제 방송통신위원회'를 꾸렸듯이 조속히 출범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국방부가 국군 포로들의 부고 기사조차 막을 정도로 국군 포로 문제에 비협조적인 사실을 지적하며 군 당국의 각성을 촉구했다.
다음은 박 이사장과의 일문일답이다.-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은 북한군 포로를 한국에 보내지 않고 러시아가 생포한 우크라이나군과 교환하겠다고 밝혔다. 한국으로부터 무기를 지원받기 위한 술책으로 보인다.
"젤렌스키에게는 다른 목적이 있을 것이다. 일종의 전략적인 수사일 수도 있다. 다만 우리에게도 국군의 생명과 귀환이 중요하듯이 젤렌스키도 우크라이나군 포로가 중요하다고 생각할 것이다. 북한군 포로들이 왜 북한으로 들어가면 안 되는지 젤렌스키를 설득하는 건 우리 몫이다. 북한군 포로는 북한의 관점에서 보면 '나쁜 놈'이므로 북한에 돌아가면 불이익을 받게 된다. 그런 불이익을 받지 않게 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이들이 몰랐던 사실을 알게끔 정보를 주고 제대로 판단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은 대한민국의 역량에 달려 있다.
탈영·투항하는 북한 병사들의 진정한 의사를 파악하려면 제대로 된 통역이 필요하다. 우크라이나에도 한국어를 잘하는 사람들은 있겠지만, 귀순과 같은 법적인 것을 결정할 수 있는 정도의 통역할 수준은 안 될 것이다. 한국 정부가 우크라이나 정부와 협력해서 통역도 제공해 주고 우리 쪽으로 데리고 올 수 있는 병사들은 데리고 와야 한다."-그러려면 젤렌스키를 설득해야 한다. 젤렌스키는 한국산 무기를 원할 텐데, 북한 병사들이 파병된 상태에서 우리가 무기를 직접적으로 지원하면 국내 종북 세력들이 '동족을 죽였다'는 오명을 씌울 수 있다.
"한국 정부는 젤렌스키와 우크라이나 국민에게 인도적 관점에서, 그리고 국제법적 관점에서 '우크라이나의 과거를 생각해 보라'고 당당하게 말해야 한다. 구소련 치하에서 우크라이나인 250만 명 이상이 굶어 죽은 '홀로도모르'라는 대기근을 기억하는가. 북한 정권이 핵을 개발하는 동안 북한 주민 수백만 명이 우크라이나인들처럼 굶어 죽었다. 그러나 북한 주민들은 우크라이나인들과 달리 자유민주주의를 경험하지 못했기에 그게 억울하다는 것도 모른다. 젤렌스키를 설득하는 건 어렵지 않다. 아무도 도와주지 않았던 대기근 당시 우크라이나가 얼마나 많은 피눈물을 흘렸느냐며 북한 주민들을 구원해야 한다고 설득해야 한다. 그런 '비등점'을 건드려야 한다. 외교도 사람이 하는 것이기에 동병상련으로 감성을 건드려야 한다."-일각에서는 우리 정부가 적극적으로 나서 북한군 포로들을 귀순시키면 국내 종북 세력이 '제2의 납치 공작' 선동을 벌일 수 있다고 우려한다. 2016년 '류경식당 종업원 집단 탈북' 사건 당시 북한은 이들의 자발적인 집단 탈북을 한국 국가정보원의 '기획 탈북'으로 왜곡했고, 국내 종북 세력은 이에 동조하며 북한의 거짓 선동에 힘을 싣고 국내외에서 여론전을 펼쳤다.
"뭘 해야 좌파가 인정하고 수긍하겠는가. 초지일관으로 확실한 비전과 추진력을 가지면 좌파가 아니라 그 누구도 못 건드린다. 가해자는 우왕좌왕하고 눈치 보는 사람을 한 대 더 때리게 돼 있다. 왜 눈치를 보나. 자유와 정의, 우리의 헌법 정신에 따라서 판단하면 된다. 종북 좌파도 한국 국민이다. 국민이 뽑았다는 것은 대통령인 나의 노선을 지지한다는 뜻이라는 사실을 잊어선 안 된다. 좌파는 우리 정부가 북한에 돈을 지원하지 않는 이상 우파 정권이 어떤 결정을 내려도 절대로 박수 치지 않는다. 당당하게 정도를 걸으면 좌파들이 함부로 못 한다."
