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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새만금과 포클랜드, 언론통제

오주한

야심차게 빅이벤트 열었다 언론통제로 망한 갈티에리

묘하게 오버랩 되는 새만금‧포클랜드…黨大 정신 차리길

 

“옳다구나, 이 때다”

 

포클랜드섬(Falkland Islands)은 남미대륙 동남쪽에 위치한 섬이다. 아르헨티나에선 약 400여㎞ 떨어져 있으며 영국 본토에선 약 1만3000㎞ 떨어져 있다. 남극과 인접한 동토(凍土)에 준한 땅이기에 당초 누구도 관심 갖지 않았다. 때문에 영국이 실효지배했으며 그나마 주민도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특산물도 거의 없어서 포클랜드산 양모(羊毛)만이 유명한 수준이다.

 

이 섬이 아르헨티나‧영국 모두에게서 주목받기 시작한 건 1980년대 초다. 1982년 3월19일 아르헨티나 고철상 콘스탄티노 다비도프(Constantino Davidoff)는 포클랜드섬에 원양어선 등 잔해(殘骸)가 많다는 소문 들었다. 인부들과 고철 잔뜩 수집하고서 잔뜩 기분 좋아진 그는 그만 취기(醉氣)에 아르헨티나 국기를 세우고 말았다고 한다.

 

이를 본 영국 극지(極地)연구소 직원들이 부리나케 보트 타고 달려가 강력항의했다. 이 해프닝은 다비도프의 사과 및 일잔(一盞)권유로 일단락됐으나, 이번엔 이 소식 듣고 승리감에 도취된 일부 영국어부들이 사달을 일으켰다. 이들은 섬 한 켠에 있던 아르헨티나 항공사 사무실로 몰려가 의기양양히 ‘깽판’치고는 건물외벽에 “대영제국 만세(Long live the British Empire)” 등 낙서하고 돌아왔다고 한다.

 

여기까지였으면 그저 양국 주민들 간 사소한 신경전‧민사소송 등으로 끝났겠지만, 당시 아르헨티나를 지배하던 독재자 레오폴도 갈티에리(Leopoldo Galtieri‧생몰연도 1926~2003)가 일을 키웠다.

 

갈티에리는 경제난 등에 국민불만이 치솟자 갖은 방법 동원했지만 실패한 상태였다. 그러자 그는 독재자의 전형적 수법인 ‘내부시선 외부로 돌리기’에 착수했다. 갈티에리는 “대영제국에 멋지게 한 방 먹이면 국민은 열광할거고 내 지지율은 단숨에 대기권 뚫고 상승할 거다. 영국은 이빨 빠진 호랑이니 이 먼 데까지 안 오겠지” 여겼다.

 

“안 올 줄 알았지?”

 

실제로 영국은 고질적 영국병(英國病)의 늪에서 허덕이고 있었다. “바다를 지배하는 자, 세계를 지배한다”는 말 무색하게 마지막 하나 남은 정규 항공모함마저 폐기처분하기 직전이었다. 갈티에리는 1982년 4월2일 장갑차 등 대규모 병력 동원해 포클랜드를 전격 침공했다. 고작 100명 단위였던 현지 영국수비대는 중과부적(衆寡不敵)으로 상당수 싸울 엄두도 못 내고 항복했다.

 

그런데 이 당연한 승리에 취한 갈티에리가 ‘오버’했다. 포로들을 제네바협약(Geneva Conventions)에 따라 정중히 대우하고, 영국정부와 협상한 뒤, 포클랜드 실효지배권과 포로를 맞바꾸면 됐을 터였다. 허나 갈티에리는 “환상의 포로쇼. 뭔가 보여드리겠습니다”라는 강박증(强迫症) 때문이었는지 영국군을 ‘범죄자’ 취급했다. 무장해제 후 이들을 두 손 머리 뒤로 한 채 바닥에 엎드리게 한 것이었다.

 

이 사진은 아르헨티나 국내는 물론 영국 등 전세계로 타전(打電)됐다. 포클랜드를 탈환하냐 마냐 두고 갑론을박(甲論乙駁) 벌이던 영국 조야(朝野)에는 일순간에 정적이 흘렀다. 그 침묵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마거릿 대처(Margaret Thatcher‧1925~2013) 총리가 누구보다 잘 알았다.

