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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도쿄박’ ‘킴 홋카이도’의 추억

오주한

反日 외치며 日 거주‧골프여행 사랑했던 제1野

소말리아 같은 가스라이팅 천국 꿈꾼다면 착각

 

아이디드 살인독재 막은 美

 

모가디슈 전투(Battle of Mogadishu‧기간 1993년 10월 3~4일)는 소말리아 내전 과정에서 벌어진 소말리아 현지군벌, 미군 간 교전이다. 저널리스트 마크 보우든(Mark Bowden)이 쓴 동명(同名)의 논픽션을 바탕으로 제작된 2001년 영화 블랙호크다운(Black Hawk Down)으로 잘 알려져 있다.

 

내전 당시 소말리아는 크고 작은 여러 군벌(軍閥)들에 의해 지옥도(地獄道)로 변해 있었다. 공산노선 걸었던 독재자 시아드 바레(Siad Barre) 폭정에 나락으로 떨어진 소말리아는, 바레의 충견(忠犬) 출신으로서 바레 사후 최대군벌이 된 모하메드 파라 아이디드(Mohamed Farrah Aidid‧생몰연도 1934~1996)가 전면에 등장하면서 막장이 됐다.

 

영화에서 묘사된 것처럼 소말리아에선 유엔(UN) 구호식량 받으러 온 민간인들에게 군벌 총잡이들이 M2 중기관총 갈기고 곡식을 빼앗는 게 일상이었다. 굶어죽은 이는 약 30만명에 달했다. 아이디드는 전투 특히 미군과의 교전이 벌어지면 무고한 여자‧아이들을 협박해 ‘총알받이’로 앞세우기도 했다. 민간인 피해를 최소화한다는 미군 교전방침을 악용한 악마짓이었다.

 

다국적군으로 구성된 유엔평화유지군(PKF)이 내전 종식 위해 급파됐지만 무용지물이었다. 아이디드 수하들은 같은 무슬림(Muslim)인 사우디아라비아‧파키스탄 등 장병들에게도 총부리를 들이대곤 했다. 아이디드는 “내가 소말리아 잡아먹고 단물 빨아먹는 것 방해 말고 유엔은 꺼져라”고 엄포 놨다.

 

결국 유엔은 미국에게 SOS 신호를 보냈다. 희망회복작전(Operation Restore Hope)에 돌입한 조지 부시(George H. W. Bush‧아버지 부시) 행정부는 “소말리아 국민들, 특히 어린이들이 우리 도움을 필요로 한다”며 대규모 병력을 파병했다.

 

1992년 12월 1800명의 미 해병대가 구호식량 수령 민간인 보호는 물론 ‘필요 시 교전’ 등 임무를 띠고 소말리아 해안에 상륙했다. 해병대가 모가디슈공항을 확보하자 육군 제10산악사단(10th Mountain Division) 등이 속속 도착했다. 미군 병력은 도합 2만5000~3만명에 이르렀다. “미국 건드렸다간 죽는다” 두려워한 아이디드가 타 군벌들과 휴전함에 따라 ‘힘에 의한 평화’는 구축됐다.

 

아이디드 학살 도운 상당수 자칭 진보주의자들

 

그러나 예나 지금이나 미국은 좋은 일 해도 욕먹는 처지였다. 아이디드는 물론 각 국의 ‘자칭 진보주의자‧평화주의자’들 상당수도 “침략군 미군을 반대한다” 목청 높였다. 미국은 앞서 걸프전(Gulf War‧기간 1990년 8월~1991년 2월)에서 쿠웨이트를 침공한 이라크군에게, 자칭 진보‧평화주의자 시각에선, 무자비한 응징 가한 적 있었기에 반미(反美) 목소리는 한 층 거셌다. 소말리아에는 ‘침략자 미제(美帝) 패권주의’ 주장 근거로 끊임없이 재활용되는 석유도 없다시피 했는데 말이다. 상당수 진보주의자 등에게 반미는 직업이자 훌륭한 돈벌이수단이다.

 

결국 빌 클린턴(Bill Clinton) 행정부는 마침 총성(銃聲)도 잦아들었겠다, 내전이 소강상태가 되자 소말리아에서 철군하기 시작했다. 미군의 평화유지 역할은 1993년 5월부터 2차로 파병된 PKF가 맡았다. 이 때 대한민국도 건설공병대대 200여명 등으로 구성된 상록수부대를 파견했다.

