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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드라마틱한 육갑의 풍년 엑시트해야

오주한

한단지보 고사처럼 유구한 육갑(六甲)경계 인류사

대국민 보고에서 드라마 재벌대사 읊는 A씨 가관

 

고대 패션의 중심지 한단

 

조(趙)나라는 전국시대(戰國時代) 국가 중 하나다. 주(周)나라 제후국으로서 중원(中原)에 근거지 두던 진(晉)나라로부터 갈라져 나왔다.

 

조나라는 마치 대한민국 부산 같은 역할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지금은 아닌지도 모르겠으나, 부산은 한 때 미일(美日) 등의 신문물(新文物)이 국내로 쏟아져 들어오는 통로 같은 역할을 했다.

 

조나라에 수입된 대표 문물은 기마(騎馬)‧호복(胡服)이다. 무령왕(武靈王) 조옹(趙雍‧생몰연도 기원전 340~295)은 동아시아 최초로 기병(騎兵) 체계를 채택했다.

 

그간 극동(極東)에선 전차 탄 소수귀족이 전쟁 주역이었다. 비싼 전차는 대량생산도 어렵고 오로지 평지(平地)에서만 제대로 된 기동 가능하다. 한 번 뒤집어지면 생사 오가는 전장(戰場)에서 마차(馬車) 바로 세울 여유 따윈 없기에 스티커 필요한 대형폐기물‧길막이 밖에 안 된다.

 

허나 유목민(遊牧民)의 기마는, 비록 보병(步兵)보다는 그 정도가 덜하지만, 또 당시엔 등자(鐙子‧발받이)가 없었기에 지금보다 기마술 습득에 더 큰 노력 필요했지만, 익숙해지기만 하면 비탈진 지형에서도 기동하고 싸울 수 있다. 게다가 마차도 필요 없기에 말 번식기술만 습득하면 대량생산 가능하다. 병가(兵家)에 이르기를 유리한 곳으로의 전장 선점은 반은 이기고 들어가는 게임이다.

 

또 하나 더. 동아시아에선 남성도 치마 형태의 하의(下衣)를 착용했다. 이는 마상(馬上)의 기수(騎手) 허벅지 등에 부상 입힐 가능성이 높다. 부상이 누적되면 결국 전투력은 바닥 수준으로 떨어지고 만다. 이에 조옹은 기병과 함께 동아시아 최초의 바지 호복도 수입했다.

 

당연히 이 ‘오랑캐 패션’에 조야(朝野) 반발은 컸다. 심지어 세자(世子)마저도 “남자가 자고로 치마를 입어야지(?) 바지라니 될 말인가” 반항했다. 조옹은 폐세자(廢世子)라는 극약처방 두면서까지 바지로 갈아타고 말 등에 올랐다. 조옹은 강력한 기병대로 진(秦)나라를 막는 한편 중산국(中山國)을 합병해 국위선양(國威宣揚)했다.

 

“분수 모르고 나대면 동바가 될 것이오”

 

‘오랑캐 패션’은 머잖아 각 국에서 대규모 신드롬 일으켰던 모양이다. 남성들은 너도나도 입던 치마 엄마‧누이‧애인 주고서 “나는 한단(邯郸) 스타일” 외치며 바지 사러 달려갔다. 조나라 수도 한단은 마치 오늘날의 뉴욕‧파리처럼 패션의 중심지로 기능했다.

 

이 광경 보여주는 옛 이야기가 장자(莊子) 추수편(秋水篇)에 나온다. 공손룡(公孫龍‧기원전 320?~250?)은 자신이야말로 천하제일 변설가(辯舌家)라 자처하던 인물이었다. 그가 속한 명가(名家)는 제자백가(諸子百家) 중 하나로서, 한마디로 말장난을 중시하는 학파였다.

 

대표적 궤변(詭辯)은 백마비마론(白馬非馬論)이다. 공손룡은 “백마(白馬)는 빛깔의 개념이고 말(馬)은 형체의 개념이다. 따라서 백마는 백마 그 자체일 뿐이지 말은 아니다” 주장했다.

 

“명분과 실재(實在)를 혼동해선 안 된다”는 그럴싸한 이유가 깔렸으나 현실에선 당연히 전혀 쓸모없는 말장난이었다. 이는 헛소리 참다못한 한 농부와의 문답(問答)에서 간단히 논파(論破)됐다. “그럼 저게 말이 아니면 뭐 하는 짐승이오?” “(...)”

