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원가입

로그인

아이디
비밀번호
ID/PW 찾기
아직 회원이 아니신가요? 회원가입 하기

[칼럼] 숙박비 못 낸 나폴레옹

오주한

‘어재(어쩌다 재벌)’ 정치판 활개치는 막장세상

썩은 고인물 걷어치운 나폴레옹 전설 부활하길

 

군문(軍門) 들어서다

 

나폴레옹 보나파르트(Napoleon Bonaparte‧생몰연도 1769~1821)는 대단히 흥미로운 인물이다. 마치 동양사(東洋史)의 한고조(漢高祖)나 명태조(明太祖), 칭기즈칸(Chingiz Khan) 등처럼 ‘계층 간 사다리’ 이점을 몸소 실천해 난세 중의 난세를 이겨낸 인물이다.

 

나폴레옹‧한고조‧명태조‧칭기즈칸 기타등등 무수한 동서양 영웅들의 공통점은 ‘삶의 밑바닥’을 경험해봤다는 것이다. 타고난 부의 대(代)물림 아래, 자신이 겪은 다소간의 고생이 인간사(人間事)의 모든 고통인 줄 착각하고, 하늘에서 돈 쏟아지고 땅에서 돈 솟아나는 걸 당연히 여기고, 구상유취(口尙乳臭) 놀이하며, 끼리끼리 놀다가 망하는 길을 택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자신부터 능력본위(能力本位)로 지존(至尊)의 자리에까지 올라갔기에, 쉽게 말해 ‘사람 아쉬운 줄 안다’는 것으로 그들의 공통점은 요약된다. 반대로 우리계층끼리 외친 이들은, 요행(僥倖)이 따라주지 않는 이상, 상당한 확률로 패가망신했다는 건 역사가 여실히 보여준다.

 

한고조는 가난한 일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소하(蕭何) 덕택에 마을 정장(亭長) 벼슬을 했다. 정장은 오늘날로 말하자면 동장(洞長) 쯤 된다. 허나 진(秦)나라 정장은 결코 위세부리는 자리가 아니었다. 고(故) 김영삼 전 대통령(YS) 표현을 빌리자면 “영광이 아닌 (처형도구 의미의) 십자가”였다. 실제로 한고조는 시황릉(始皇陵) 공사장 인부 인솔역을 떠안았다가 시간 좀 늦고 머릿수 좀 모자란다는 이유로 거지신세 면치 못했다.

 

명태조는 두말 할 나위 없는 진짜 걸인(乞人) 출신이다. 칭기즈칸도 여러 몽골(蒙古)부락에게 뒤쫓겨 한 때 산 채로 제물에 모셔질 뻔했다.

 

나폴레옹도 비록 법률가 집안 아들로 태어났으나, 프랑스 기준 산골오지였던 코르시카(Corsica)섬 촌놈 놀림 받으며 하숙집 월세까지 내지 못할 정도로 불우한 시절 보냈다. 여느 ‘있는 집 2~3세들’이 ‘엄카(엄마카드)’ 못 빌려 “나 돈 없어” 징징거리는 게 아닌, 빈곤포X노 흉내내는 게 아닌, 정말 길거리로 내쫓길 뻔했다.

 

당장 그가 입만 산 빈곤코스프레이어였다면 통장에 억대로 꽂힌 현금다발 보며 “내가 이렇게 가난하다니” “내가 이렇게 열정적으로 서민코스프레하는데 왜 누구도 알아주질 않아. 왜 햄보칼 수 엄써(행복할 수 없나)” 외치며 고급 외제마차 타고 강변이나 질주했지, 험하디 험한 군문(軍門)에 들어가진 않았을 터였다. 지금은 그렇지 않지만 고대~근세 군(軍)은 입에 풀칠이나마 하고자 들어가는 최후의 선택지였다.

 

“비(非)평등주의자, 저들에게 돌을 던져라”

 

허나 나폴레옹은 천부적(天賦的)인 군사적 재능을 발휘했다. 생도(生徒) 시절 나폴레옹은 이도 시린 추운 겨울 어느 날 동기(同期)들과 함께 눈싸움을 했다. 중세까지만 해도 눈싸움 특히 남성들 사이의 투전(鬪戰)은 목숨 걸어야 하는 놀이 겸 훈련이었다. 조선시대만 해도 고을 간 석전(石戰)이라는 행사 아닌 행사 열려 상당수가 죽거나 다치곤 했다.

 

아직 어린 생도들이었기에 눈싸움은 중구난방(衆口難防)식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아군 패색(敗色)이 짙어지자 나폴레옹은 신나게 팔매질 하는 대신 적진을 유심히 살폈다. 그리고는 전우(戰友)들에게 “저 한 점을 집중공격하라”고 외쳤다. 바로 선택과 집중(Selection & Concentration) 전술이었다. 마침내 주공(主攻) 방면이 무너진 적군은 각개격파(各個擊破)됐다.

 

선택과 집중은 나폴레옹 전쟁(Napoleonic Wars‧기간 1803~1815)에서 큰 위력 발휘했다. 나폴레옹은 수십만 유럽 다국적군에 맞서 마찬가지로 수십만 대군을 운용하면서도, 이 대군(大軍)을 마치 손바닥 위에서 갖고 놀듯 기막히게 통솔했다. 유럽연합군은 나폴레옹의 신들린 전격전(電擊戰)‧전략에 휘말려 이리저리 분산되기 일쑤였다.

