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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오세훈과 누에나방

오주한

주변 손가락질 앞 고치에서 탄생한 비단의 기적

기후동행카드, ‘민생혁명’ 충분히 자리매김 가능

 

실크로드 대역사 써내려간 의류혁명

 

가축 하면 흔히 떠올리는 건 소‧양‧돼지‧개‧닭 등 오축(五畜)이다. 이들 모두 포유류‧조류로서 노동력‧육류(肉類)를 인류에게 제공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그런데 곤충으로서 ‘노동력 제로’ ‘식용 노(No)’이면서도 당당히 가축에 이름 올린 존재가 있다. 누에나방(Silkworm moth)이다.

 

누에나방 성체(成體)는, 물론 어디까지나 곤충이기에 벌레공포증 등을 가지신 분들로선 불쾌감이 드실 수 있지만, 일반적으로 굉장히 귀여운 외모로 유명하다.

 

토끼귀를 연상케 하는 두 개의 긴 더듬이, 크고 까맣고 초롱초롱한 눈, 희고 오동통하며 복슬복슬한 몸통, 앙증맞게 달린 다리, 40~50㎜의 자그마한 몸집은 흡사 숲속의 요정(妖精)을 떠올리게 한다. 사람 손가락 위에 얌전히 앉아 이리저리 몸 정리 하는 모습은 절로 탄성(歎聲)을 자아낸다.

 

누에나방은 5000여년 전 길들여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교육부 산하 한국학중앙연구회 운영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등에 의하면 사육 발원지는 장강(長江) 일대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누가 선구자(先驅者)인지는 신농씨(神農氏) 또는 복희씨(伏羲氏)라는 설이 있는 등 의견이 분분하다.

 

문헌(文獻)상 최초기록은 회남자(淮南子) 잠경(蠶經)의 “황제(黃帝) 헌원씨(軒轅氏)의 부인 서릉씨(西陵氏) 누조(嫘祖)가 처음 누에를 쳤다”는 구절이다. 어느 날 뽕나무 밑에서 물을 마시던 서릉씨가 퐁당 입수(入水)한 누에고치를 건졌다는 내용이다. 다만 회남자 저자인 전한(前漢) 회남왕(淮南王) 유안(劉安‧생몰연도 기원전 179~기원전 122)도 우리와 마찬가지로 역사시대 인물이기에, 타임머신이 나오지 않는 한 팩트체크할 길이 없는 그도 민간설화를 듣고 그대로 필사(筆寫)했을 가능성 크다.

 

누에는 수천년 동안 사람 손때를 탔기에 지금은 야생(野生)에서의 독자생존이 절대 불가능하다. 사람 품속에서 잘 먹고 잘 살았는지 치명적 매력의 오동통한 몸매로 진화했으며, 때문에 날개가 있음에도 날지 못하고 또 그럴 필요도 없다.

 

누에나방 유충(幼蟲)은 한자로 잠(蠶)이라고 한다. 현대에는 성체‧유충 모두 애완용으로도 각광받지만, 고대에는 유충이 누에나방 사육 이유의 전부라 해도 과언 아니었다. 유충 정확히 말하자면 고치에서 생산되는 건 다름 아닌 곱디고운 한 섬유(纖維)다.

 

고대~중세 중동의 카라반(Caravan)과 유럽 베네치아상인들은, 오로지 해당 실을 얻기 위해 수천㎞에 달하는 광활한 대초원‧사막을 걷고 또 걸었다. 마침내 원(元)나라 등 동방(東方)의 이국(異國)에 도착한 이들은 황제를 알현(謁見)하고 산더미 같은 섬유를 하사받았다. 전세계에 유통된 실은 부르는 게 값이라 할 정도로 어마어마한 고가(高價)에 팔려나갔다.

 

가볍고 부드러우며 다채로운 반사광(反射光)까지 내뿜는 이 신비의 섬유는 바로 실크(Silk) 즉 비단(緋緞)이다. 카라반 등이 걸은 실크로드(Silk Road)는 말 그대로 비단길이다. 지금은 합성섬유 등장으로 수요가 줄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특유의 고급스러움으로 사랑받는 비단은 숲속의 요정이 만들어 낸 대자연의 보고(寶庫)였던 셈이다.

 

복잡한 공정이지만 없어선 안 될 생활필수품

 

비단을 뽑는 과정은 복잡하고 번거롭다. 성체 누에나방이 낳은 좁쌀만한 알에서 깨어난 유충은 무서운 식탐(食貪) 발휘한다. 먹이는 오로지 뽕잎이다. 근세 이전 세계 각 국에서 누에 가축화를 연구했지만 실패한 까닭 중 하나가 바로 숨겨진 식성(食性)이었다. 역대 중원(中原)왕조는 비단을 특급 전략물자로 규정하고 그 생산기술 유출을 엄금(嚴禁)했다.

 

다만 한서(漢書) 지리지(地理志) 등 기록에 의하면 우리 한민족은 적어도 3000여년 전부터 양잠(養蠶)테크닉을 습득했다. 조선 세조(世祖)는 종상법(種桑法)을 시행해 각 호(戶)마다 뽕나무‧누에를 기르게 하는 등 비단산업을 대단히 장려했다. 서울 서초구 잠원동(蠶院洞) 지역명도 양잠에서 비롯됐다.

