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헌법재판소를 상대로 윤석열 대통령 탄핵 심판은 재촉하면서도 자신의 재판은 고의로 지연 시키는 '내로남불' 행태를 보이는 것을 두고 비판이 확산하고 있다.
변호인 선임을 차일피일 미루고 '이사불명', '폐문부재' 등 낯선 사유들을 내세워 소송기록통지서를 수령 거부한 데 이어 법관 기피 신청까지 내는 등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이 대표의 재판 지연 전략에 피로감이 커지고 있는 것이다.
법조계에서는 사법부가 국민적 관심이 큰 사안들을 일사천리로 결론 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는 가운데 이 대표 재판을 담당하는 재판부들이 이 대표의 고의적인 재판 지연 행위에 대해 일침을 가하고 나서 이 대표 재판에도 속도가 붙을 수 있을 지 관심이 쏠리고 있다.
◆李 '불법 대북송금' 재판, 장기간 지연 우려
18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이 대표의 '불법 대북송금' 사건은 첫 공판이 시작되기도 전에 중단됐다. 이 사건을 심리하는 재판부가 17일 이 대표 측이 제기한 법관 기피 신청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법관 기피는 형사소송법 18조에 따라 법관이 불공정한 재판을 할 염려가 있거나 사건의 전심 재판, 기초조사, 심리 등에 관여했을 때 신청할 수 있다.
이 대표 측은 앞서 수원지법 형사11부(부장판사 신진우) 심리로 열린 공판준비기일에서 "재판부는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의 외국환거래법 위반 사건 판결 곳곳에서 이재명에 대한 유죄의 예단을 드러내 유럽인권재판소 판결에 의하면 공정한 재판을 기대하기 어렵다"며 법관기피 신청을 냈다.
같은 사건 공범으로 기소된 이 전 부지사에게 유죄를 선고한 재판부가 배정돼 이 대표에게 편견을 갖고 심리할 가능성이 있다는 취지다.
이 대표의 요청에 검찰 측은 "공범 사건을 했다는 이유 만으로 재판부 기피 신청이 되는 경우는 없다"고 반발했으나 재판부는 법관 기피 신청을 받아들였다. 통상 법관 기피 신청은 1심부터 대법원 판단까지 2∼3개월이 소요되는 만큼 1심에서 끝나지 않으면 이 사건 재판은 장기화될 우려가 커졌다.
앞서 이 대표 측은 지난 9월30일에도 "무죄 추정의 원칙에 어긋난다"며 재판부 재배당을 요청한 바 있다. 하지만 당시 재판부는 "명확한 법률 문헌이 없는 상황"이라며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조희대 대법원장의 '신속 재판' 기조에 맞게 원칙대로 기존 재판부가 이 대표의 재판을 맡고 이 대표는 이에 협조해 법치주의를 바로 세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선거법 위반' 2심 재판부 "李, 재판 서류 피해도 받은 것으로 간주"이 대표는 1심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 받은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 2심에서도 변호인을 선임하지 않는 등 각종 꼼수를 동원해 재판 지연을 초래하고 있다.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항소심 재판을 맡은 서울고법 형사6-2부(부장판사 최은정)는 17일 국선변호인 선정을 위한 안내와 함께 이 대표에게 소송기록접수통지서를 세 번째 발송했다.
형사소송법에 따르면 2심은 1심의 소송 기록을 받으면 즉시 피고인에게 소송기록접수통지를 보내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 통지서를 수령한 피고인은 20일 이내에 항소이유서를 항소 법원에 제출해야 한다.
앞서 서울고법은 지난 9일과 11일 두 차례에 걸쳐 이 대표에게 소송기록접수통지서를 발송했다. 그동안 통지서는 '이사불명', '폐문부재' 등의 이유로 송달되지 않았다.
결국 재판부는 이 대표에 대한 항소장 접수 통지를 공시 송달로 대신하기로 결정했다. 이 대표가 지속적으로 정상적인 재판 절차를 방해하는 것을 더는 두고 보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공시 송달은 송달할 서류를 법원 인터넷 홈페이지나 게시판 등에 게시해 서류가 전달된 것으로 간주하는 제도를 말한다. 형사소송법 제64조 '공시송달의 방식' 규정에 따라 2주일이 지나면 자동으로 효력이 발생한다.
법조계 관계자는 "재판부가 공시 송달을 결정함에 따라 (이 대표 측이)'서류 접수가 안 됐다'는 이유로 재판 연기를 신청하는 것은 불가능해졌다"며 "더는 이 대표 측에 끌려 다니지 않고 심리를 신속히 마무리하겠다는 재판부의 의지가 담긴 대목"이라고 말했다.
