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동적으로 역사 써내려간 벽안의 아시아인들
黨政大 소극적 태도에 與 지지층 민심도 ‘흔들’
‘이사의 동물’ 인류
필자는 곧 이사를 앞두고 있다. 한양을 떠나 경기도 모처 본가(本家)로 돌아가 생의 반절 남짓 맞아 재정비하려는 생각이다. 필자 어머님 건강이 다소 좋지 않으신 것도 이유다. 얼마 안 되는 짐 한창 꾸리다 보니, 대한민국 정치판도 재정비가 필요하지 않을까 하는 소견(所見)에, 아까운 지면에 몇 글자 끄적여 본다.
인류는 ‘이사의 동물’이다. 머나먼 태곳적 아프리카에서 발원(發源)한 현생인류는 역동적으로 이동하며 문명(文明)의 금자탑(金字塔)을 쌓아갔다. 초창기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는 때로는 불(火) 피우는 기술 발견하고, 때로는 농경(農耕)기술 습득하며, 때로는 이종(異種)인류와의 전쟁 통해 무기‧과학기술 발전시켰다.
놀랍게도 선사시대(先史時代) 중앙아시아에는 코카소이드(Caucasoid) 즉 ‘백인’이 다량 거주했다. 토하라인(Tocharian)이 주인공이다. 사실 놀라울 것도 없다. 21세기 지금도 아시아대륙 위엔 러시아 슬라브인(Slavs)들이 살고 있으니 말이다.
다만 오늘날 러시아인 상당수는 타타르(Tatar)의 멍에 즉 몽골제국 식민지배 및 전후 통혼(通婚) 영향인지, 금발벽안(金髮碧眼)과는 다소 거리 먼 외모가 적지 않다. 대표적 인물은 연방대통령 블라디미르 푸틴(Vladimir Putin), 국방장관 세르게이 쇼이구(Sergei Shoigu) 등이다.
아무튼 토하라인은 최소 기원전 2000년경 중앙아시아 타림분지(Tarim basin)에 정착했다. 이들은 기원전 3400~기원전 2600년께 동유럽 도나우강(Donau R.) 일대 얌나야문화(Yamnaya culture)에서 분파(分派)한 것으로 추측된다. 당초 유목(遊牧)민족이었으나, 타림분지 도착 즈음엔 반농반목(半農半牧)으로 진화했다는 분석이 있다.
재정비 후 꽃피운 찬란한 문화
이들의 이야기는 일찍이 동아시아에도 퍼졌다. 일부 학설(學說)에 따르면, 도교(道敎) 신화에 등장하는 곤륜산(崑崙山)의 서왕모(西王母)는 토하라인 무녀(巫女)였을 가능성이 있다. 역사시대 들어선 전국시대(戰國時代) 및 진(秦)나라 말기 때 호(胡)라고 불렸다. 진시황(秦始皇)이 “진나라를 무너뜨리는 건 ‘호’다” 말했을 때 그 ‘호’다. 정작 망국(亡國) 주역은 시황제 아들인 호해(胡亥)였지만 말이다.
뜻밖에도 선사시대 토하라인들은 황해(黃海‧서해) 건너 ‘한반도’도 방문했을 여지가 있다. 지난 2006년 강원도 정선 아우라지유적 청동기 고인돌 묘에선, 유전자(DNA) 염기서열(鹽基序列) 분석 결과 ‘백인’으로 추측된 유골(遺骨)이 발굴됐다. 앞서 1965년 충북 제천시 황석리유적에서 출토(出土)된 유골도 서양인이란 주장이 나온 바 있다.
동아시아 남심(男心) 홀린 서왕모 미모가 어떠했을지는, ‘소하공주(小河公主)’ ‘누란의 미녀(Beauty of Loulan)’ 등에서 가늠할 수 있다.
소하공주는 1934년 토하라인의 고대도시 누란 서쪽 102㎞ 지점에서 첫 발견된 뒤 2003년 발굴된 백인여성 미라(Mirra‧미이라)다. 긴 속눈썹과 오똑한 콧날에 깃털 꽂힌 펠트모자 쓰고 가죽부츠 신은 그녀는, 발굴 당시 마치 살아있는 듯 생동(生動)적인 모습이었다. 실명은 알 수 없으며 기원전 1900~기원전 1600년 사이 살았던 것으로 추측됐다. 현대기술로 복원된 공주의 모습은 눈부시고 단아하기 그지없다.
