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지인의 초고강도 충언 따라 400년 치세 이룬 漢
與, 상임고문 홍준표 조언 받아들여 국민 뜻 받들어야
“장막 안에서 계책을 내어 천리 밖 승부를 결정짓는다” 고대 한(漢)나라 건국공신이자 전설적인 전략가였던 장량(張良‧?~기원전 186년)에게 21세기 오늘날까지도 따라다니는 수식어다.
하늘에 두 개의 태양은 있을 수 없는 법, 진(秦)나라가 멸망하자 기원전 206년 천하의 주인 자리를 두고 한고조(漢高祖) 유방(劉邦), 서초패왕(西楚覇王) 항우(項羽)가 격돌한 초한(楚漢)전쟁이 발발했다. 약 5년간 이어진 용호상박(龍虎相搏)의 이 대전에서 장량은 한나라 승리의 빅 픽처를 제시하고 한나라의 과오들을 과감히 바로잡았다. 행정‧보급의 달인이었던 재상 소하(蕭何), 불패의 전적을 자랑했던 대장군 한신(韓信)의 활약도 장량의 전설이 없었다면 존재할 수 없었다.
때문에 한고조는 천하가 통일되자마자 “장막 안에서 계책을 내어 천리 밖의 승부를 결정지었다. 이것이 자방(子房‧장량의 자)이 세운 공로”라고 크게 치하하며 그에게 3만호의 식읍(食邑)을 하사했다.
한고조가 항우에게 패할 때마다 신들린 보급력으로 각종 물자를 조달해 연명시켰던 소하의 식읍은 7000호에 불과했다. 이를 감안하면 한나라 승리에 기여한 장량의 공로가 어느 정도였는지 가늠할 수 있다. 장량은 이마저도 겸손히 사양하고 일개 시골 땅만 받아 한나라에 대한 자신의 충심이 결코 일신(一身)의 부귀를 위한 것이 아니었음을 입증했다.
사마천(司馬遷)의 사기(史記) 유후세가(留侯世家) 등에는 장량의 활약이 상세히 기록돼 있다. 본시 시골 촌부였던 한고조는 초(楚)나라 장수였던 시절 의제(義帝)의 명으로 진나라 수도 함양(咸陽‧장안)을 점령했다. 구중궁궐(九重宮闕)에 혼이 빼앗긴 한고조는 병사들의 약탈 행위를 통제하는 것도 잊은 채 고삐가 풀리고 말았다. 제 손으로 함곡관(函谷關) 등을 열어젖힌 진나라의 망국신(亡國臣)들도 그런 한고조에게 갖은 아양을 떨고 부추겼을 것임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한고조는 관문을 걸어 잠근 채 유흥에 빠졌으며 이는 항우‧범증(范增)에게 한나라 제거의 빌미를 제공했다. 휘하 중 오직 개백정 출신의 번쾌(樊噲)만이 말렸지만 한고조는 듣지 않았다. 이 때 장량이 나서서 ‘폭군’까지 언급하면서 한고조를 직격했다. 장량은 “진나라가 포악무도해 패공(沛公‧한고조)께선 이곳에까지 이를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도성에 입성하자마자 사치향락만 누리려 하는 건 걸(桀)을 도와 학정을 펼치려는 것과 같습니다. 충언은 귀에 거슬리지만 이롭고, 독한 약은 입에 쓰지만 병에 이롭습니다”라고 지적했다.
‘걸’은 주지육림(酒池肉林)으로 악명을 떨친 하(夏)나라의 마지막 국왕 걸왕을 일컫는다. 그는 술로 된 연못과 고기로 된 숲에서 궁녀들과 음란한 행실을 일삼으며 나라를 파국으로 몰고 갔다. 장량은 이렇듯 폭군의 대명사격인 걸왕을 끄집어내면서까지 한고조를 일깨운 것이었다.
초고강도의 조언을 들은 한고조는 장량의 목에 칼을 씌우는 대신 간신들을 물리치고 장졸들을 수습했다. 또 약법삼장(約法三章)을 공포하고 잔혹했던 진나라 정치체제를 청산했다. 이로 인해 천하백성들은 한나라를 진정한 조국으로 여기고 한나라의 깃발을 따랐다. 소하가 조달한 천문학적 규모의 물자도, 한신이 이끌고 출진한 정예병들도 장량의 혜안이 없었다면 결단코 존재할 수 없었던 것이다. 장량의 조언으로 항우 등의 음모도 타파했음은 물론이다.
그런데 기록에는 장량이 한나라 중앙정부에서 어떠한 핵심직책에 제수됐는지 명확한 내용이 없다. 도리어 그는 본시 한(韓)나라에서 사도(司徒) 벼슬을 지낸 ‘외지인’이었다. 한(韓)이 멸망하자 한(漢)에 의탁한 장량이 사실상의 백의종군(白衣從軍)을 한 것도 이러한 그의 출신배경과 문무백관들의 반발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측되고 있다. 실제로 훗날 한고조는 장량에 대한 3만호 식읍 하사에 제장들이 불만을 품자 “장막 안 계책으로 천리 밖 평정”을 강조하며 달래는데 애를 먹어야만 했다.