◆'대북송금' 재판부는 李 재판 지연 강하게 질타…과거 은수미에도 '철퇴'
이 대표의 재판이 잇따라 지연되는 가운데 '불법 대북송금' 재판을 맡은 신진우 부장판사의 과거 이력이 주목 받고 있다. 그는 지난달 12일 대북송금 사건의 3차 공판준비기일에서 "재판이 이렇게 지연되는 경우는 처음 본다"며 이 대표 변호인단에게 재판 지연 문제를 정면으로 질타해 관심을 끌었다.
당시 이 대표는 기소 이후 5개월이 지난 시점이었지만 3차례의 공판준비기일만 진행되고 정식 재판은 시작도 못 한 채 제자리 걸음만 하고 있었다. 이 대표 측이 "기록 검토를 하지 못했다"며 재판에 비협조적이었기 때문이다.
이에 신 부장판사는 "다른 일반적 사건과 비교를 하면 이 사건은 지나치게 지연되고 있는 게 맞다"며 "다음 달 17일 공판준비기일을 1차례 더 진행한 후 정식 재판에 들어가겠다"며 신속 재판 의지를 내비쳤다.
신 부장판사는 과거 은수미 전 성남시장과 화천대유 실소유주인 김만배씨에게 중형을 선고한 바 있다. 그는 김명수 대법원장 시절인 지난 2022년 수사 정보를 넘겨 받는 대가로 경찰관의 청탁을 들어준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은 전 시장에게 1심에서 징역 2년을 선고하고 법정구속했다.
또 지난 2월 대장동 개발 사업과 관련해 성남시의회 의장에게 성남도시개발공사 설립 조례안 통과를 청탁한 혐의로 기소된 김만배씨에게 징역 2년6개월을 선고한 데 이어 지난 6월에는 이 전 부지사의 대북송금 외환거래법 위반 사건 1심에서 징역 9년6개월을 선고했다. 신 부장판사가 심리를 진행한 사건들은 재판 지연 없이 대부분 신속한 판단이 내려졌다.
◆법조계 "'신속 재판' 강조한 대법원장과 보조 맞춰야"
법조계는 조희대 대법원장이 '신속 재판'을 강조해 온 점을 언급하며 이 대표 사건을 맡은 재판부는 재판 지연을 경계하고 신속 심리 원칙을 지켜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더욱이 내년 2월에는 법원 정기 인사가 예정돼 있어 재판부 교체 가능성이 있는 만큼 더 이상 재판을 지체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동현 법무법인 신진 변호사는 "일반 형사 피고인은 재판에 두 번 정도만 안 나가도 바로 법정 구속하는 게 일반적인데 이 대표 경우를 보면 법원이 미온적인 태도를 보이고 있는 것 같다"며 "법 앞에서는 모두가 평등해야 하고 조 대법원장이 신속 재판을 강조한 만큼 재판부도 '신속하고 공정한 재판'이라는 사법부 본연의 임무를 수행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검사 출신 한 변호사는 "일반인들은 형사재판 절차를 잘 모르기 때문에 '폐문부재' 등을 사유로 소장을 접수하지 못하는 경우는 실무에서 드문 일"이라면서도 "재판부도 왜 이런 일이 발생하는지 이유를 잘 알고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최건 법무법인 건양 변호사도 "공직선거법 사건에서 변호인을 선임하지 않는 것은 '의도적인 전략'으로 보이고 대북송금 사건에서 법관 기피를 신청한 것도 마찬가지"라며 "의도적으로 법 테두리 안에서 재판 지연을 위해 악용하는 전형적인 수법인 만큼 재판부가 주의를 주는 등 신속 재판을 위해 노력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조 대법원장은 지난해 12월 취임식에서 "모든 국민은 신속한 재판을 받을 권리를 갖는데도 법원이 이를 지키지 못해 국민의 고통을 가중 시키고 있다"며 재판 지연 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야 할 우선 과제로 지적했다.
조 대법원장은 지난 9월 '제10회 대한민국 법원의 날' 기념식에서도 "재판 지연의 골이 깊었던 만큼 그것을 해결하기 위해 걸리는 시간 또한 적지 않을 것이라 사료 되지만 우리 모두 새롭게 각오를 다지고 충실하고 성실하게 자신의 직무를 수행해야 할 것"이라고 촉구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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