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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알아서 기는 ‘낮은 산봉우리’

오주한

‘홀로코스트‧하켄크로이츠’ 나치부역자 금기시하는 구미

‘3만 大학살’ 中 부역의혹자 공원 조성소식에 국제망신

 

제3제국 패망 직전까지 “하일 히틀러(Heil Hitler)”

 

윌리엄 조이스(William Joyce‧생몰연도 1906~1946)는 뉴욕에서 태어난 미국인이었다. 어려서 부모 손에 이끌려 조상의 나라 영국으로 돌아간 그는 대학졸업‧결혼‧취업 등 전형적 화이트브레드(white bread‧미국인 중산층)였다.

 

허나 조이스의 숨겨진 정체는 ‘나치(Nazi)’였다. 천성(天性)이 그러했는지, 조이스는 여느 시민들처럼 단란한 가정 꾸리고 편히 살 수 있었음에도 파시즘(Fascism)에 광적으로 집착했다. 영국파시스트동맹(BUF)에 가입한 그는 처자식도 내팽개치고 살육(殺戮)의 꿈에 빠져들었다.

 

첫 부인과 결별한 조이스는 BUF 선전장관에까지 올랐으나 만족할 줄 몰랐다. 더욱 피에 집착한 그는 “BUF는 나약해빠졌다” “죽이고 또 죽여라” 목청 높이며 1937년 국가사회주의자연합(NSL)이라는 자신만의 조직을 꾸렸다. 제2차 세계대전 전운(戰雲)이 짙게 드리우던 수년 뒤에는 아예 두 번째 부인 이끌고 ‘제국의 심장부’ 베를린으로 향했다.

 

나치독일에서 조이스는 ‘부역(賦役)본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마치 일제(日帝) 도쿄로즈(Tokyo Rose)들처럼 선전방송원이 돼 마이크 잡은 조이스는, 모국(母國) 미국과 조상의 나라 영국에 대해 악마도 울고 갈 저주‧악담을 퍼부었다.

 

당시 나치는 미국을 공격한 일제의 첫째 우방국(友邦國)이었다. 나치는 일제에게 악명 높은 유보트(U-boat)‧석탄액화연료(CTL) 기술을 넘기는가 하면, 태평양전쟁 발발 즉시 일제와 박자 맞춰 미국에 선전포고(宣戰布告)했다. 영국에 대해선 아예 V-2 탄도미사일 등 직접적 공격을 가해 군인‧민간인 가리지 않고 학살하기도 했다.

 

이러한 참상 앞에 조이스는 언제든 나치부역을 뉘우치며 “내 죗값은 목숨으로 치르겠다” 할 수 있었으나 그러지 않았다. 그의 방송은 유대인 학살 등 악랄한 전쟁범죄의 나치 근위대(SS)‧국방군(Wehrmacht) 등 사기를 드높이고 연합국 사기를 저하시켰다. 일설에는 조이스 방송 고정청취자는 연합국‧추축국 모두 합쳐 ‘600만명’, 최대 ‘1800만명’에 달했다고 한다.

 

조이스는 궁지에 몰린 아돌프 히틀러(Adolf Hitler‧1889~1945년 4월30일) 자살 직전까지 녹음실을 떠나지 않았다. 조이스의 마지막 방송은 “하일 히틀러(Heil Hitler)” 즉 “히틀러 만세(萬歲)”였다. 따라서 조이스의 행위는 “그의 삶은 그 시대의 아픔” 따위 운운으로는 도저히 설득되지 않을, 빼도 박도 못할 ‘반역(反逆)’이었다. 더도 덜도 아닌 “동족학살 앞장서서 나 혼자 호의호식(好衣好食)해보세”라는 ‘이완용리즘’일 뿐이었다.

 

제 손으로 中 군가 바치고 도주한 게 시대비극?

 

6‧25 당시 중공군(中共軍)은 2차대전 때의 나치와 흡사했다. 악의 축(axis of evil)으로 얽힌 뒤틀린 우정 과시하고 전후(戰後) 북미대륙을 식민지로 삼으려 들며 일제를 힘껏 도운 나치처럼, 마오쩌둥(毛澤東)의 중국은 한반도 식민지화(化) 야욕으로 수십만 대군을 파병했다.

