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번째 죽음이 던진 무거운 말
“모든 걸, 정치를 내려놓으시라” 이재명 전 비서실장 전모 씨가 유서를 통해 이재명에게 남긴 말이라고 한다. 의미심장하다. 구체적인 말은 아니지만, 이보다 더 무게가 나가는 말도 없을 성싶다. 정치 등 모든 것이란, 바로 집착일 것이다.
사람의 일생은 집착의 궤적이다. 집착은 헛되고 헛된 것이라고, 스승들은 가르치셨다. 그런데도 사람은 그걸 깨치지 못한 채 집착에 빠져 살다가, 어느 날 훅하고 간다. 허무하기 짝이 없다.
그래서 그 허무함을 간혹 상기기라도 하라는 게, 스승들의 충고이시다. 정신없이 살다가도, 가끔 홀로 사념에 잠길 이유일 것이다.
오늘의 이재명을 키운 집념·집착과 외곬 성향그럼, 내일의 운명은?
그러지 않고 평생을 집착 속에 갇혀 아등바등 악착스레, 집착의 배설물이나 토하다가 간다는 건 참 비참한 수준일 듯싶다.
이렇게 개탄하는 필자인들, 그런 미물(微物)이 아니라고 감히 자처할 수 있을까? 두렵고 무섭고 자괴할 뿐이다.
간구하기로는 다만, 이재명처럼 “이젠 그만 내려놓으란” 질책을 받는 일만 없이 살다 가도 무척 다행이겠다는 정도다. 그럴 수 있을까?
집념·집착은 바로 외곬 성향이다. 어떤 상념을 너무 지독하게 확신하거나 밀어붙이다 보면, 그건 결국 남도 자신도 아프게 하는 독극물이 된다는 법칙. 예를 들어보자.
종교의 이름으로, 이교도 목 댕강이념의 이름으로, 300만 피바다종교적 신념이 원리주의 독재 권력이 되면,그것처럼 무서운 게 없다.이교도들을 잡아다 해변에서 목을 베어 죽인다.그 장면을 동영상으로 찍어 보이기도 한다.종교의 이름으로.이데올로기 신념이 전체주의 독재 권력이 되면, 그것처럼 잔인한 것도 없다. 손이 부드럽고 안경을 썼으면 부르주아 반동으로 몰아, 청소년들을 시켜 300만 명씩 학살한다. 혁명의 이름으로.[편집자 주] 베트남 공산화 이후 캄보디아를 장악한 극좌(極左) 공산정권 크메르루즈는 1975~1979년 자국민 3백만명을 잡아죽이는 광란의 '피바다' 학살을 저질렀다.이런 극좌 원리주의 만행은 <뉴욕타임스> 시드니 쉔버그의 기사로 알려졌다. 쉔버그는 이 기사로 퓰리쳐상을 수상했다. 이를 토대로 롤랑 조페(영화 <미션> 감독으로 유명)는 <킬링 필드>란 영화를 1985년에 내놓았다. 영화 끝엔 존 레논의 유명한 노래 <이매진>이 훌러나와 가슴을 먹먹하게 만든다.이런 극단주의(extremism)는 원리주의(principlism), 근본주의(fundamentalism)와 쉽게 결합, 인종·민족·종교·이념의 이름으로 폭력을 자행하면서 그것을 정당하다고 강변하는 특징을 갖는다. 극좌의 레닌·스탈린·모택동·폴 포트·김일성3대·시진핑, 극우의 히틀러·무솔리니·일본군국주의, 이도저도 아닌 푸틴, 중동의 탈레반, ISIS, 프랑스대혁명의 로베스피에르 등이 모두 극단주의자라 할 수 있다.국내 좌파언론이 광화문광장의 '태극기부대'를 향해 '극우'라고 비난하는 것은 용어의 정의조차 이해 못하고 함부로 써갈기는 저급한 행위다.한국의 극렬한 반체제 군중도,윤석열 대통령 부처(夫妻)의 인형을 만들어 때리고 찌르고 뚫고 했다.문재인 전 대통령도 7 적(賊)의 하나로 찍혔다.
어떤 흉악한 미래의 전조(前兆)이기라도 한 것일까?아니,이미 미래 아닌 현실 아닐까?
내려놓으시라.제발 좀 내려놓으시라.어찌 그리 집요하시오?지은 업(業)이 그런다고 공짜로 씻겨지는 게 아니지 않소?지극히 높은 곳에 계신 분이시어,그의 영혼을 불쌍히 여기소서!
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23/03/11/2023031100017.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