 

자칭 진보주의자 등이 “우리의 승리” 철없이 자축하는 사이 진짜 웃은 건 아이디드였다. 미군이 빠지기만을 누구보다 목 빼고 염원하던 아이디드는 즉각 협정을 파기하고 전쟁을 재개했다. 그 과정에서 그는 초대형사고를 쳤다. PKF 소속 파키스탄군 20여명을 학살한 뒤 그 ‘시신’을 길거리에서 끌고 다니고 난자(亂刺)한 것이었다. 이 장면은 아이디드 수하들에게 동영상으로 촬영돼 CNN에 보내져 전세계에 보도됐다.

 

문제해결 능력이 모자랐던 유엔은 소말리아에서 발 빼기 시작했다. 파키스탄을 시작으로 적잖은 나라들이 병력 상당수를 철수시키거나 소극적으로 작전에 임했다. 기세등등해진 아이디드는 오스만 알리 아토(Osman Ali Atto) 등 타 군벌들을 제후(諸侯)처럼 굴복시키고서 명실상부 새로운 독재자로 등극했다. 그 과정에서 또다시 수많은 민간인, 특히 아이들의 삶이 유린됐다. 아프리카군벌들은 소년병(Child Soldier) 운용으로 악명 높다.

 

유엔은 미국에 다시금 손 내밀었다. 재차 파병한 클린턴 행정부는 목표를 군벌제압에서 아이디드 생포 또는 사살로 정했다. 아이디드를 권좌에서 끌어내리거나 죽여야만 이 피비린내 진동하는 향연(饗宴)이 그칠 것이라 여긴 것이었다. 이 작전 총지휘자는 조너선 하우(Jonathan T. Howe) 해군제독이었다.

 

미군은 아이디드 동선(動線) 파악에 주력하는 한편 다방면으로 공격 가했다. 초창기엔 성과가 지지부진했으며 설상가상 민간인 오폭(誤爆) 사고도 한 건 발생했다. 특전단 제1분견대(1st Special Forces Operational Detachment-Delta‧델타포스) 지원요청도 워싱턴에 의해 거부된 하우는 아이디드에게 2만5000달러(2023년 8월 환율 기준 약 3300만원)의 현상금을 걸었다. 그러자 아이디드 측은 도리어 “하우의 목을 잘라오면 100만달러(약 13억원)를 주겠다”고 공언(公言)하는 등 미군을 조롱했다.

 

워싱턴이 움직인 건 미군 사상자가 발생한 뒤였다. 1993년 8월 헌병 수 명이 사제폭탄(IED)에 전사하고 몇 주 후에 수 명이 부상당하자 클린턴 행정부는 내외의 비난에 직면했다.

 

클린턴은 비록 ‘날아다니는 포대(砲臺)’ AC-130 건십(Gunship) 등 지원에는 몸을 사렸으나, 육군 제75레인저연대(75th Ranger Regiment)‧델타포스‧공군 제24특수전술대대(24th Special Tactics Squadron)‧해군 특수전개발단(DEVGRU)‧중앙정보국(CIA) 및 이들을 작전지대로 실어 나를 제160특수작전항공연대(160th Special Operations Aviation Regiment) 등 최정예 태스크포스(TF)를 모가디슈에 급파했다. 총원(總員)은 400여명, 지휘관은 윌리엄 개리슨(William F. Garrison) 육군소장이었다.

 

“반미 나서라” 가스라이팅 나선 아이디드

 

시내로 잠입한 CIA 등은 아이디드 및 그 측근들 동선을 확보했다. TF는 아이디드가 수족처럼 부리던 아토를 체포하는 등 성과 올리기 시작했다. 마침내 TF는 아이디드가 1993년 10월3일 낮 올림픽호텔(Hotel Olympic)에서 참모들과 큰 회의를 가진다는 정보를 입수했다. TF는 이 악마를 잡기 위해 암호명 아이린(Irene)으로 명명된 작전에 착수했다.

 

개리슨의 작전대강(大綱)은 다음과 같았다. △전 병력은 다목적헬기 블랙호크(Black Hawk) 등에 분승(分乘)해 호텔로 향한다 △레펠하강 후엔 델타 등 특작부대가 건물로 진입해 아이디드 신병(身柄)을 확보한다 △그 사이 레인저는 호텔을 둘러싸고 사주경계하며 여자‧아이들 앞세워 몰려올 아이디드 졸개들과 교전한다 △아이디드가 건물 밖에 나오면 앞서 블랙호크와 동시간에 출발해 호텔 인근에 대기 중이던 트럭 등에 아이디드‧델타‧레인저 등을 싣고 기지로 복귀한다 △그 사이 공중 화력지원은 두 정의 미니건(Minigun) 등으로 무장한 블랙호크‧리틀버드(Little Bird) 등 헬기가 맡는다.