 

이렇듯 쪼개진 적군을 나폴레옹은 포병‧보병‧기병 조합의 환상적 전술로 하나씩 일격(一擊)에 격파해나갔다. 일설(一說)에 의하면 한 수하가 “폐하(나폴레옹)께선 늘 소수로 다수를 이기셨다”고 하자, 나폴레옹은 “아니다. 짐(朕)은 늘 다수로 소수를 이겼다”고 답했다고 한다.

 

선택과 집중, 망치와 모루(Hammer and Anvil) 전술을 위해선 불가피하게 희생을 강요당할 부대도 있어야 하기에 나폴레옹은 병 처우개선에도 노력했다. 거의 신선한 음식을 장기유통할 수 있는 통조림 전신(前身) 격 병조림이 탄생한 것도 나폴레옹 때다.

 

나폴레옹은 나아가 척탄병(擲彈兵)이라는 사실상의 자살돌격대도 비천하고 냄새난다 코 틀어막지 않고 중용(重用)했다. 19세기 초엔 곡사포(曲射砲)가 보편화되지 않았기에 사람이 직접 총알비 뚫고 적진 코앞까지 가서 언제 터질 지 모르는 수류탄을 투척해야 했다. 따라서 거인(巨人)들로만 구성된 척탄병은 좋게 말하면 용맹하고 나쁘게 말하면 “오늘만 산다”는 사람들 위주였다. 나폴레옹의 의회장악 때도 그를 호위한 건 단 두 명의 척탄병이었다.

 

위아래가 함께 만든 대서사시

 

나폴레옹이 엘바(Elba)섬을 탈출해 현역에 복귀했을 때, 척탄병‧보병‧기병‧포병들은 “제 황위(皇位) 위해 알프스산맥이나 넘게 하고 우리만 갈아 넣은 놈” 욕하지 않고 진심으로 복종(服從)했다. 샤를 드 스토이벤(Charles de Steuben)의 1818년작 ‘황제의 귀환(Napoleon's Return from Elba)’에는 이 자그마한 사내 앞에서 무릎 꿇고 눈물 흘리는 장병들의 환희(歡喜)가 묘사돼 있다.

 

장졸(將卒)들이 이처럼 나폴레옹을 위해 기꺼이 목숨 바친 까닭은, 상술했듯 “저 사람은 우리와 함께 호흡한다” “열심히 하면 계층 간 사다리를 탈 수 있다”는 희망이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폴레옹의 26인 원수(元帥)는 마부의 아들이었던 장 란(Jean Lannes‧1769~1809), 여관주인 아들이었던 기장(騎將) 조아킴 뮈라(Joachim Murat‧1767~1815) 등 ‘어재(어쩌다 재벌)’ 즉 일부 개념 없는 금수저가 아닌 계층 사다리 타고 올라온 이들이 대부분이었다. 나폴레옹이 머리라면 26원수는 팔다리에 비유할 수 있기에, 이들이 없었다면 나폴레옹의 전설도 존재할 수 없었다.

 

나폴레옹이 수하들에게 귀천(貴賤) 가리지 않고 능력대로 출세할 기회를 부여했고, 동기가 부여된 수하들은 그런 나폴레옹을 진심으로 따르고 극한까지 노력했기에, 사회주의혁명 등 빙자해 서민 등쳐먹던 세력 뒤엎은 프랑스1제국(Empire Francais)의 대업(大業)은 존재할 수 있었다. 위아래가 한마음으로 합심했기에 한고조‧명태조‧칭기즈칸 등 못지않은, 어쩌면 그 이상의 통쾌한 드라마‧대서사시(大敍事詩)가 완성될 수 있었다.

 

작금의 대한민국은 난세(亂世)를 넘어 혹세(惑世)임에도 나폴레옹 같은 이는 보이지 않는다. 상당수 위정자(爲政者)들은 국민 바보취급하며 속이고 등치는 걸 너무나 당연히 여기고, 일부 국민은 바보취급 당하는 걸 너무나 당연히 여긴다.

 

허나 사필귀정(事必歸正)이라는 사자성어가 괜히 나온 건 아니리라 믿고 싶다. 베네수엘라행(行)‧‘부카니스탄(북한)’행 고속열차 타고 이대로 나라가 망할 수도 있겠지만, 이렇게 허망하게 제3세계 멤버쉽 받게 될 대한민국은 아니리라 믿고 싶다. 영웅(英雄)이라는 단어에 걸맞은 교룡(蛟龍)이, 물론 나폴레옹의 마지막은 반면교사 삼아, 반드시 수면 위 박차고 날아오르리라 믿는다.

 

20000.png.jpg

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email protected]

댓글
3
댓글 쓰기
권한이 없습니다.
  • 풀소유

    능력본위 기용으로 기득권카르텔을 격파해야 하는데, 흩어지면 죽는다는 것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저들의 단합력은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더 더욱 깨기 힘들어 질 겁니다.

  • ydol7707

    오랜만에 칼럼을 올리시는군요.

    문제는 고인물을 걷어차면 정작 자신이 이후 고인물이 되는 악습이 이어지고 있는게 대한민국 정치판의 현실입니다.

    이런 악순환의 고리를 끊어야 정치가 발전합니다.

  • 오주한
    작성자
    2023.08.24

    안타까운 세상입니다. 유구한 인류역사, 앞선 세대 인간세상이 해답을 보여주고 있는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