누란의 미녀는 1980년 신장위구르(Uyghur)자치구 사막 한가운데에서 발견된 백인여성 미라다. 손톱에 물들인 봉숭아꽃물 등 마찬가지로 신체가 거의 완벽히 보존된 그녀는 생전(生前) 신장은 155㎝, 생몰(生歿)시기는 기원전 1800년대로 분석됐다. 발굴현장은 1980년 일본 NHK 특집다큐를 통해 전 세계에 방영됐다.
중앙아시아에서 삶을 재정비한 토하라인은 기원전 3~기원전 1세기의 월지(月氏) 등 왕국 이루고서 찬란한 문화 꽃피웠다. 기원전 6세기경 탄생한 불교는 월지를 거쳐 동아시아에 전파됐다. 훗날 인도 아대륙(亞大陸)으로 건너간 분파는 ‘푸른 눈의 승려’ 쿠마라지바(Kumarajiva‧구마라즙‧생몰연도 서기 344~413)도 배출했다.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卽是空 空卽是色)” 등은 쿠마라지바가 산스크리트어(Sanskrit)를 한역(漢譯)한 것이다.
위기도 있었다. 월지 분파 중 하나인 소(小)월지는 전한(前漢) 무제(武帝) 정복전쟁 앞에 사실상의 한나라 식민지가 됐다. 대(大)월지도 소리소문 없이 사라졌으며, 누란도 무제와의 한혈마(汗血馬)전쟁에 패해 국명마저 선선(鄯善)으로 바꿨다.
토하라인은 소설 삼국지연의로 유명한 후한(後漢) 말에도 등장한다. 일설에 의하면 이들은 마등(馬騰)‧한수(韓遂)의 난 때 노수호(盧水胡)라는 이름으로 용병(傭兵)으로 동원됐다. 후일 마등의 아들 마초(馬超)가 규합한 서역(西域)세력은, 정사(正史) 기준으로 조조(曹操) 인생 유일하게 그를 황천길 직전까지 몰아넣을 정도로 용맹 떨쳤다.
비록 한 때 쇠락한 토하라인이었으나, 그들의 유전자 물려받고서 삶을 재정비한 위구르족 등 통해 명맥(命脈) 잇고 있다. 위구르족은 서기 744년 위구르제국(Uyghur Khaganate), 1634년 준가르제국(Dzungar Khanate) 등 건국하고 조상의 영광(榮光)을 재현했다. 오늘날 위구르족은 중국공산당 특히 시진핑(習近平)의 ‘인종청소’ 저항운동 선봉(先鋒)에 서 있다.
대양행(行) 거부하는 듯한 고인물
상술했듯 대한민국 정계(政界)도 ‘고인물’에서 벗어나 ‘개척정신’으로 재정비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싶다. 대양(大洋)으로 뻗어나가길 거부하고 안주(安住)한 고인물은 반드시 썩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고인물을 기다리는 건 결국 끔찍한 종말(終末)이다. 썩은 물은 깊은 산 속 옹달샘 찾아 떠난 토끼도 고개 돌릴 정도로 누구도 반기지 않는다.
정치는 생물이란 말처럼, 민심(民心)은 끊임없이 살아 요동친다. 예를 들어 한국갤럽이 지난달 29~31일 전국 성인 1002명을 대상으로 실시해 1일 공개한 일본 후쿠시마(福島)원전 방류수(오염수) 관련 여론조사(상세사항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에서 응답자의 58%가 “매우 걱정된다” 답했다고 한다. 특히 보수층(58%)‧70대 이상(57%)‧국민의힘 지지층(46%)에서도 방류수 우려 응답이 절반가량이었다고 한다.
필자도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방류수 판단을 존중하는 편이다. 허나 정부여당 일부 인사들은 안주한 고인물 자처하듯, 누구도 적극적으로 “왜 방류수는 무해(無害)하나” “우리는 국민안전 위해 이러이러한 노력 기울이고 있다” 설명하고 유권자를 설득하려 들지 않는다. 그저 “내가 안전하다면 안전한 거야” 식의 태도만 있다. 직언하자면, 국민 눈에 보이는 적극적 행동이라곤 여성가족부장관 잼버리 숙소사태와 같은 무사안일주의(無事安逸主義)다.
토하라인 등 인류는 끊임없이 능동적 몸가짐‧마음가짐 가졌기에, 존속(存續)하고 나아가 번영(繁榮)했으며 소하공주‧쿠마라지바 등의 전설(傳說) 남길 수 있었다. 늦은대로 고인물에서 벗어나 이제는 대해(大海)로 나아갈 때다.
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email protected]
효자시네요.
이사 잘 하시고 건강이 제일입니다.
어머님의 쾌유를 기원합니다.
자식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도리지요. 감사합니다. 선생님께서도 건강하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