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불어민주당이 한덕수 대통령 권한대행 탄핵을 놓고 딜레마에 빠졌다. 민주당이 한 권한대행에게 상설특검 추천 의뢰와 헌법재판관 임명 등 대통령 권한 행사를 압박하면서도 탄핵 절차는 국무총리에 맞춰 진행하겠다면서 '자기모순'에 빠졌기 때문이다.
민주당의 한 최고위원은 20일 뉴데일리와의 통화에서 "한 권한대행이 대통령 권한을 행사해 줘야 할 부분이 있는 상황인데 총리 탄핵 기준을 적용하면 우리 스스로 역풍을 맞을 가능성이 높다"며 "지도부에서도 이런 점이 우려스럽다는 목소리가 나왔고, (이재명) 대표도 공감한 부분"이라고 밝혔다.
실제로 민주당은 대통령으로서 한 대행에게 바라는 점이 많다. 당장 내란상설특검 후보자 추천이 지연되고 있다. 상설특검은 대통령이 국회에 특검 추천을 의뢰해야 절차가 시작된다. 국회가 특검 후보를 추천하더라도 종국에는 대통령이 특검을 임명해야 한다.
헌법재판관 임명 절차에도 한 권한대행의 권한 행사가 절실하다. 현재 6인 체제 헌법재판소에서 윤 대통령 탄핵 심판이 마무리되면 1명의 재판관만 탄핵에 반대해도 탄핵안이 기각된다. 이 대표의 사법리스크로 윤 대통령의 빠른 파면이 필요한 민주당 입장에선 최악의 시나리오다.
민주당은 자당 몫 2명의 헌법재판관 추천 절차를 최대한 빨리 마무리 짓겠다는 계획이다. 오는 23·24일 헌법재판관 인사청문회를 개최하고 추천을 할 예정이다.
하지만 한 권한대행이 이들을 임명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여권에서는 2017년 박근혜 전 대통령 당시 사례를 들며 한 대행이 헌법재판관을 임명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당시 황교안 전 국무총리는 공석인 헌법재판관 1명의 임명을 박 전 대통령 탄핵 확정 이후로 미뤄 행사했다. 대통령의 파면이 확정되지도 않은 상황에서 대행이 임명권을 행사하는 것이 적절치 않다는 논리였다.
민주당은 연일 한 권한대행의 대통령 권한 행사를 압박하고 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20일 국회에서 열린 민주당 최고위원회의에서 "한 권한대행은 상설특검 후보도 바로 추천을 의뢰해야 하는데, 지금 6일째 의뢰를 하지 않고 있다는 게 놀랍다"면서 "일설에 의하면 국회가 헌법재판관을 추천해도 (한 권한대행이) 임명하지 않는 것을 검토한다는데, 사실이 아니라고 믿고 싶다"고 말했다.
민주당이 김건희특검법과 헌법재판관 임명을 하지 않으면 탄핵에 나설 듯한 언행을 서슴지 않고 있다. 한 권한대행이 특검법 재의요구권(거부권) 행사를 오는 31일까지 검토하겠다고 밝힌 상황에서 탄핵을 압박 카드로 쓰는 모습이다.
노종면 민주당 대변인은 "한덕수 권한대행이 지금 당장이라도 국무회의 열어서 김건희특검법과 내란특검법을 공포하면 된다"며 "31일까지 민주당은 기다리지 않는다. 선제적인 탄핵이 가능한 상황"이라고 엄포를 놨다.
정치적 압박은 강화하고 있지만 실제 한 대행 탄핵을 실행에 옮기기는 쉽지 않다는 것이 당 지도부의 분위기다. 탄핵 절차를 정하는 것부터 문제다. 헌법은 대통령과 국무총리의 탄핵 정족수를 다르게 규정하고 있다. 대통령 탄핵에 재적의원 3분의 2(200석) 찬성을 요구하는 반면, 국무총리는 재적의원 과반수(150석)만 찬성하면 된다.
민주당 고민은 이 지점에서 시작된다. 한 권한대행을 국무총리 탄핵 절차로 탄핵하면 민주당 자력으로 가능하다. 민주당이 170석을 보유하고 있다. 민주당이 편한 방향이다.
하지만 비판은 감수해야 한다. 자신들의 편의에 따라 한 권한대행을 대통령으로 규정했다가 총리로 규정하는 모습이 연출되기 때문이다.
반대로 대통령 탄핵 절차를 준용하면 정치적 부담을 모두 뒤집어쓸 가능성이 농후하다. 한 권한대행을 대통령에 준해 탄핵하면 윤 대통령 탄핵안 표결 때와 마찬가지로 여당 내 이탈표(8석)가 필요하다. 헌정사 최초 대통령에 이어 권한대행 탄핵 추진이라는 부담에 자칫 탄핵안이 부결된다면 역풍은 떼 놓은 당상이다.
국민의힘 분위기도 민주당에 유리하지 않다. 한 권한대행 탄핵에는 동조하지 않는 분위기다. 여당 소속으로 윤 대통령 탄핵에 찬성표를 던진 한 의원은 이날 통화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비상계엄이라는 명확한 행동이 있었기에 찬성했지만, 한 권한대행 탄핵은 무슨 명분으로 하느냐"고 반문했다.
결국 한 대행 탄핵을 어떤 방식으로 추진하더라도 대선 정국을 앞둔 이 대표에게는 부담스럽다는 결론이다. 최근 실용주의와 우클릭을 표방하며 중도층 확장을 꾀하는 이 대표의 행보에도 상처를 낼 수 있다. 핵심 지지층만 바라보는 정치적 결단을 할 수 있는 입장이 아니다.
민주당 내에서는 한 대행을 탄핵할 근본적인 이유도 부실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본인들의 정치적 주장을 받아들이지 않았다는 이유로 탄핵을 강행하기에는 명분이 약하다는 것이다. 헌법재판소에서 한 권한대행 탄핵안이 기각되면 대선 정국과 시기가 겹치면서 오히려 민주당에 악재가 될 수 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의 한 중진 의원은 이날 통화에서 "대통령의 권한은 스스로 판단해 행사할 수도 안 할 수도 있는 것이기에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하더라도 헌재에서 기각될 가능성이 있다"며 "그렇게 되면 다가올 대선 정국에서 이 대표가 총력을 다한 실용주의 이미지가 퇴색되고 여당에 공격을 받는 소재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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