-11월 7일에 북한에 대한 보편적 정례 인권검토(UPR) 회의가 개최됐다. 그런데 외교부는 북한의 러시아 파병과 관련해 사전 서면질의는 물론이고 현장 권고발언으로도 문제를 제기하지 않았다. "북한은 주민의 기본적 자유를 억압하고 부족한 자원을 북한 주민의 민생이 아닌 불법 대량살상무기 개발에 탕진할 뿐 아니라 노동 착취마저 하고 있다"는 발언이 어떻게 파병에 대한 문제 제기인가."한국은 문제 제기를 안 했다. 미국이 했다. 한국 외교부의 존재 목적은 마치 '자극하지 말자'인 것 같다. 탈북자가 중국 공안에 잡혀서 곧 중국 단둥을 통해 북송될 것 같은 상황이라 국제사회에 강제 북송 문제를 제기해 달라고 외교부에 요청했다. 그런데 돌아오는 대답은 '아무 데도 얘기하지 말고 가만히 있어라'였다. 이게 지금까지의 외교부의 태도였다. 최근 유엔총회 제3위원회가 채택한 북한인권결의안에 한국은 공동제안국으로 참여했다. 그런데 한국이 단 한 번이라도 펜홀더(penholder·문안작성 주도국)가 된 적이 있는가. 없다. '북한 문제를 가장 잘 알고 있는 우리가 문안 작성을 주도하겠다'고 나서야 하는데 그간 북한인권결의안 표결에 기권하고 심지어 투표 현장에서 퇴장까지 했다. 공동제안국이라니 한심한 노릇이다. 내가 이렇게 비판하니 외교부가 나를 엄청나게 싫어한다."-그래도 이번 UPR은 비교적 성공적이었다는 평가를 받는다.
"통일부도 열심히 했지만 가장 큰 요인은 우리를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달라진 시선에 있었다. 예전에는 북한인권단체들이 각국 주유엔 대표부를 만나려고 해도 '일정이 꽉 차서 안 된다'며 안 만나줬다. 그런데 이번에는 '잠깐 볼 수 있는데 괜찮겠느냐', '오후 4시 반이나 5시에 만나도 괜찮으면 미팅하자'고 했다. 4시면 유엔 사무실이 문을 닫는 시각이다. 이런 늦은 시간인데도 이들은 우리가 하는 말을 경청하고 열심히 받아 적었다."-어떤 점이 특히 인상 깊었는가."이번 UPR에서는 매매혼, 아동 권리, 강제 실종 등 북한의 다양한 범죄가 언급됐다. 북한 인권 문제는 고문, 인권 침해와 착취 등 전 세계 모든 범죄의 총집합체라고 볼 수 있다. UPR에서 각국에 주어진 발언 시간은 1분이다. 북한의 그 많은 범죄를 언급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시간이다. 그런데 국가끼리 서로 범죄 종류를 나눠서 다양한 범죄가 언급될 수 있었다. 과거에는 볼 수 없었던 광경이었다.