한고조가 “한(韓) 쪽 사람인 너는 너희 지방 행정에나 힘써라”며 입을 막아버리면 장량으로서는 할 말이 없는 셈이었다. 그러나 한고조는 좌우를 설득하면서까지 장량의 고강도 충언들을 적극 수용했다. 한나라는 이를 원동력으로 해서 3만 병력으로 56만 대군을 깨뜨린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의 항우를 물리치고 400년 간의 태평성세(太平聖歲)를 이룩할 수 있었다.
근래 홍준표 대구시장, 김기현 국민의힘 대표 사이의 설전이 있었다. 5선 국회의원, 재선 경남도지사, 당 원내대표 및 대표최고위원, 대선후보 등 산전수전(山戰水戰)을 모두 겪은 홍 시장은 정계의 대표적 전략가‧지장(智將)으로 꼽힌다. 중앙당 상임고문이기도 한 그가 작심하고 당에 대한 고언(苦言)을 내놨지만 지도부에서는 ‘지방행정에 전념하라’는 취지의 타박만 돌아왔다.
국민의힘은 20대 대선에서 극적으로 신승(辛勝)했지만 내년 총선을 앞둔 근래 지지율 폭락이라는 백척간두(百尺竿頭)의 위기를 맞고 있다. 국회 의석수 과반을 차지한 더불어민주당은 마치 항우와도 같은 위세를 떨치며 폭주 중이지만 지지율은 도리어 상승세(이상 상세사항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라고 한다. 이렇듯 엇갈린 여야 명암 원인을 홍 시장이 예리하게 지적한 것이지만 당 지도부는 눈과 귀를 닫고 있다.
한나라는 장량의 충심 어린 쓴소리를 받아들였기에 불가능처럼 여겨지던 초한전쟁 승리를 거머쥘 수 있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목이 떨어진 건 항우가 아닌 한고조였을 것임이 분명하다. 국민의힘은 특정인물의 농단 논란으로 이미 한 차례 홍문연(鴻門宴)과도 같은 폐족(廢族)‧폐당(廢黨)의 위기를 겪은 바 있다. 현 지도부의 더 이상의 위기 자초는 당원들에 대한 배신이며, 지난 대선에서 국민의힘의 손을 들어준 국민에 대한 배신이다.
제 사견이자 소견입니다만, 진충보국을 위한 때로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의 불가피한 여러 선택들이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여기에 반대를 위한 반대식의 일부 논리는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같은 개신교 보수우파들은 문재앙 비판 좀 했다고 논란덩어리인 전광훈이 따위를 지지하지 않는데 국힘은 대체 뭔 이유로 전광훈을 빠는지 모르겠습니다.
애초에 전광훈은 국민혁명당 소속이거니와, 신혜식, 황교안 등과도 갈등을 빚어서 이미지가 나락을 갔는데 도대체 왜 안으려 하는건지 모르겠습니다.
우리같은 개신교 보수우파들은 문재앙 비판 좀 했다고 논란덩어리인 전광훈이 따위를 지지하지 않는데 국힘은 대체 뭔 이유로 전광훈을 빠는지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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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석은 가려지리라 생각합니다
걱정이 드는 건 준표형님께서 문정부 시절 개헌 저지를 위해 박근혜 전 대통령을 출당시킨 걸 트집잡아 공격을 하고있다는 의심을 들 수 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심하면 준표형님을 출당시킬 수도 있을 것 같아 걱정이 됩니다.
제 사견이자 소견입니다만, 진충보국을 위한 때로는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의 불가피한 여러 선택들이 존재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여기에 반대를 위한 반대식의 일부 논리는 맞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박근혜 탄핵에 누구보다 앞장서서 찬성하고 이명박 대통령 구속할때 그냥 지켜보기만 하던 작자들이 과연 자기들이 뭐라고 감히 홍시장님을 출당시킬 수 있을까요? 사적으로는 사이가 나빴지만 누구보다도 박근혜 대통령을 지키는데 앞장섰던게 홍시장님이신데 감히 누가 그럴 수 있을까요
윤빠와 윤핵관이 그럴 수도 있겠죠?
분구필합 합구필분(分久必合 合久必分)이지만, 흩어진 것도 반드시 다시 하나로 모이리라 생각합니다.
인간사가 얼마나 복잡다단한지는 수천수만년의 역사가 말해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공격을 하기 위한 구실이고 과거에 청렴하신 홍카가 그놈들의 이권을 안 챙겨주니 그놈들이 앙심을 품고 개지랄하고 있는 것입니다.
우국충정과 분탕을 구분해야 할 때.
옳으신 말씀입니다
아 나의 장자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