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지극히 개인적 소견의 담론
돌바위로 이 닦는 소리 느낌은 없어야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하목수석‧생몰연도 1867~1916)는 일본을 대표하는 소설가‧수필가‧비평가‧영문학자다. 대표작은 ‘나는 고양이로소이다(吾輩は猫である)’ ‘우미인초(虞美人草)’ 등이다.
그런데 소세키의 본명은 나쓰메 긴노스케(夏目金之助)였다. 소세키라는 필명은 그의 생전 시대로부터 약 1300년 전 당태종(唐太宗)의 명으로 집필된 진서(晉書)에 등장하는 한 고사에서 비롯됐다고 한다.
때는 서기 3세기 서진(西晉). 손초(孫楚‧?~293)라는 이는 남을 업신여기고 거만하기 이를 데 없어 고향에서 평판이 좋지 않았다. “나 삐짐” 외친 그는 “전 소중하니까요” 광고카피 읊어대며 당대에 유행하던 청담사상(淸談思想)을 좇아 입산(入山) 후 안빈낙도(安貧樂道)한 삶을 살고자 했다.
청담사상은 요즘으로 치면 ‘할 일 없는 부잣집 도련님들의 자뻑놀이’ 쯤으로 설명될 수 있다. 도가(道家)의 무위지치(無爲之治) 등을 자의적으로 해석해 “노는 게 최고다. 놀아야 세상이 잘 돌아간다”고 외친 게 청담사상가들이다.
이들은 남성이 얼굴에 분칠한 채 여성복 입고서 오석산(五石散)이라는 환각제에 취해 하루 종일 헤롱댔다. 오석산을 복용한 이들은 마치 오늘날의 마약쟁이들처럼 각종 기행(奇行)을 일삼았다. 청담사상가들은 이 모습에 엄지손가락 세우며 ‘깨달음’ 따위에 비유했다.
손초의 친구로서 청담에 능했던 왕제(王濟)의 사례를 보자. 서진의 수도 낙양(洛陽)은 지금의 강남‧평창동처럼 땅값이 상상초월로 비쌌다. 왕제는 그런 낙양에 엄청난 크기의 말사육장을 운용했는데 어찌나 화려했던지 마치 현찰로 도배한 것 같다 해서 금마장(金馬場)이라 불렸다. 그가 황제 사마염(司馬炎)에게 바친 요리는 ‘사람 젖’으로 키운 돼지고기였다. 왕제는 말 타고 가다가 진흙을 만나면 신발 더러워지는 게 싫어 포기할 정도로 ‘고상함’을 추구했다. 이게 청담사상가들이었다.
아무튼 신선을 꿈꾼 손초는 어느 날 왕제를 만나 “나도 죽림칠현(竹林七賢)의 길을 걸으련다” 포부를 털어놨다. 그런데 약기운 때문인지 그만 순서가 헷갈려서 “돌바위로 이빨 청소하고 시냇물을 베개 삼아 눕고파(漱石枕流‧수석침류)”라고 말해버렸다. “돌바위를 베개 삼아 눕고 흐르는 시냇물로 양치질하련다(枕石漱流)”고 우아하게 말해야 하는데 말이다.
왕제는 “뭔 개소리여” 친구의 실수를 바로잡아줬다. 헌데 자존심이 상했던 손초는 잘못을 인정하지 않고서 오히려 다음과 같은 궤변을 늘어놨다. “돌로 양치한다는 건 세상에 대해 이를 갈기 위함이고, 흐르는 물을 베개 삼겠다는 건 헛소리 들었을 때 귀를 씻겠다는 뜻임. 아몰랑. 수준 낮은 너랑 안 놀아”
이 세기의 헛소리가 얼마나 사람들 어이를 도주케 했으면 입소문 타고 번져나가 수백년 뒤 당태종이 기록으로 남기라고까지 명령하고, 다시 1천여년 뒤 바다 건너 소세키가 “나 손초 같은 놈이요” 낄낄거리며 제 필명으로 삼기까지 한 것이었다.
9일 윤석열 대통령의 기자회견이 있을 예정이다. 문답 주제는 무제한이라고 한다. 사람은 실수하기에 사람이다. 실수하지 않으면 신(神)이다. 회견에선 분명 윤 대통령의 일부 실책들도 언급되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누가 들어도 이해가 안 가는 구차한 말로 변명하는 듯한 태도보다 더 실소 낳는 건 없다. 이는 ‘지금 누구를 바보로 보나’라는 분노로도 번질 수 있다. 윤 대통령은 구렁이 담 넘기식, 우기기식 화법(話法) 대신 국민에게 소상히 설명 드리는 자세로 회견에 임하길 바란다. 자신을 선출해준 대한민국 국민들이 부끄럽지 않을 리더라는 믿음을 심어주길 바란다.
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돌연 취소나 안하면 다행이지 않을까 합니다.
기대는 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bh 출입 잠깐 시절엔 지하철 안 들어가고 대신 공기 좋은 곳에서 질의응답 했었습니다만.. 저는 그냥 여의도가 편해 다시금 지금까지 섬동네 사람입니다. 내일 무슨 얘기가 나올지 봐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