각국이 1분씩 권고발언을 하는 동안 북한은 그 1분을 훼방하기 위해 계속 이의를 제기했다. '북한'(North Korea)이라고 하지 말고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DPRK)이라고 부르라는 말만 계속했다. 본인들도 그 외에는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UPR이 종료되고 나서가 더 인상적이었다. 각국 대표들이 서로 '수고하셨어요'라며 악수하는데, 북한 대표부에는 단 한 명 외에는 악수를 청하지 않았다. 화면에 얼굴이 잡히지 않아서 어느 나라 대표부였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중국과 러시아 대표부는 확실히 아니었다. 중국과 러시아도 북한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미국에 대항하기 위해 북한을 활용하는 것뿐이다. 우리에게 통일의 문이 열리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문을 닫히지 않게 유지하고 넓히는 것이 우리 외교부의 역할이고 대통령의 외교력이다."-정말 지금 통일의 기회가 왔다고 보는가.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열리기 직전에 중국은 우리가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한국인에 대한 비자를 면제했다. 우리 국민은 반기지 않았다. 과거에 우리가 원할 때 중국이 해줬으면 환영받았겠지만, 이번에는 우리가 원하지도 않았는데 중국이 느닷없이 그런 결정을 내렸다. 왜 그랬겠는가. 중국은 한국인에 대한 비자를 면제함으로써 북한에 대해 '배신자' 낙인을 찍은 것이다.
우리는 그간 YS(김영삼) 때 한번, DJ(김대중) 때 한 번 이렇게 통일의 기회를 두 번 놓쳤다. 이제 세 번째 기회가 왔다. 남남갈등만 없으면 지금처럼 좋은 때가 없다. 지금 외교하기에 가장 좋은 때다. 이는 곧 통일로 가는 길이 열리기 좋은 때라는 뜻도 된다. 이 기회를 놓치면 안 된다."-북중러 전체주의 국가들은 어차피 자국의 이익에 따라 이합집산을 반복해 왔다. 북중 관계가 그 정도로 최악인가.
"중국이 탈북자 북송을 멈춘 지 두 달이 됐다. 추석 이후로 안 보내고 있다. 이런 때가 없었다. 중국은 지난해 10월 항저우 아시안게임 직전까지 탈북자를 북송했다. 아시안게임이 진행되는 한 달이 채 안 되는 기간에 북송을 잠깐 멈췄다가 아시안게임이 끝나자마자 북송을 재개했고 그 이후 계속 북송했다. 중국은 러시아와 밀착하고 용병까지 보낸 북한을 배신자로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파병이 아니라 용병으로 규정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싶다."-왜 용병인가. 파병이라고 규정해야 북한에 책임을 물을 수 있지 않나.
"파병이라고 하면 한국이 설 자리가 없어진다. 북한이 '주권 국가'로서 파병을 결정했다고 하면 정당화된다. 팩트 자체도 파병이 아니라 용병이다. 파병과 용병은 기본적으로 다르다. 북한 군인들은 북한군으로 러시아에 보내진 게 아니라 시베리아 소수민족으로 위장했다. 파병은 자신의 국적을 걸고서 하는 것 아닌가. 파병하면 자국 국기를 달고 자국 부대의 이름으로 전쟁에 참여하고 개개인들이 파병 대가를 받는다. 그런데 북한의 경우는 김정은이 파병 대가를 받는다. 이게 어떻게 파병인가. 김정은 정권은 내가 보호해야 할 대상인 북한 주민들을 러시아에 용병으로 투입하면서 그 가족에게는 알리지도 않았다. 이건 납치이고 인신매매다. 사실 그대로 용병으로 규정하고 임시재판소를 열어야 한다. 그리고 '보호책임'(R2P·Responsibility to Protect) 위반으로 북한 정권에 책임을 지게 해야 한다."
-용어와 개념이 중요하다는 데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런데 외교부는 유엔에서 탈북자 문제를 얘기할 때도 난민이라는 표현을 안 쓰고 중국 책임도 직접적으로 명시하지 않는다. 조태열 외교부 장관도 '탈북자 전원 수용 원칙'을 명시하지 않는다."외교부가 '조용한 외교'를 하려니까 난민이라는 용어를 안 쓰는 것이다. 초기에 심지어 탈북자를 '도망자'라고 했다. 도망자라는 용어에는 북한에서 뛰쳐나온 도망자를 잡아서 되돌려줘야 한다는 북한의 내재적 시각이 담겼다. 이데올로기는 용어 전쟁이고 정치와 외교도 레토릭이 중요한데, 외교부의 인식이 너무 안이하다. '탈북자'라는 용어도 애매모호하다. 탈북자를 난민으로 규정해야 탈북자가 난민으로서 보호받을 수 있는 객체가 되고 난민촌도 결성할 수 있다. 난민촌이 형성되면 유엔이 난민 구호에 개입할 수 있으므로 탈북자들을 데리고 오기가 한결 용이하다. 탈북자들이 신변의 위협을 받지 않고 난민촌에서 생활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다. 그래서 내가 국회의원 시절에 난민촌을 결성하자고 제언했다. 당시 이명박 정부가 도와줄 것 같았는데 끝까지 안 도와줘서 결국 못했다."