 

TF는 전광석화(電光石火)처럼 호텔을 기습해, 비록 아이디드는 어떻게 알아챘는지 잽싸게 튀어 못 잡았지만, 그 측근들 수백명을 체포하는 데까지 성공했다. 이들 참모가 없으면 아이디드도 손발이 잘린 거나 마찬가지였다. 소말리아의 평화는 그렇게 찾아오는가 싶었지만 ‘전장의 안개(Fog of war)’가 발생했다. 상술한 영화 제목대로 ‘블랙호크다운’ 즉 블랙호크가 연거푸 격추되기 시작한 것이었다.

 

미군은 예나 지금이나 “전우(戰友)는 시신마저도 버려두지 않는다”가 방침이다. 미군이 북한 허가를 받아 근래까지 입북(入北)해 6‧25 전사자 유해(遺骸)를 발굴하고 또 발굴하려 하는 까닭이다. 추락 기체를 파괴하지 않으면 블랙호크 첨단기술이 공산권에 넘어갈 위험도 있었다. 자연히 개리슨은 병력을 분산시켜 일부는 포로들을 이송하고, 일부는 추락지로 향하도록 했다.

 

당초 깔끔하게 끝날 뻔했던 작전은 복잡하게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당시 상당수 소말리아인들은 “미군이 우리를 가축처럼 도축한다” “우리가 이리 사는 건 다 미국 때문이다”는 아이디드 선전에 가스라이팅(Gaslighting) 당한 상태였다. 가가호호(家家戶戶) 총을 숨겨두고 있던 모가디슈 시민들은 군벌 졸개들과 뒤섞여 미군을 죽이기 위해 몰려갔다. 적잖은 이들은 카트(Khat)라는 환각성분 식물을 씹고서 눈알 뒤집어진 상태였다.

 

TF가 아무리 정예병이라 해도 중과부적(衆寡不敵)일 수밖에 없었다. 이리저리 분산된 채 고립된 TF는 한정된 탄약만으로 수천명의 폭도(暴徒)들과 맞섰다. 만약 이 때 한 대의 건십, 한 대의 아파치(Apache) 공격헬기, 한 대의 탱크만 있었더라도 전황(戰況)은 바뀔 수 있었으나 전원 경보병인 TF는 자동소총이 무장의 전부였다. 반면 아이디드 측은 벽돌을 뚫는 중기관총‧무반동포 등을 난사했다.

 

그러나 정예는 달리 정예가 아니었다. TF는 24시간 쉬지도 못하고 사격하며 진지(陣地)를 사수했다. 격추될 위험 무릅쓰고 미친 듯 교전지‧기지 오가며 재무장‧공중지원 나선 나머지 블랙호크와 리틀버드들도 큰 도움이 됐다.

 

마침내 교전 이틀째인 4일 PKF 소속 파키스탄‧말레이시아군 등의 탱크‧장갑차 등이 속속 도착함에 따라 TF는 난장판에서 벗어났다. 공식발표 기준 미군 전사자는 18명, 부상자는 73명이었다. 격추된 블랙호크에서 생존해 아이디드 측 포로가 됐던 마이클 듀란트(Michael Durant) 준위장은 “석방치 않으면 항공모함 등으로 씨를 말려버리겠다”는 워싱턴 측 경고에 교전종료 11일 뒤 석방됐다.

 

비극도 있었다. 단 두 명만으로 1000여 폭도들에 맞서 듀란트를 구조하러 갔던 델타 저격수 게리 고든(Gary Gordon‧생몰연도 1960~1993), 랜디 슈가트(Randy Shughart‧1958~1993)는 전사한 뒤 상술한 파키스탄군처럼 그 시신이 끔찍하게 훼손됐다. 이들에겐 군인으로서 받을 수 있는 최고 무공훈장인 의회명예훈장(Medal of Honor)이 수여됐다.

 

아이디드의 남모를 ‘USA’ 사랑

 

그런데 ‘반미의 화신(化身)’ 자처한 아이디드가 블랙호크를 떨어뜨린 기술은 다름 아닌 ‘미국산’이었다.

 

블랙호크로 날아든 건 소련제 휴대용 대전차로켓 RPG-7이었다. 흔히 ‘알라의 요술봉’이란 별칭으로 불리는 이 로켓은 사격 시 장약(裝藥)에 의해 초속 단위 후폭풍이 발생한다. 사수(射手) 뒤에 멀뚱멀뚱 서 있다간 대번에 사망하며, 사수라 해도 탁 트인 개활지가 아닌 실내에서 사격 시 자신부터 먼저 죽게 된다. 그 위험성은 희대의 몸개그로 컬트적 인기 날린 이슬람국가(IS) 잡병 ‘아부 하자르(Abu Hajaar)’ 동영상 등에서 확인 가능하다.

