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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담] 아나타한의 여왕

오주한

말 그대로 지극히 개인적 소견들을 담은 글

아나타한 사건서 드러난 여성→남초 위험성

부작용 낳는 성인지감수성식 군경 운용 안돼

 

<수십 명의 남성과 한 명의 여성>

 

동서양 막론하고 “선박에 여자를 태우면 불길하다”는 옛말이 있다. 오늘날에는 어마어마한 성차별로 받아들여질 소지가 크다.

 

그런데 필자 생각엔 현실적 이유도 있었던 듯하다. 상당한 근력노동을 필요로 하는 선박 특성상 거친 남성이 절대다수일 수밖에 없는 조직·닫힌사회에 소수 여성이 섞이면, 어떤 형태로든 필연적(必然的)으로 사달이 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이를 보여주는 게 1945~1951년의 ‘아나타한의 여왕(The Queen of Anatahan)’ 사건이다.

 

일본의 태평양전쟁 패전을 앞둔 1945년 헤이스케마루(兵助丸) 등 어선 두 척은 일본 해군에 징발돼 동년 5월24일 화물을 싣고 요코하마(橫濱)항에서 출항했다.

 

사이판(Saipan) 인근에서 미국 해군 전투기 공격을 받은 두 배는 침몰했으며 승조원들은 북마리아나 제도(Northern Mariana Islands)에 위치한 면적 32㎢의 작은 섬 아나타한으로 향했다. 얼마 후 또 다른 선박 생존자들도 섬에 도착해 아나타한에 닿은 남성 조난자는 해군 수병(水兵) 10명, 민간선원 21명으로 불어났다.

 

당시 아나타한에는 한 일본 기업의 야자수 농장이 있었다. 농장에는 남성 주임기술자 1명, 그의 부하직원의 아내 히가 카즈코(比嘉和子‧생몰연도 1922~1972), 그리고 원주민 70여명가량이 일하고 있었다. 카즈코의 남편은 출장 나갔다가 실종된 상태였다. 갑자기 입이 불어남에 따라 농장의 잉여식량은 금세 동났다. 그 와중에 조난자 1명이 폭풍우에 휩쓸려 실종됐으며 원주민들은 섬을 떠나거나 미군에 투항했다.

 

이들은 1945년 8월15일 종전(終戰) 때까지도 섬에 머물렀다. 9월 무렵 미군 확성기방송을 통해 본국(本國)이 미국에 항복한 걸 알았으나 누구도 아나타한을 떠나지 않았다. 그 때까지 일본인들은 “미국에 항복하면 혹독한 고문 끝에 죽음 뿐”이라는 자국 프로파간다를 철썩 같이 믿었다.

 

섬의 존재는 어느덧 미일(美日) 모두에게서 잊히고 농장의 살림은 모두의 노력으로 나아지는 듯 싶었다. 식량은 넉넉했으며 안락한 집도 마련됐다. 이들은 코코넛으로 술을 빚어 생존 축하파티를 벌이기도 했다고 한다.

 

인간의 삼욕(三慾)은 식욕(食慾)‧수면욕(睡眠慾) 다음으로 음욕(淫慾)인 법. 남성들의 눈길은 일제히 카즈코에게 쏠렸다. 카즈코의 시선도 호감 품던 남성에게로 향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벌어지는 군경 막장드라마>

 

헤이스케마루 선장의 급사(急死)로 30명으로 줄어든 남성들은 카즈코의 마음을 얻기 위해 신경전 벌였다. 이는 주임과 카즈코가 부부사이가 아니라는 점이 드러나면서 더욱 가열됐다. 극심한 성비불균형(性比不均衡)은 급기야 유혈(流血)사태까지 야기했다.

 

남성 일부는 추락한 미 육군 B-29 폭격기 잔해에서 권총 3정 및 실탄 70발을 발견하는가 하면 동체를 잘라다 칼을 만들었다. 남성들은 힘을 합쳐 섬을 탈출하는 대신 이성 잃은 채 서로를 죽이고 죽였다. 이들 사이에선 “총을 가진 자가 카즈코를 차지한다”는 소문 떠돌았다. 카즈코는 그 와중에 3명의 남성과 동거하다가 최종적으로 한 남자와 결혼했다.

 

광란(狂瀾)이 멈춘 건 1950년 6월 무렵 미 해군 함정이 우연히 섬을 찾았을 때였다. 피로 얼룩진 치정극(癡情劇)에 진절머리 내던 카즈코는 홀로 미군에 구출됐다. 더구나 그 무렵 남성들은 “이 모든 건 카즈코 때문”이라며 생명의 위협 가하던 상황이었다.

 

원래 수의 채 절반도 안 되는 남성 생존자들은 여전히 항복을 거부했으나 카즈코가 사라지자 제정신 차리고 흉기를 내려놨다. 이들은 다음 함정이 오자 모두 백기 들고 나왔다. 남성들은 1951년 7월 본토에 내려 귀국절차 밟은 뒤 해산했다. 이 사건은 조셉 폰 스턴버그(Josef von Sternberg) 감독, 네기시 아케미(根岸明美) 주연의 1953년작 일본영화 아나타한 등으로 각색됐다.

 

군경(軍警)에서 하루가 멀다 하고 불륜‧치정‧성범죄 등 막장드라마 펼쳐지고 있다. 최근에는 미혼 여경과 불륜 저지르며 수당 챙긴 기혼 남성경찰에 대한 징계는 정당하다는 법원판결이 나왔다. 한 여경‧여군을 두고 벌어지는 치정극, 성추행‧성폭행도 일상다반사다. 공교롭게도 2017년 7월 국정기획자문위원회(대통령직인수위원회) 때부터 여경‧여군을 대폭 늘리기로 한 문재인정부 이후 유독 이 같은 불미스런 일들이 잦다는 지적이 있다.

 

불륜‧치정‧성범죄 등으로 인해 군경 기강은 나태해지고 적잖은 장병은 국방‧치안이 아닌 쓸데없는 데 에너지를 소모 중이다. 우리 군경이 성인지감수성 우선시할 때 범죄자들은 범죄수법 연구 중이고 북한은 핵을 개발 중이다. 그 안보‧치안 공백 피해는 오로지 국민에게 돌아간다.

 

사람 중에는 선한 이도 있고 악한 이도 있는 법, 모든 군경이 도덕적일 순 없다. 따라서 분란만 야기하는 지금의 성인지감수성적 여성 군경 운용이 지속되는 한 대규모 불륜‧치정‧성범죄 근절은 요원(遙遠)할 수밖에 없다.

 

무분별한 여성 군경 운용을 강제하면서 남녀 모두에게 돌부처가 되라고 모순되게 강요할 게 아니라, 여성 용의자 검거나 특등사수 등 꼭 필요한 수요‧능력만큼 여성 군경을 운용하는 등등의 근본적 해결책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게 되면 지금의 이 미칠 듯한 막장드라마 발생 빈도도 낮아지지 않을까.

 

기본적으로 강한 근력이 요구되는 군경은 국민의 봉사자이지 특정세력의 성인지감수성 실험터가 아니다. 근본적 해결책만이 강력한 안보‧치안을 원하는 국민, 강력한 기강을 필요로 하는 군경, 강력한 성범죄 근절을 요구하는 여성 군경 모두가 윈윈하는 길 아닐까 싶다. 두서없이 써본 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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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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