-정부가 탈북자를 난민으로 규정하지 않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보는가.
"탈북자를 난민으로 규정하면 한국 정부에는 국외에서 도피 중인 탈북자들을 수용하고 보호할 의무가 생긴다. 이 의무를 피하고 싶은 것이다. 북한 주민은 헌법상 우리 국민이고, 탈북자들은 다시는 돌아갈 생각이 없는 북한에서 탈출했다. 우리가 나서서 이들을 한국으로 데려오겠다고 해야 한다."
-북한 인권 문제를 풀려면 국제사회의 협조가 중요한데 외교부 북한인권국제협력대사직은 3개월 넘게 공석이다. '김정은의 금고지기'로 불리는 노동당 39호실 고위 관리 리정호 씨의 딸인 탈북자 리서현 씨가 임명됐지만 탈북자 단체들의 반대에 부딪혔다.
"북한인권대사는 영어를 잘한다고 시키는 자리가 아니다. 상징적인 인물, 일을 잘할 수 있는 사람, 전문가 셋 중 하나를 임명해야 한다. 그런데 임명됐던 여성은 이 중 단 한 가지에도 해당하지 않는다. 심지어 국적도 미국이다. 대한민국의 국익을 위해서 뛰어야 하는 대사에 어떻게 미국인을 쓰는가."
-그래도 북한 인권에 대해서 목소리를 낸 건 윤석열 정부밖에 없었다.
"박근혜 정부 때는 북한 인권 문제를 다루려고 하긴 했지만 외교적 수사에 치중했다. 국내 후속 조치가 없었다. '통일 대박'을 자세히 살펴보면 한국의 통일을 위해 국제사회가 원조해 주라는 얘기다. 통일이 원조받을 일인가. '통일 대박'을 외치려면 유엔에서 하든지, 중국을 향해서 하든지, 아니면 정석대로 우리 국민을 설득하든지 해야 했다. 반면 윤석열 정부는 대통령이 북한 인권에 대해 목소리를 내고 '북한이탈주민의 날'도 만들었다."
-8년째 출범하지 못하고 있는 북한인권재단도 문제다. 지난달 17일 서울고등법원 판결에 따라 통일부 장관 몫 2명, 여당 몫 5명 추천 이사로도 재단 출범이 가능한 길이 열렸지만 우원식 국회의장이 상고장을 냈다."지금이라도 북한인권재단을 출범시킬 수 있다. 북한인권재단은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6년 북한인권법 통과로 설치 근거가 마련됐다. 당시 여당이 다수당이었으니 대통령이 지명할 수 있는 사람, 당이 추천할 수 있는 사람, 통일부 장관이 임명할 수 있는 사람 이렇게 하면 과반수가 채워진다. 그런데도 안 했다. 2016년에 마포구에 마련한 북한인권재단 사무실은 공실로 있다가 2018년 6월 철수했는데 이것도 문제다. 북한인권재단 사무실을 없앤 이후 종북 세력은 '우리 동의 없이 아무것도 못 한다'며 더욱 몽니를 부리고 있다. 몽니는 아무 앞에서나 안 부린다. 아기들도 상대를 봐가며 떼를 쓰지 않나. 최근에 위원 한두 명으로 방송통신위원회를 꾸렸듯이 북한인권재단도 그렇게 출범시키면 된다."