 

대처는 미국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육해공 삼군(三軍) 지휘부를 소집했다. 그는 “우리가 아무리 국력이 추락했다곤 하나, 해외영토 하나 못 지키는 종이호랑이로 전세계에 소문나면 파멸(破滅)은 막을 수 없다”고 확신했다. 결단 내린 대처는 상‧하원의 압도적 지지 앞에 응전을 선포했다. 또 존 우드워드(John Woodward‧1932~2013) 해군소장, 제레미 무어(Jeremy Moore‧1928~2007) 해병소장을 일선지휘관으로 삼아 포클랜드 해방을 명했다.

 

충돌을 막을 수 없다 여긴 미 행정부는 영국 손을 들어줬다. 그렇게 포클랜드전쟁(Falklands War‧1982년 4월2일~6월14일)은 본격적으로 막 올렸다. 1982년 4월19일자 뉴스위크(Newsweek)는 표지에 항진(航進)하는 영국 항모 사진을 싣고서 제목을 “제국의 역습(The Empire Strikes Back)”으로 잡았다.

 

“그래도 내가 누군데”

 

포클랜드전쟁은 우리 한국언론에서도 대서특필(大書特筆)됐다. 승률은 누가 봐도 아르헨티나가 압도적으로 높았다.

 

상술했듯 포클랜드는 아르헨티나 안방이나 마찬가지였다. 따라서 기상(氣象)이 뒷받침되는 한 원활한 지상군 상륙이 가능했으며, 프랑스제 초음속전투기 미라주Ⅲ(Mirage Ⅲ) 등의 체공(滯空)시간 즉 작전시간도 넉넉했다. 아이러니하게도 영국에서 건조된 항모 베인티싱코 데 마요(Veinticinco de Mayo), 순양함 헤네랄 벨그라노(General Belgrano) 등 아르헨티나 해군전력(戰力)도 만만찮았다.

 

반면 영국은 북반구(北半球)에서 남반구(南半球)까지 거의 지구 3분의 1바퀴를 돌아서 가야 했다. 가뜩이나 돈도 없는데 소모되는 기름값은 어마어마했다. 전력도 크게 압도적이진 못했다. 그나마 항모는 1953년 진수(進水)해 시해리어(Sea Harrier) 약 30대만 구겨 넣을 수 있는 재래식 HMS 허미즈(Hermes) 등이었다. 시해리어는 수직이착륙(VTOL)이 가능했으나 무장적재량이 빈약했고 아음속(亞音速)이었다.

 

이에 영국군 수뇌부도 대처의 전쟁명령에 처음엔 회의적(懷疑的)이었다 한다. 그러나 갈티에리의 무능이 승패를 갈랐다.

 

갈티에리는 영국군이 온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손 놨다. 자국민들에 대한 “나 봤지? 나 이런 사람이야” 허세에만 충실할 뿐이었다. 응당 포클랜드섬에 군용(軍用)활주로 깔고 요소요소마다 정예군을 배치하는 등 섬을 요새화(化)해야 했으나 현실은 정반대였다. 활주로는커녕 부지런히 먹고 싸는 갈매기들만 날아다녔다. 배치된 지상군은 정예병과는 거리가 먼, 길거리에서 아무렇게나 징집한 불량청소년 등이 태반이었다.

 

반면 지구 3분의 1바퀴를 돌아 달려오는 영국군은 대영제국의 주역 레드코트(Red Coat) 후예인 로열마린(Royal Marines)‧로열네이비(Royal Navy)였다. 게다가 이들은 동료를 범죄자 취급한 아르헨티나군에 열이 뻗친 대로 뻗친 상태였다. 이 열 받은 군대 중에는 네팔 출신으로서 자발적으로 영국군에 복무하는 ‘30대 1’의 전설 구르카(Gurkha)용병도 있었다.

 

엘리자베스 2세(Elizabeth II)의 차남 앤드류(Andrew)왕자도 대함(代艦)미사일 교란용 채프(Chaff‧알루미늄 가루) 뿌리는 해군헬기 조종사로 참전해 사기를 북돋웠다. 모르는 사람은 이게 뭔가 할 수 있지만, 채프 잘못 뿌렸다간 미사일이 자신에게로 날아와 공중분해 될 수도 있는 위험한 보직이었다.

