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서울 여의도 국회를 다년간 출입하고 많은 인사들과 전화를 주고받아 왔다. 그만큼 외부에는 알려지지 않은 수많은 진풍경들을 많이 봐 왔다. 실언도 그중 하나였다.
언제쯤이었을까. 수년 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에서 친박·비박 싸움이 한창이었던 때로 기억된다. 공정함이 요구되는 언론인이라는 직업 특성상 기자는 계파 가릴 것 없이 있는 그대로의 맨얼굴을 지면에 옮겼었다.
그런데 부산 모처가 지역구였던 비박계 A의원의 입장을 듣고자 전화 다이얼을 돌렸을 때였다. A의원은 이번 총선에서는 수도권 험지 출마를 선언한 상태다. 기자의 목소리를 접한 A의원은 사적으로 무슨 분한 일이 있었던지 아니면 기자에게 억하심정이 있었던 건지 대뜸 “똑바로 하세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똑바로 하라니. 뭘 어떻게 하면 똑바로 하는 건지. 기자의 몸 자세가 갸우뚱해서 몸을 똑바로 세우라는 건지 아니면 기사를 똑바로 내라는 건지. 기사를 똑바로 내라는 거라면 비박계에 유리하게 쓰라는 건지 뭔지. 어디 식당 가서 음식 주문하듯이 기자에게 기사 방향을 주문하겠다는 건지.
기자가 할 말은 잊은 사이에 A의원은 속사포처럼 뭐라 뭐라 말하고는 전화를 뚝 끊었던 것으로 기억난다. A의원은 초선 시절에는 세미나장 바깥까지 기자를 쫓아 나와 배웅할 정도로 친분이 있고 예의를 아는 사람이었는데. ‘권력이 이렇게 사람을 실없게 만드는구나’ 하는 씁쓸한 뒷맛이 남았던 실언 사건이었다.
더불어민주당과 관련해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기자가 언젠가 찾았던 경기도의 한 지역에선 소위 ‘조폭 유튜버’ 하나가 활개치고 있었다. 그 영향 때문인지 청소년들이 길거리에서 술·담배를 하는 건 기본이었고 온몸에 문신을 잔뜩 새긴 청년들이 주민들에게 물리력까지 행사해 동네 분위기가 흉흉했었다.
공익 차원의 취재 끝에 해당 조폭의 실명과 피해자 현황을 확보한 기자는 경찰의 입장을 듣기 위해 강력계 B형사에게 전화를 했었다. 그런데 B형사의 답변이 실로 가관이었다. 대답의 취지는 기막히게도 ‘우리가 왜 그걸 수사해야 하나요?’였다. “혹시 범죄자 잡는 형사님 아니신가요?”라고 되물었을 정도로 기자는 어이가 없었더랬다.
기자는 직감적으로 뭔가 있구나 여기고서 지금은 전직 국회의원인 해당 지역 C의원에게 재차 전화했었다. 민심에 민감한 국회의원이니 뭔가 다르리라 생각했지만 C의원의 태도도 별반 다를 게 없었다. 그는 마치 남의 지역구 일인 것처럼 짜증 가득한 목소리로 ‘알아보겠다’는 식의 입장만 내놨다.
결국 조폭 유튜버 무리는 옆 지역구의 국민의힘 의원에게 전화한 결과 일망타진되고 경찰서 기강도 바로 잡혔더랬다. 그때 잡혀가지 않은 조폭 무리는 이후 기자만 보면 도망을 갔다. 피해를 호소하는 주민 목소리도 더 이상 들리지 않았다. 아무리 봐도 B형사인 것으로 보이는 한 남성이 기자 뒤에 와서 한숨을 푹푹 내쉬는 일도 있었더랬다.
그런데 인과응보인 것일까. 서로 정반대 성향의 정당 소속인 A·C 의원의 근황은 공교롭게도 좋지 않다.
C의원은 공직선거법 위반으로 최근 의원직을 상실했다. C의원이 뜬금없이 기자에게 카카오톡 메시지를 보내 다소 처량한 어조로 생일을 축하하기에 무슨 일인가 했더니 기자 생일 당일 대법원에서 상실형이 확정된 것이었다. A의원은 알토란 지역구를 잃고서 험지로 차출돼 현재 가시밭길을 걷고 있다. 아마도 추측건대 기자가 그들의 태도를 좋지 않게 봤듯 많은 유권자·정계 인사들도 그들의 행실에 실망했기 때문에 생긴 일이 아닌가 싶다.
여야에서 마치 누가 더 망가지나 시합이라도 하듯 경쟁적으로 실언 논란이 발생하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2찍(보수층 비하 표현)’이라는 귀를 의심케 하는 표현을 써서 빈축을 샀다. 여당에서는 장예찬 전 최고위원의 과거 부적절한 성행위 관련 표현이 발굴돼 도마에 올랐다. 장 전 최고위원은 사과 대신 “막말이나 망언이 아니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러면서 여야는 서로를 향해 “네가 더 막장이다”는 비난을 쏟아 내고 있다. 제3지대인 개혁신당은 기다렸다는 듯 여야 모두에게 포문을 열고 있다. 환갑이 넘은 숙부뻘 안철수 의원에 대한 이준석 대표의 “그 XX” 공개 욕설 논란은 망각한 듯이 말이다.
정작 기자가 길바닥을 다니며 들은 평균적 여론은 ‘도긴개긴’이라는 것이다. 많은 유권자들이 후진국형 정치에 대한 혐오에 시달리고 있다. 이대로 가면 정치 막장화 논란 속에 홍콩이 지난해 겪은 ‘유권자 투표 보이콧’ 사태까지 벌어질 수 있다. 홍콩의 정치 평론가 웡시아착은 지난해 10월 자신의 유튜브 채널 생방송에서 “구의원 선거 투표는 시간 낭비”라고 주장한 바 있다. 7회 구의원 선거 투표율은 역대 최저인 27%를 기록했다.
막장 경쟁의 종착점은 파국이 될 수밖에 없다. 정치권은 더 이상의 막장 경쟁을 중단해야 한다. 민심은 천심이다.
※3.13 전국 일간 스카이데일리 지면 발행 예정인 필자 칼럼입니다. 누가 자꾸 아직도 꼼지락 마이클잭슨 데인저러스하게 수정해서.. 원본 보존의 법칙 겸 저의 100% 책임 지는 글을 청꿈 분들께 먼저 선보이고자 올립니다. 가감 없이 썼습니다. 감사합니다.
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오보가 나서 바로잡습니다... A의원은 12일 오늘 경선 탈락했네요. 제 기사는 13일 내일 지면에 나갈 예정인데... 벌써 인쇄소 넘어가서 윤전기 돌아가고 일부 부수는 배달까지 진행 중인데. 청꿈 온라인 발행 기준으로는 뭐 상관 없습니다만. 오보는 제가 부족한 탓이지요. A의원의 건승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