-국군 포로 문제에 대해서는 진상규명위원회가 설치된 적이 없는 까닭도 궁금하다. 지난 국회에서 2021년 6월 25일 조태용 당시 국민의힘 의원이 '국군 포로 진상규명 법안'을 발의했지만 정권 교체 후에도 진전이 없다."국방부가 국군 포로 문제를 인정하지 않으려고 하기 때문이다. 국방부는 국군 포로 문제가 양성화되는 것 자체를 원치 않는다. 내가 '대한민국에 영혼이 없다'고 말하는 이유다. 미국은 1개 중대를 보내서라도 적진에 낙오된 전우 한 명을 구하려고 한다. 영화 '라이언 일병 구하기'에서처럼 미국은 실종자와 국군포로를 끝까지 찾는다는 모토를 갖고 있다. 가끔 미국이 국군의 유해를 보내줬다는 보도가 나오는데, 그게 다 미국의 유전자 데이터베이스 덕분이다. 군인 부모의 유전자까지 모두 데이터베이스화해서 화장된 유해의 신원을 확인할 수 있을 정도다. 과학은 이런 걸 위해서 있는 거 아닌가."
-미국 국방부에는 전쟁포로·실종자 확인국(DPAA)이 있는데, 한국 국방부에는 없다. 왜 우리는 국군 포로 문제에 소극적인가.
"국군 포로 문제를 감추고 싶어 하기 때문이다. 북한과 정상회담을 추진하려고 할 때마다 북한은 '국군 포로 문제를 다루면 정상회담을 안 하겠다'며 알레르기 반응을 보여 왔다. 대체 누구를 위해서 정상회담을 하는가. 국군 포로는 70년이 넘게 북한에 억류된 대한민국 국민이다. 북한의 반인도적 범죄이자 전쟁 범죄를 우리가 스스로 눈 감고 북한 눈치를 보며 함구해 왔다. 그러면서 한국 대통령은 북한 정권 수괴와 악수하고 도보다리도 건너고 순안비행장에 내리며 정상회담이라는 걸 해왔다. 우리는 중국 원나라에 수많은 처녀와 총각을 조공으로 바쳤다. 여자들은 지금의 탈북자처럼 온갖 고초를 겪다 도망쳐 고향에 찾아갔는데 부모로부터 '화냥년'(환향년)이라는 욕을 들었다. 이와 비슷하게 국군 포로들을 향해선 '얼마나 모자라면 포로가 됐냐', '포로가 됐으니 자결했어야 한다', '당신이 지금까지 살아남았다는 건 북한에 협조했다는 뜻이다'라고 판단한다."
-그런 인식 때문에 국군 포로 문제에 소극적이라니 잘 이해가 안 된다."현실적인 이유도 있다. 6.25 전쟁 당시 지휘관이었던 장군들이 지금은 대부분 사망했지만 생전에 계속 국군 포로 문제를 외면했다. 국군 포로에 대해 책임지지 않기 위해서였다. 대부분의 국군 포로 어르신이 실종자 내지는 전사자로 기록돼 있었다. 포로라고 돼 있는 사람이 단 한 명도 없었다. 지휘관 밑에서 소위, 중위, 대위로 근무했던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간 이들을 실종자나 전사자라고 보고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국군 포로 어르신들이 귀순하면 전사자 기록에 있는 자기 이름을 지우는 작업부터 한다. 물론 전쟁 중에는 누가 실종됐는지 포로로 잡혀갔는지 어떻게 알겠는가. 기록에 오류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나중에 국군 포로가 귀순하면 기록 오류를 인정하고 적진에 두고 구하지 않은 것에 대해 사죄했어야 한다. 그렇게 해야 국가다. 그래야 국군 포로 어르신들이 70여 년간 갖고 있던 트라우마와 분노가 없어지지 않겠는가. 정말 비겁한 나라다.