 

“맞아보니 아프더라”

 

4월 중순께 출발한 영국군은 5월1일이 돼서야 본격적 작전에 돌입했다. 전쟁은 모두의 예상 뒤엎고 영국군의 일방적 구타로 전개됐다.

 

영국 본토에서 이륙해 수차례의 공중급유 받으며 겨우겨우 날아온 아브로 벌컨(Avro Vulcan) 전략폭격기는, 유일하게 하나 있던 섬 내 민용(民用)활주로를 아작냈다. 활주로가 없으니 아르헨티나도 400여㎞ 떨어진 본토에서 미라주 등을 띄워야 했다. 이에 더 많은 체공시간 확보한 건 오히려 영국군이었다. 아르헨티나도 항모가 있긴 했으나, 혹 격침될까 겁먹은 갈티에리는 영국군 미사일 사거리 바깥으로 후퇴시켰다.

 

포클랜드전쟁은 하늘을 지배하는 자가 전장(戰場)을 지배한다는 것 등을 보여준, 현대전의 교과서적 전쟁이자 군사교리(敎理) 시발점(始發點)이었다. 제공권(制空權) 확보한 영국군은 아무 걱정 없이 지상군을 섬에 부릴 수 있게 됐다.

 

설상가상 갈티에리는 제해권(制海權)도 뺏기고 말았다. 5월2일 영국 핵잠수함 HMS 컨커러(Conqueror)는 아르헨티나 해군의 자존심이라던 헤네랄 벨그라노를 보란 듯 격침시켰다. 섬에 주둔하던 아르헨티나 지상군은 보급 끊긴 채 고립되다시피 했다.

 

이제 영국은 전쟁에서 질까봐 안달하는 게 아니라, 분명 ‘선빵’ 날린 건 갈티에리였음에도, 도리어 “저 못된 백인 제국주의자들이 불쌍한 남미 라티노(Latino) 괴롭힌다”는 국제사회 비난을 두려워할 지경이 됐다. 영국은 한창 전투지휘 중인 해군장교를 1만3000㎞ 거리를 ‘빠꾸’시켜 의회에 출석토록 하는 눈물의 질책쇼도 벌여야 했다.

 

물론 영국이 연전연승(連戰連勝)만 한 건 아니었다. 이 전쟁을 매의 눈으로 지켜본 한 나라, 프랑스는 이전에 아르헨티나에 엑조세(Exocet) 대함미사일을 판매한 적 있었다. 5월4일 아르헨티나 해군항공대의 프랑스제 쉬페르 에탕다르(Super Étendard) 전폭기는, 이 엑조세로 영국 HMS 셰필드(HMS Sheffield) 구축함을 격침하는 ‘셰필드 쇼크(Sheffield Shock)’를 일으켰다.

 

영국해군은 속수무책으로 당했다. 당시까지만 해도 대함미사일은 비행 후 종말단계에서 치솟아 내리꽂는 하이다이브(High-Dive) 방식 등이 통상적이었다. 따라서 앤드류 왕자의 ‘채프신공’도 가능했다. 허나 엑조세는 레이저탐지를 피해 수면(水面) 위에 바짝 붙어 날아드는 시스키밍(Sea Skimming) 기술을 선보였다.

 

쉬페르 에탕다르는 피탐(被探)을 피해 저고도로 비행하다가 사거리 최장 한계점에서 엑조세를 사격한 뒤 뒤도 안 돌아보고 달아났다. 아르헨티나군은 나중에 BBC 등 외신(外信)보도를 보고서야 셰필드 피격사실을 알았다. 영국은 어떻게든 셰필드를 살리고자 꾸역꾸역 본토로 회항(回航)시켰으나, 셰필드는 전 영국인이 TV로 지켜보는 가운데 장렬히 수장(水葬)됐다.