 

따라서 RPG-7을 하늘에 대고 쏘는 건 자살행위나 마찬가지다. 지면(地面)에 반사된 열폭풍은 그대로 사수 뒷머리를 갈기기 때문이다. 이에 RPG-7, AK-47 등 적성(敵性)무기로 싸우기 일쑤였던 미 CIA‧특작부대 등은 요령을 개발해냈다.

 

건물옥상 등에 올라가 난간을 등진 채 기대 사격함으로써 후폭풍을 건물 밖 수m 아래 지면으로 흘려보내거나, 땅에 깊은 구덩이를 파고 누워 발사해 마찬가지로 후폭풍을 흘려보내는 방식이다. 무(無)유도탄 한 발 따위로는 시속 수십~수백㎞로 비행하는 헬기 맞추기 힘드니 수십~수백발을 한꺼번에 사격해 화망(火網)을 만든다는 건 덤이었다.

 

이 기술은 냉전(Cold war) 시기 소련 침공(기간 1979~1989)을 겪은 아프가니스탄 무자헤딘(Mujahedin)들에게 전수됐고, 이들에 의해 다시 소말리아까지 흘러들어갔다. “미군이 우리를 다 죽인다” “미국 나빠요” 외친 아이디드는 정작 ‘미군 전투기술’을 누구보다 앞장서서 애용(愛用)했던 셈이었다. 심지어 그의 아들 후세인 파라 아이디드(Hussein Farrah Aidid‧1962~)는 ‘미국 유학파’다. 아이디드의 반미 구호는 신념에 기초한 게 아닌 그저 자신의 ‘권력도구’일 뿐이었던 셈이다.

 

2023년 8월 대한민국 정치판에서도 ‘제2의 아이디드’들이 종횡무진(縱橫無盡) 중이다. 24일부터 시작된 후쿠시마(福島) 방류수(오염수)를 반대한다며 지난 4월 방일(訪日)한 더불어민주당 일부 의원들은 일본의 ‘혁명적 공산주의자동맹 전국위원회’ 거점을 방문해 물의 빚었다. 정작 성과는 기초의원 면담, 반(反)원전 활동가 1명 면담 등이 전부였다고 한다.

 

상당수 민주당 인사들은 반미‧반일(反日), 특히 노재팬(No Japan·사지 않고 가지 않는다) 등 무조건적 반일을 입버릇처럼 되뇌면서 기본시리즈 등 사실상의 사회주의를 외치고 있다. 헌데 그들 2세 대부분은 미국 유학경험이 있다. 일부는 아예 도쿄(東京)에 고급아파트를 소유해 ‘도쿄박’이라는 조롱을 받았다. 한 인사는 ‘후쿠시마 오염수 규탄결의안’이 민주당 단독으로 통과된 6월 말 지인과 ‘홋카이도(北海道) 단체 골프여행’ 관련 문자를 주고받아 어이를 상실케 했다. 근래에는 민주당 실세(實勢)가 경기도 법인카드로 ‘일본산 샴푸’를 서울 강남구 청담동에서 구매했다는 의혹도 제기됐다.

 

이러한 입과 행동이 다른 행태 앞에 민주당 진정성에 대한 의구심은 높아만 가고 있다. 그들의 반미‧반일이 아이디드처럼 오로지 제 권세만을 위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거세진다. 진정 그들이 바라는 세상이 소말리아 같은 세상인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아이디드와 같은, ‘광우뻥’과 같은 국민 가스라이팅 성공시대는 이제 지났다. 내로남불은 그만두고 지난 정부 때 나왔다는 “오염수 이상 무” 보고서에 대한 입장이나 민주당은 내놓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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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email protected]

댓글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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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dol7707

    아마 지피지기 백전백승(知彼知己 百戰百勝)이라는 핑계로 내로남불을 정당화 할 것입니다.

    자기들의 행보는 반일을 위한 밑거름 이라면서요.

    정작 중공이 후쿠시마 오염수의 1만배 농도의 오염수를 방류하면 침묵할 자들이 말이죠.

  • 오주한
    작성자
    2023.08.25

    국민의힘에 올바르신 '잠룡'들께서 훨씬 더 많으신 줄 압니다. 이 세상의 큰 어르신이 꼭 리더가 되시어서 올바른 리더십으로 모쪼록 이 나라를 정상화해주시길 밑바닥 국민의 한 사람으로서 바라고 또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