 

실제로 압록강 넘은 펑더화이(彭德懷)의 중공군은 1950년 12월31일 마오쩌둥 명에 따라 ‘3‧8선’을 넘었다. “유엔군이 먼저 압록강 근처까지 진격했기에 부득이 우린 자위적(自衛的) 차원에서 파병한다”는 마오쩌둥 변명은 내로남불로 드러났다.

 

만약 그 때 중공군 인해전술(人海戰術) 앞에 낙동강전선이 무너졌더라면, 우리는 범국민적 차원에서 대약진운동(大躍進運動)‧문화대혁명(文化大革命)‧천안문사태(天安門事件) 등 중국공산당의 무궁무진한 대학살 겪고, 지금도 그들의 인권탄압‧무능력 및 대륙스케일의 부정부패를 온 몸으로 체험하고 있을 게 분명하다.

 

2023년 8월 기준 중국 청년실업률은 ‘약 50%’에 달한다는 추측이 있다. 실제로 이달 중국정부는 청년실업률 통계발표를 중단하고 은폐에 들어간 상태다. ‘붓과 낫과 망치’ 앞세운 중국공산당이 앞장서서 노동자 파업을 유혈(流血)진압한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이다. 낙동강이 뚫렸더라면 지금의 조선족처럼 한국어 등 문화말살‧민족말살을 우리도 겪고 있을 가능성이 다분하다. 시진핑(習近平)은 마오쩌둥 판박이라는 부정적 평가가 전지구적으로 자자하다.

 

이렇듯 한반도를 생지옥으로 몰고 가려 했던 중공군에 대한 ‘부역’ 의혹 인사를, 한 지자체에서 “그의 삶은 시대의 아픔”이란 취지로 미화(美化)하며 ‘역사공원’을 조성하려 한다는 소식이다.

 

다시 말하자면 온 한(韓)민족을 중국 소수민족 또는 김일성민족으로 만들려하면서 북한군과 ‘약 3만명’의 학살 일삼은 중공군에 군가(軍歌) 헌정(獻呈)하고서 전후 ‘중화인민(中華人民)’의 품에 안긴 인물을, 조이스처럼 전쟁 말미까지 침략자의 사기를 북돋고 전후 도주해 호의호식한 인물을 ‘피(被)침략자 손’으로 기념하려 한다는 기막힌 소식이다.

 

해당 지자체장은 “중국관광객 유치 목적” 취지의 변명을 댔다고 한다. 이는 “네오나치(Neo-Nazi) 유치 위해 조이스 역사공원 세운다”는 말이나 다름없다. 이렇게 ‘역사공원’ 찾은, 상당수는 극좌(極左)일 공산이 큰, 중국인들이 “중한(中韓)우호 다지자”고 할지, 아니면 속으로 “낮은 산봉우리들이 알아서 상국(上國)을 받들어 뫼시는구나” “이래서 김치‧한복 등은 우리 중화문화야” “또 쳐들어가서 죽이고 빼앗고 겁탈해도 역사공원 세워주겠네” 할지는 안 봐도 뻔하다.

 

해당 ‘역사공원’ 조성 소식에 연평도포격 당시 산화(散花)한 고(故) 서정우 하사의 모친 김오복 여사는 “호국(護國)유공자는 무관심하면서 북한‧중국 공산세력 도운 인물을 기념한다는 건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 “보훈가족에게 피눈물 나게 하는 사업”이라며 통곡했다고 한다. 김 여사는 광주의 한 고교에서 37년간 교편(敎鞭) 잡은 교육자다.

 

미영(美英)은 은신(隱身) 중이던 조이스를 1946년 1월 찾아내 ‘국가반역죄’로 처형했다. 지금도 유럽에서 나치‧조이스는 금기시되고 있다. 만약 ‘조이스 기념공원’ 만들자고 했다간 그 날로 해당인사에겐 사회적 매장이 기다린다. 김 여사의 절규(絕叫)처럼 대한민국은 매국 의혹 인사가 아닌, 나라‧민족 위해 목숨 바친 선열(先烈)들부터 기리는 ‘정상국가’로 돌아가야 한다. 이 웃기지도 않는 공원개그에 국제사회·순국선열님들 턱 벌어지는 소리 여기까지 들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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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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