규제 등 통해 예방 가능한 기술적특이점 폐단
韓 정치적특이점은 불치병 단계…통탄할 노릇
“기술이 기술을 낳는다”
과학계에는 ‘기술적 특이점(Technological Singularity)’이란 용어가 있다고 한다. 과학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다 보면, 특히 인공지능(AI)이 제조업에 깊이 관여하다 보면, 언제부턴가 인류는 그 메커니즘(Mechanism)을 이해 못하고 단지 소비자로 전락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해당 개념을 첫 제시한 이는, 오늘날 컴퓨터 기본설계 제시한 미국 물리학자‧수학자 존 폰 노이만(John von Neumann‧생몰연도 1903~1957)이다. 처음 언급한 사람은 동료수학자 스타니스와프 마르친 울람(Stanisław Marcin Ulam)이라고 한다. 울람은 1958년 폰 노이만 회고록에서 “(우리의) 대화는 인류사(史) 특이점을 발현할 기술발전 및 그에 따른 인류생활상 변화에 대한 것이었다”고 밝혔다.
제한적인 기술적 특이점은 2023년 오늘날 우리도 일부 체험하고 있다. AI를 기술자로 치환(置換)하면 된다. 가령 생활필수품인 휴대전화‧노트북 등 제조술은 관련업계 기술자들만 안다. 휴대전화‧노트북 기술자들이 점심 때 먹는 요리비법은 주방장들만 안다. 요리사들이 요리재료로 쓰는 육류(肉類) 도축기술은 정육업자들만 안다.
고대~근세에는 한 사람이 여러 기술 익히고 여러 직업 갖는 게 가능했고 또 보편적이었다. 예를 들어 르네상스 시기의 레오나르도 다 빈치(Leonardo da Vinci) 직업은 ‘화가이자, 조각가이자, 발명가이자, 건축가이자, 과학자이자, 음악가이자, 공학자이자, 문학가이자, 해부학자이자, 지질학자이자, 요리사이자 기타 등등’이었다.
그러나 산업혁명(Industrial Revolution) 이후 각 분야 기술이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한 사람이 하나의 전문기술만 익혀도 ‘밥벌이’ 가능한 게 일반화됐다. 사실 그 한 개의 기술을 완벽히 익히는 것도 매우 어렵다. 따라서 21세기 인류는 문명(文明) 붕괴 시 홀로 단독으로 살아남기 힘들다.
언뜻 생각하면 가장 원초적 욕망인 식욕(食慾) 관련 기술자들이 생존에 유리할 듯 싶지만, 사냥꾼‧정육업자는 짐승 잡을 현대적 도구가 망가지면 그걸 재현할 수 없기에 무력화되긴 마찬가지다. 어느 동물도 “나 잡아 잡수쇼” 기다려주지 않는다. 이는 농(農)기구가 필요한 농부도 마찬가지다. 채집에도 나무 타고 오를 사다리가 필요하다. 게다가 채집량엔 한계가 있다.
깊이 생각할 것 없이 당장 전기만 사라져도 현대인류는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다. 2014년작 헐리웃영화 ‘혹성탈출 : 반격의 서막’에서 생존자들이 유인원(類人猿)과의 전쟁까지 감수하면서 발전소를 돌리려 묘사되는 것도 이 때문이다.
“AI의 인간사육” 디스토피아 우려의 기술적특이점
그렇다면 머잖아 찾아올 폰 노이만 정의(定義)에 가장 부합하는 의미의 기술적 특이점 시대, 즉 AI가 인류를 관리하는 시대는 유토피아(Utopia‧천국)일까, 디스토피아(Dystopia‧지옥)일까.
기술적 특이점 시대의 긍정적 면을 묘사한 작품은 2016년 영국에서 방영된 SF 옴니버스드라마 블랙미러(Black Mirror) 시즌3의 한 에피소드다. 2017년 에미상(Emmy Award) 작품상‧각본상 등을 수상한 ‘샌주니페로(San Junipero)’는, 인류가 AI의 힘으로 사후(死後) 가상현실에서 영생(永生) 누린다는 내용이다. 다만 동성애가 묘사되므로 불편한 분들은 시청주의가 요망된다.
물론 이용료는 들겠지만, 근세까지만 해도 귀족음식이었던 육류가 지금은 돼지 후지(後肢‧뒷다리) 등의 경우 매우 싼 값인 것처럼, ‘영생 서비스’도 수요가 폭발하면 박리다매(薄利多賣) 가능할 것이란 전망이 있다. 인간의 정신을 디지털화(化) 해 컴퓨터 안으로 옮기는 기술은 이미 진전 보이고 있다.
기술적 특이점 시대의 부정적 면을 묘사한 작품들은 그 유명한 1999년작 헐리웃영화 매트릭스(Matrix), 원작을 리메이크한 2017년작 블레이드러너(Blade Runner), 1995년작 스크리머스(Screamers) 등이다. 더 멀리 가면 ‘1927년작’ 독일 흑백 무성(無聲)영화 메트로폴리스(Metropolis)가 있다.
메트로폴리스는 나치(Nazi)가 이제 막 준동(蠢動)하던 1924년 감독 프리츠 랑(Fritz Lang‧1890~1976)이 미국 뉴욕 마천루(摩天樓)에서 충격 받아 만든 영화다. 20세기 초 미국 특히 뉴욕은 지금 못지않은 고층빌딩들이 즐비했다.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Empire State Building)도 1929년부터 공사가 시작됐다.
