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 탄핵 소추안이 국회를 통과한 가운데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를 중심으로 한 야권이 헌법재판소를 향해 전방위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다.
윤 대통령 탄핵 심판을 최대한 서둘러 진행하라는 것인데 정치권과 법조계 안팎에서는 자신의 범죄 혐의에 대한 재판에는 특별한 사유도 없이 불출석을 일삼으며 재판을 지연 시키고 있는 이 대표가 '내로남불식' 주장을 펴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16일 법조계 등에 따르면 헌재는 이날 윤 대통령 탄핵 심판 사건과 관련해 첫 재판관 회의를 열고 주심 재판관을 결정한다. 헌법연구관들로 구성되는 법리 검토 TF(태스크포스) 논의도 이뤄질 전망이다. 헌재는 사건 접수 후 180일 이내에 결론을 내려야 한다.
하지만 헌재가 본격적인 논의에 착수하기 전인 15일 이 대표는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헌법재판소를 향해 "윤 대통령의 파면 절차를 신속히 진행해 달라"며 압박에 나섰다.
현재 헌재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는 시민들이 올린 탄핵안 관련 글들이 넘쳐 나는 상황이다. 이날 오전 9시 기준 헌재 홈페이지 자유게시판에는 약 3만5,000여 개의 탄핵안 관련 글들이 쏟아졌다. 시민들은 각자의 의견을 담은 글을 경쟁하듯 게시하고 있다.
탄핵 찬성과 반대 측으로 나뉜 시민단체도 각각 대규모 집회를 열고 헌재를 향해 목소리를 낼 예정이다. 진보 성향 '촛불행동'은 탄핵 심판이 마무리될 때까지 매일 오후 7시 헌재 앞에서 촛불문화제를 열기로 했다. 보수 성향 단체들 역시 헌재 앞 집회를 검토 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고의 재판 지연 논란' 李, 헌재 압박할 자격 있나"
법조계에서는 이 대표가 헌재에 '탄핵 신속 처리'를 요구한 데 대한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고의 재판 지연의 달인(?)이 할 이야기는 아니라는 것이다.
이재원 한반도 인권과 통일을 위한 변호사모임 회장은 "원론적으로 모든 재판은 신속하게 처리하는 것이 맞다"면서도 "자신의 재판은 한없이 미뤄온 이 대표가 양심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떻게 그렇게 얘기하는가"라고 꼬집었다.
최건 법무법인 건양 변호사도 "이 대표가 자신의 공직선거법 재판에서 신속한 재판 진행을 위한 '6·3·3 원칙'을 깼는데도 불구하고 '남의 재판은 빨리 처리돼야 한다'고 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비판했다.
이 대표가 정작 본인 재판 진행에는 비협조적으로 나오면서 이른바 '6·3·3 원칙'이 지켜지지 않았다는 지적이다. 앞서 조희대 대법원장은 재판 지연 해소를 위해 선거사범 재판은 1심은 6개월, 2심과 3심은 각 3개월 안에 마무리할 것을 주문한 바 있다.
실제 이 대표의 공직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은 검찰 기소 이후 1심 심리에 무려 2년 2개월이 소요됐다. 공직선거법이 규정하는 '1심 6개월 이내' 원칙을 크게 상회 하는 기간이다.
조상규 법무법인 주원 변호사는 "야당이 헌법재판관 지명에 대해 여당과 합의하는 것을 늦춰와 헌재의 '6인 체제'를 유지한 장본인이었다"며 "야당 대표인 이 대표가 (윤 대통령 탄핵안)신속 처리를 요구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고 설명했다.
◆민주당 몽니로 '헌재 3명 공석 사태' 초래
정원이 9명인 헌재가 '6인 체제’로 파행 운영된 것도 민주당의 책임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현 6인 체제 하에서는 추후 정당성 시비 등을 감안할 때 탄핵 심판을 진행해서는 안 된다는 의견도 다수다.
헌재법에 따르면 헌법 재판관 7명 이상이 출석해 사건을 심리한 뒤 6명 이상의 찬성이 있어야 위헌 및 탄핵 결정을 할 수 있다고 규정한다.
