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국판 탈레반
필자가 20대 대학생이던 1960년대 초, 한국 사회운동 계 한쪽 구석엔 어딘가 낯설고 동떨어진 사람들이 있었다.
그들의 인상은,
(1) 도회지(都會地) 문화가 아니라 농촌 문화이고(2) 유달리 ‘민족적’이란 말을 강조하고 (3) 일본은 말할 것 없고, 서양도 싫어하고 (4) 고급 지식인·세련된 교양인, 다양하고 높은 공부한 사람을 경계하고(5) 근대화·산업화·기술·전문성보다, 민중주의적 농촌공동체를 선호하고 (6) 보수는 물론, 진보라 할지라도 대한민국을 인정하는 정파는 모조리 적대하는 것 등이었다.
당시 후진국 한국의 극좌는 결국, 마르크스·레닌주의자이기 전에 [마오쩌둥 + 베트콩 + 폴포트 + 탈레반]이 합쳐진 [증오심 + 열등감 + 복수심 + 광신 + 단순화]의 종말론적 신앙 비슷한 것이었다. 일종의 [근본주의 교파]랄까?
■ "나만 옳고, 너는 틀렸다"[근본주의 교파]는, △ 다른 종교 △ 다른 교리 △ 다른 신념 △ 다른 이념 △ 다른 이론 △ 다른 철학을 용납하지 않는다.[이념·이론·철학]으로선 자기네 하나로 충분하지, 다른 이념이라니 그런 건 있을 수도 없고, 있어서도 안 되고, 있으면 제거해야 한다는 식이다.
그래서 누가, “나는 너희들과 다른 이념을 세우겠다” 특히, “나는 전체주의 좌익 아닌 자유의 이념을 세우겠다”라고 말하면, 그들은 길길이 뛴다. 이단(異端) 배척하는 식이다.
왜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가? 윤석열 대통령이, “자유인들도 자유의 이념을 정립하자” “반(反)국가 세력은 진보도 아니고 협치 대상도 아니다”라고 말한 데 대해 일부가, “웬 강성 우경화냐?” “웬 강경 이념 공세냐?” “저런 성향 아니었는데?”라며 펄쩍 뛰는 것을 보자니, 저들이 왜 저럴까, 괴이(怪異)해서 하는 말이다.
정말 이상 반응, 과잉 반응이 아닐 수 없다. 아니, “자유주의자들은 자유의 신념을 굳건히 하자”는 말을 왜 해선 안 되나? 다른 사람이 다른 이념의 깃발을 들면, 자기들의 [유일한 깃발 됨]의 특권적 지위가 흔들릴 것 같아서 그러는가?
■ '자유주의'를 혐오하는 이상한 풍토
오래전 일이 생각난다. 1987년 민주화가 오기 조금 전이었다. 우연히 유인물 하나를 보았다. 단순한 ‘민주화·진보화’ 정도가 아니었다. 극좌였다. 자유주의도 타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적당한 정도의 진보도 타도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결론을 내렸다. “이건 아니다.”
언론 동료에게 물었다. “학생운동이 일정한 정도를 벗어났다. 하나 쓰겠다.” 그는 만류했다. “민주화가 되기 전엔 그런 충고가 먹히지 않는다”라고. 말 된다고 느꼈다. 꾹 참기로 했다. 얼마 후 민주화가 되었다. 부담감을 털고 거침없이 썼다.
“이제부터는 권위주의냐 민주화냐만 따지지 말고, 민주화에서 극좌 전체주의를 떼어내자.”
역시, 일부가 길길이 뛰었다. “웬 다른 이념이냐?”란 시비였다. “이념은 오직 자기들 것 하나만” 있어야 하는데.
■ '자유의 신념'은 이런 것
체코의 자유 레지스탕스 투사, 밀라다 호라코바(Milada Horáková) 여사가 연상된다. 그녀는 2차 대전 때 나치에 맞서 레지스탕스 활동을 하다가 감옥엘 갔다. 연합군이 들어오자 출옥했다. 국회의원이 되었다. 공산당 통일전선에 가담하길 끝까지 사절했다. 그리곤 모진 고문 끝에 제국주의 간첩이란 누명을 쓰고 처형당했다. 자유의 신념은 이런 것 아닐까?
그런데 이런 신념을 두고 “웬 이념 공세냐?”라고 묻는다면? 그래, 민주적 진보 아닌. [전체주의(totalitarian) 극좌]는 사절이다. 어쩔래? 그리고 자유는, 말단의 [실용] 정책에 불과한 게 아니다. 그것은 [가치·철학·이념]이다. 인제 알았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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