메트로폴리스는 미래‧로봇‧양극화(兩極化) 등 후대 SF 디스토피아물들에 무수한 영감(靈感) 제공한 기념비적 작품이다. 영화배경은 과학기술이 극도로 발달한 먼 미래. 스토리는 왜 자신들이 그런 처지인지도 모른 채 지하(地下)세계에 갇혀 하루 10시간 중노동에 시달리던 이들을, 지상(地上)의 한 이가 목격하고서 충격 받아 각성(覺醒)한다는 내용이다. 지금은 저작권이 소멸됐기에 누구나 유튜브 등에서 볼 수 있다.
스크리머스는 B급 영화이긴 하지만 필자 기준으로 볼 땐 상당한 철학(哲學) 담은 작품이다. B급 영화에서 그 흔한 ‘신나게 때리고 부수는’ 장면도 없다.
배경은 우주개척 시대. 가상행성 시리우스 6-B의 엄청난 지하자원 두고 연합군‧신디케이트(Syndicate) 간 내전(內戰) 한창인 와중에 신형병기(兵器) ‘스크리머’가 개발된다. 지하매복 후 생명체에게 튀어 올라 날카로운 톱날로 공격하는 스크리머는, 어느 순간부터 인간통제에서 벗어나 자가(自家)생산하기 시작한다. 나아가 인간을 닮은 변종(變種)들을 스스로 개발한다는 게 줄거리다.
‘정치적특이점 선진국’ 韓 처방전은
AI의 발전속도는 놀랍다. 2016년에 이미 우리는 이세돌 9단을 꺾은 바둑프로그램 알파고(AlphaGo)를 목격했다. 지난 28일 뉴욕타임스(NYT)는 미 공군이 AI 드론 ‘XQ-58A 발키리’의 첫 테스트비행에 성공했다고 보도했다. MQ-9 리퍼 등 기존 드론들은 지상통제소에서 인간이 조종해야만 비행가능했다.
AI가 영화 매트릭스처럼 디스토피아를 야기할 수 있다는 경고는 국제 과학계에서 이어진다. 신체장애 극복한 영국 물리학자 스티븐 호킹(Stephen Hawking‧1942~2018)은 생전에 2017년 포르투갈 리스본에서의 웹 서밋(Web Summit) 기술 콘퍼런스에서 “AI는 인류멸망을 초래할 수 있다” 내다봤다. 구체적으로 “인류가 AI 대처방법을 익히지 못하면 AI 기술은 인류문명사의 최악의 사건이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인간이 AI에게 관리 받는 시대는 언제가 됐든, 어떤 이유가 됐든 필연(必然)적이라는 게 학계 중론이다. 기술적 특이점 때문에 사는 게 너무 편해져서 너도나도 가상현실에서의 삶을 택할 수도 있다. 영화 매트릭스처럼 언젠가부터 AI의 노예가 돼 신기루처럼 달콤한 호접지몽(胡蝶之夢) 선물 받고 대신 고혈(膏血)을 빨릴 수도 있다.
기술적 특이점이 언제부터 시작될지는 알 수 없으나, 대한민국은 적어도 ‘정치적 특이점’에서는 국제사회 선두(先頭)주자임이 틀림없어 보인다. 선진국(先進國)이란 명성 무색하게, 대한민국은 뭐가 어떻게 꼬였는지 그 알고리즘(Algorism)조차 알 수 없는 채 자가생산되는 악성 바이러스들에 의해 ‘디스토피아적 사육‧세뇌’ 당하고 있다.
구체적으로 각종 범죄의혹의 야당 중진(重鎭)은 ‘뜬금포’ 단식투쟁 나서면서 ‘투사(鬪士) 코스프레’한다는 비판 받고 있다. 여당에선 사상최초로 임기 초 지지율 30%대라는 경이(驚異)적 현상 벌어지고 있다. 소위 ‘엄카 정치인’ 상당수는 생계는 대체 어떻게 꾸리는지 알 수 없을 정도로 낯짝 두꺼운 금전(金錢)정치 뽐내고 있다. 이들 모두 전례(前例) 찾아볼 수 없다는 공통점이 있다. 또 “내가 너희를 돌봐줄게. 그 알고리즘은 알 필요 없어” 식으로 선동한다는 유사점도 있다.
정치적 특이점에 갇힌 국민들은 이러한 악성 알고리즘대로 따라갈 수밖에 없다. 세금은 세금대로 내고 일자리‧물가 등 대란(大亂)은 대란대로 감수하면서, 최선(最善) 아닌 차선(次善) 선택을 강요당하고 있다.
기술적 특이점은 법적규제 등을 통해 폐단(弊端)을 사전차단하거나 속도조절에 나설 수 있다. 허나 정치적 특이점은 이를 규제할 별도의 입법부(立法府) 따위가 없기에 인위적 조정이 어렵다. 그저 자정(自淨) 되기만을 기다려야 한다. 단 하나, ‘올바른 지도자’ 출현만이 이를 막을 수 있다. 굵직굵직한 차기 선거들에선 부디 부끄러운 대한민국 정치적 특이점이 철퇴 맞길 바란다.
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email protect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