북한과 대화하는 데 국군 포로 문제가 걸림돌이 된다는 판단으로 인해 지금도 국군 포로 어르신들 돌아가시면 국방부가 부고도 못 내게 한다. 내가 친한 기자들에게 어느 어르신이 돌아가셨다고 알려주곤 한다. 기사가 나가면 국방부가 득달같이 우리에게 전화해서 '당신들이 보도자료를 냈느냐', '언론사에 연락해서 기사를 내리라'며 다그친다.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문제는 국방부뿐만이 아니다. 올해 초 당시 외교부 대변인은 기자에게 전화를 걸어 '국군 포로 가족들의 강제 북송 문제는 중국의 문제가 아니다'라고 항변하기도 했다."외교부는 '조용한 외교'라는 일종의 '사대주의 외교'를 하고 있다. 갓난아이도 울지 않으면 배부른 줄 알고 엄마가 젖을 주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주장하지 않는 자의 권리는 보호받지 못한다."
-북한에 억류된 국군 포로 현황이 17년째 업데이트되고 있지 않은 이유가 궁금해 국방부에 문의했더니 '2011년 이후에 귀환한 국군 포로가 없어서 현황이 업데이트되지 않았다'는 답이 돌아왔다.
"가장 최근 귀순한 국군 포로 할아버지는 제가 모시고 왔다. 그때 제가 발표한 현황이 그대로 국방부에 남아 있다. 저도 북한의 어느 탄광에 국군 포로 어르신 몇 명 정도가 살아 계신지를 대충 알고 있는데 국방부가 모르겠는가. 정말 나쁜 사람들이다. 포로가 된 것 자체를 '바보', '머저리'라고 보는 것이다.
국군 포로 어르신들께 '어쩌다가 포로가 되셨느냐'고 물어보면 '전쟁 중에 징집됐는데 총 쏘는 훈련도 제대로 받지 못했다. 그런데 중대장이 다리를 다쳐 업고 뛰다 보니 포로가 됐다', '총기도 없이 밤중에 나를 토굴에 데려다 놓으며 다음 날 아침까지 여기에 가만히 있으라고 지시하길래 가만히 있다가 인민군에게 잡혔다. 직업군인들은 모두 도망갔다'고 말씀하셨다. 어르신 중 한 분은 '당시 사단장 하던 분을 만나는 게 소원이다. 왜 우리를 남겨놓고 갔느냐고 물어보고 싶다'고 말했다. 몇 년 전에 돌아가신 그 사단장의 모습이 텔레비전에 나오면 그 어르신은 채널을 돌리곤 하셨다."
-6·25 전쟁 당시 북한군에 끌려가 강제 노역에 시달린 국군 포로들에 대한 손해배상금 지급이 지난 2월 좌절됐는데 현재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가."대법원에 올라가 있는데 대법원이 우리 사건에 관심이 없는 것 같다. 국군 포로 원고 어르신들은 모두 돌아가셔서 그 사건은 유족이 승계했는데 여전히 진행되고 있지 않다."
(기자註: '남북경제문화협력재단'(경문협)이 북한과 체결한 '2009년 합의서'에 따르면 경문협은 저작물 사용료를 북한을 대리해 '접수'할 권한을 북한으로부터 위임받았다. 북한의 민족화해협의회와 저작권사무국은 2009년 경문협 산하 남북저작권센터에 '저작권 사용료 접수 권한'을 부여하는 '09년 합의서'를 체결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경문협이 손해배상금을 지급할 '제3채무자'의 지위가 없다고 봤다. 국군포로 측 소송대리인들은 증거로 제출한 2009년 합의서를 고려하지 않은 결정이라며 상고 의사를 밝혔다.)
☞박선영 물망초 이사장은:1956년 강원도 양구에서 출생해 춘천여고와 이화여대 법학과를 졸업했다. 1977년부터 1989년 MBC 기자로 활동하다 서울대 대학원에 진학해 1995년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가톨릭대 법대 교수와 동국대 법대 교수, 한국공법학회 부회장과 한국헌법학회 부회장을 역임했다. 2008년부터 2012년까지 제18대 국회의원을 지내며 임기 내내 자유선진당 대변인으로 활동했다. 2012년 2월 북한인권단체인 사단법인 물망초를 설립했다.
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24/11/27/202411270002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