 

언론통제란 금단(禁斷)의 열매

 

어쨌든 전세(戰勢)는 이미 영국 쪽에 기울어질 대로 기울어진 상태였다. 1980년 대테러작전 님로드작전(Operation Nimrod)으로 유명세 떨친 영국 특작부대 SAS(Special Air Service) 등은 적진에 사전침투해 정보를 수집했다. 이 정보를 바탕으로 영국 해병대 등은 상륙해 거점을 하나하나 점령해나갔다.

 

상술했듯 아르헨티나군 태반은 제대로 총 한 발 쏴보지 못한 미성년자였으며 지휘부 자질도 뒤떨어졌기에, 영국군 특히 구르카가 온다는 소문만 듣고도 무기를 내버린 채 도주했다. SAS 등의 초정밀사격도 아르헨티나 측 공포확산에 일조(一助)했다. 벙커 등에 틀어박힌 아르헨티나군은 소수 순찰조만 수시로 내보냈으나, 그 때마다 순찰대는 이마에 구멍 뚫려 함흥차사(咸興差使)가 됐다고 한다.

 

결국 영국군이 마지막 거점에 유니언 잭(Union Jack)을 게양함에 따라 전쟁은 영국의 압승(壓勝)으로 끝났다. 영국은 비록 승자였으나, 종전(終戰) 관련 협약체결식 사진에서 갈티에리 측 인사 모습은 지우는 등 아르헨티나 체면을 최대한 살려줬다.

 

원정기동함대 기함(旗艦) HMS 허미즈 등은 1982년 7월21일 위풍당당히 영국 남부 포츠머스(Portsmouth)항으로 개선(凱旋)했다. 장병들은 “신이시여, 여왕폐하를 보호하소서(God Save the Queen)”를 외쳤다. 다 무너져가던 대영제국 자존심에 절망하던 영국인들은 현장에 인산인해(人山人海) 이루며 열렬히 환영했다. 대처는 동서고금(東西古今) 사례를 찾아볼 수 없는 기록적 지지율을 달성했다.

 

지지율 올린답시고 야심차게 전쟁 일으켰다가 역풍(逆風) 맞은 갈티에리는 그래도 옥좌(玉座)는 지켰다. 그를 파멸로 몰고간 건 그 자신의 ‘거짓말’이었다. 철통같은 언론통제 나선 갈티에리는 “포클랜드에서 우리가 승리했다”고 선전했다. 상당수 국민은 이를 믿었다. 허나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순 없었다.

 

1982년 6월13일~7월11일 스페인 월드컵에 참여해 “영국 그것들 한 주먹도 안 되더라” 의기양양하던 아르헨티나 대표팀은 충격적 진실을 접했다. 각 국 선수들은 “뭔 소리야. 너희가 졌어”라고 했다. 이 소문은 스포츠신문 등에 의해 아르헨티나 국내에 삽시간에 퍼졌다. 패전(敗戰)도 분한데 지도자란 작자의 태연한 거짓말에 속았단 사실에 크게 분노한 국민들은 사퇴를 촉구했다. 결국 갈티에리는 종전 3일만인 6월17일 대통령‧육군총사령관 등에서 하야(下野)했다.

 

파행(跛行)으로 끝난 새만금 잼버리(Jamboree) 사태가 점입가경(漸入佳境)이다. 일각에서는 누군가에 의한 언론통제 의혹도 제기되고 있다.

 

들리는 바에 의하면 잼버리 조직위는 새만금 현장취재를 막았다고 한다. 영국‧미국 등이 잇달아 퇴소(退所)하는 와중에 여성가족부 장관은 “매우불만족 여론은 4%다”는 취지의 주장으로 내외신 취재진을 아연실색케 했다고 한다. 한 외국인 유튜버는 현장촬영 중 “감옥 갈 수 있다”는 협박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어지러움에 갈티에리의 최후가 오버랩 되는 건 비단 기분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어쨌거나 보수우파. 충심(忠心)으로 고언한다. 정신 차리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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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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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8.08

    정치인이 일을 못하는건 당연한 일이라 생각하기 때문에 볼멘소리 정도로 끝내줄수 있습니다. 하지만 거짓말은 그 선을 넘습니다. 갚을 공산이 없으면서 자기 이익을 실현하기위해 돈을 빌리는것. 그것을 사기라고 합니다.

    제자리 보전을 위해 사기치는 것들은 마땅히 벌을 받아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