 

갓 태어난 3㎜ 크기의 유충은 8㎝로 자랄 때까지 먹고 자고를 반복한다. 아기누에가 사각사각 뽕잎 갉아먹는 소리는, 2010년 환경부 선정 ‘한국의 아름다운 소리 100선’에 포함될 정도로 청명(淸明)하다고 한다. 많이 먹는 만큼 ‘응가’도 푸짐하게 한다.

 

끊임없이 스스로를 살찌운 유충은, 출생 20일 안팎 후 5령(齡)에 접어들어서야 숟가락 내려놓고 고치를 짓기 위해 실 즉 비단을 내뿜는다. 60시간의 대역사(大役事) 끝에 2.5g 무게의 고치가 완성되면 유충은 그 안에서 70시간 후 번데기가 된다. 12~16일 뒤에는 어엿한 어른누에가 돼 힘겹게 고치를 깨고 세상 구경하러 나온다.

 

일부 동물보호론자들에게는 불편한 진실일 수 있지만, 실뽑기는 고치 단계에서 진행된다. 끓는 물에 넣어 삶으면 한 개의 고치에서 1.2~1.5㎞ 길이의 비단을 얻을 수 있다. 무사히 성체까지 자라는 건 번식을 위한 소수뿐이다. 부화 후 실을 뽑으면 상품성이 크게 떨어진다고 한다. 실이 다 풀리고 남은 번데기는 ‘추억의 간식’ 길거리음식으로서 전국 초중고교 앞에서 소비됐다. 일부 유충은 동충하초(冬蟲夏草) 숙주로 쓰이기도 한다.

 

기후동행카드, 일대(一代) 교통혁명‧민생혁명 될 수도

 

이처럼 번거로운 공정(工程)에도 불구하고 비단을 발견한 최초의 인간은, 강철 같은 도전정신으로 마침내 억세고 무거운 가죽옷 또는 10원짜리 ‘타잔 빤스’ 한 장만 입던 인류 의류사(衣類史)에 획기적 전환점 가져왔다. 저 흔하디흔한 꼬물꼬물 애벌레 고치에서 저토록 황홀한 광채의 올실이 나올 줄 누가 알았겠는가.

 

마치 흉악한 집게발 위험 무릅쓰고 꽃게를 처음 삶아 속살 빼먹었던 첫 인간처럼, 맨들맨들 문어와의 사투 끝에 간장 찍어 맛나게 먹었던 첫 사람처럼, 비단을 처음 발견한 인물도 “원래 하던 대로 농사나 짓지 저런 할 일 없는 백수건달놈” “주머니에 돈이 남아도나” 주변 손가락질 감수하면서까지 고치를 삶고 또 삶아 마침내 주변을 까무러치게 했을 것임은 분명하다.

 

잠사업(蠶絲業) 지위를 보여주는 관련 설화는 무수하다. 고대인류는 서릉씨를 잠신(蠶神)으로 받들고 누에를 천충(天蟲‧하늘이 내린 곤충)으로 명명했다. 지금도 절강성(浙江省) 항주(杭州)에선 매년 잠화절(蠶花節)이란 명절을 지낸다. 고려~조선왕조도 오늘날의 서울 성북구 성북동 선잠단지(先蠶壇址)에서 매년 3월 서릉씨에게 제사 올리고 풍요로운 양잠을 기원했다.

 

오세훈 서울시장이 한 달에 6만5000원으로 대중교통을 무제한 이용할 수 있는 ‘기후동행카드’를 내년 1월부터 시범운영할 예정이다. 이를 두고 정치권 일각 특히 야권(野圈)에선 “포퓰리즘(Populism)” “예산이 남아도나” 등 비판이 나온다. 허나 시민들 반응은 폭발적이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에서 기후동행카드로 검색 시 ‘신청’ ‘경기도’란 연관검색어가 자동으로 뜬다.

 

필자를 포함한 하루하루 팍팍한 삶의 이들에겐 교통비 절약도 가계(家計)에 크나큰 도움이 된다. 오 시장 측은 이미 시(市) 예산 마이너스 우려 대응책도 마련한 것으로 전해진다. 양잠도 첫 시도 때는 할 일 없는 이의 속칭 돈지랄쯤으로 여겨졌으나, 그 혜택은 수천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 모두가 얻고 있다. 고치에서 비단을 뽑아내듯, 언뜻 무가치(無價値)해 보이는 그 속에서 유가치(有價値)함을 충분히 창조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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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email protected]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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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dol7707

    그게 윤석열한테 잘 보이려는 목적 아닐까요?

  • 풀소유

    과정만 공정하고 깨끗하다면

    시범운영으로 여러가지 효율성을 시험해 보는 것도 괜찮다고 생각합니다.

    부의 재분배 ‘안심소득’도 그렇고요.

    그런데 오시장은 취약계층 안에 여성을 껴넣어 여성 특화된 정책을 많이 펼치는데 이건 포퓰리즘으로 비춰질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