 

사실 이 사짜(사기)기술은 개척자(開拓者)가 따로 있었다. 주나라 이전에 멸망한 상(商‧은)나라의 후예 송(宋)나라 출신 인물 아열(兒說)이었다.

 

한비자(韓非子)에 따르면 아열도 백마 타고 관문(關門) 지나다 하이패스 찍히자 “백마는 말이 아니다” “내가 그렇다면 그런 거야” 떼썼다. 수문장(守門將)은 “그럼 이게 양이냐”며 멍석에 정성껏 말아 물리교육 시행했다. 이러한 사기술이 시간 지나 잊히자 공손룡이 다시 끄집어 내 돈벌이에 활용한 것이었다.

 

그런데 공손룡은 정말 자기 학설이 중요하다고, 자신의 논리가 맞다고 착각했던 모양이다. 그는 장자의 명망(名望) 듣자 간 크게도 장자에게 도전장 내밀었다. 이 불쌍한 꼴 보다 못한 위모(魏牟)란 선비는 혀를 차며 말했다.

 

“예전에 연(燕)나라 젊은이가 한단의 (바지 입고 걷는) 최신 유행 걸음걸이 배우러 간 적 있소. 그놈은 (뱁새가 황새 따라가듯) 난리블루스를 췄지만, 제대로 배우기는커녕 본래 걸음걸이도 잊고 기어서 돌아갔소. 그대도 장자와 설전(舌戰) 벌였다간 본래 지혜마저도 잊고 동바(동네바보형) 멍게 말미잘이 될 것이오”

 

겉으로만 있는 척 유식한 척하던 공손룡은, 마찬가지로 헛바람만 들어 황새 따라하려다 낮은 포복으로 귀가(歸家)한 연나라 청년처럼 다리 찢어지게 달아났다. 이 얘기가 얼마나 유명했냐면 한단지보(邯鄲之步) 고사로서 2000년도 더 지난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21세기 대한민국의 동바들

 

“드라마틱하게 엑시트” 무슨 재벌 사모님 등장하는 아침드라마 대사가 아니다. 최근 한 정부부처(政府部處) 장관에 지명된 A씨가 밝힌 ‘업무각오’다.

 

해당 대사가 일반국민 사이에서 얼마나 안 좋은 의미로 유명하냐면, 신고한 재산만 백수십억대의 A씨는 인터넷검색 같은 천박한 건 안 해서 알지 모를지 모르겠으나, 포털사이트 네이버 검색창에 ‘드라마틱’을 쓰기만 해도 연관검색어에 자동으로 뜬다.

 

“드라마틱하게 엑스트” 뜻이 뭐냐 했더니 논란의 해당 부처를 드라마틱하게(극적으로) 폐지(exit‧탈출)하겠다는 의미라고 한다.

 

무슨 폐지를 드라마틱하게 한다는 것도 뭘 어떻게 한다는 건지 이해가 잘 안 가지만, 대(對)국민 보고 격인 언론 질의응답에서 그냥 “드라마틱하게 폐지” 또는 “극적으로 철폐”라 해도 될 것을, 굳이 영어 읊어가며 하는 게 정말 지X발랄‧육갑(六甲) 한다는 것으로 연관검색어 자동 연동(連動) 현상은 이해되고 있다.

 

정작 A씨는 해당 부처업무에서의 전문성 결여(缺如) 논란을 사고 있다. 공교롭게도 A씨 부처는 정계(政界)인사‧어용(御用)시민단체 ‘합법적 돈줄’ 역할을 하는 것 아니냐는 의심을 오래 전부터 받아왔다. 더더욱 공교롭게도 A씨는, 당사자들은 의혹 일체를 부인 중이나, ‘Yuji(유지)’ 논란 산 정치권 고위인사 B씨와의 친분 의혹이 있다.

 

A‧B씨가 공모(共謀)해 돈줄 논란의 정부부처를 장악하려는 것 아니냐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리라 믿고 싶다. 공손룡과 연나라 청년 연상케 하는 두 사람의 ‘헛바람’ ‘있는 척’ 공통점이 그저 우연이고 기분 탓일 것이라고 믿고 싶다. 뱁새가 황새 쫓아가다 어디 찢어지는 일도 없길 바란다. 그렇지 않다면 기다리는 건 A‧B씨의 드라마틱한 인생 엑시트, 국립호텔 옥방(獄房)에 깔린 싸구려 침대시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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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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