하지만 헌재는 현재 3명이 공석인 상태다. 지난 10월 재판관 3명이 퇴임했지만 여야가 추천 인원수를 놓고 갈등을 빚으면서 후임 재판관을 임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통상 국회 몫인 3명은 통상 여야가 1명씩 추천하고 나머지 1명은 양당 합의로 추천하는데 민주당이 거대 의석을 앞세워 3명 중 2명을 추천하겠다고 몽니를 부렸고 2달 가까이 인선이 미뤄지자 국민의힘이 민주당 요구를 수용했다.
최근 재판관 3인을 추천한 국회는 이달 중으로 임명동의안을 처리할 방침이다. 헌법재판소 재판관 후보자의 인사청문회는 이르면 오는 18일부터 사흘 간 진행된다.
앞서 헌재는 업무 마비 사태를 피하기 위해 6명으로도 심리가 가능하도록 효력정지가처분 신청을 인용했다. 이론상으로는 재판관 6명으로도 탄핵 심판 및 결정이 가능한 셈이이다. 다만 헌법학자 등을 중심으로 정당성 논란이 꾸준히 제기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결국 '6인 체제' '9인 체제' 등 구성 자체를 놓고도 결정의 정당성 논란에 휩싸일 가능성이 높은 셈이다. ◆'6인 체제' '9인 체제' 떠나 신속하되 공정성 잃지 말아야 이런 점들을 감안하면 헌재의 이번 결정은 국가의 리더십 공백을 최소화하도록 신속함을 원칙으로 하되 이보다 중요한 것은 '결정의 결함'에 대한 논란이 벌어지지 않도록 첫 단추부터 공정성에 최대한 방점을 둬야 한다는 것이 법조계는 물론 정치권의 중론이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결정의 경우 헌재는 헌법재판관 8인의 만장일치로 인용 결정을 내렸다. 만장일치 결정에도 불구 아직도 "박 전 대통령이 과연 탄핵 사유가 되느냐"는 논란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만큼 헌재 결정은 신속함 이상으로 결정 이후 논란을 최소화하는 것이 핵심이다.
당장 '6인 체제' '9인 체제'에 대한 논란은 물론 이를 구성하기 위해 한덕수 대통령 대행이 임명을 해도 되느냐에 대한 논쟁부터 치열하다. 민주당과 좌파 진영에서는 당연히 자신들이 추천한 2명을 추가로 그것도 빨리 임명해 유리한 구도를 만들려 할 것이다. 이를 통해 이재명 대표가 선거법 등 사법리스크에 휘말릴 공간을 최소화하고 싶어할 것이다. 헌재가 이들의 논리에 휘말리는 순간, 결정의 공정성에 의심을 받을 수 있다.
설령 이런 절차적 논란에서 벗어난다 하더라도 문제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특히 이번 결정의 핵심인 '내란죄 성립'에 대해서도 윤석열 대통령은 마지막 담화에서 강력하게 정당성을 주장했다. 윤 대통령은 12·3 비상계엄이 민주당의 입법 및 탄핵 폭주를 막기 위한 '정당한 통치행위'이고 내란죄가 성립될 수 있다는 점을 명확히 하고 있다.
박진식 법무법인 비트윈 변호사는 "내란죄가 성립하려면 국헌을 문란할 목적으로 폭동을 일으켰음이 입증돼야 하는데 이에 대한 신중하면서도 객관적인 법리 검토도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실제 헌재는 지난 2004년 고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심판 당시 탄핵 요건을 '공직자 파면을 정당화할 정도로 중대하게 헌법·법률을 위반한 경우'라고 규정했다. 법조계 한 관계자는 "국가 중대사에 대한 결정이기 때문에 헌법 재판관들이 섣불리 판단하려 하지 않을 것"이라며 "헌법재판관 공석을 메우지 않은 상태에서는 심리가 늦어질 수밖에 없다"고 전망했다. 전문가들은 "헌재 판결이 여론에 휘말릴 경우 절차적 정당성까지 훼손될 수 있다"며 신속함에 매몰되는 일은 없어야 한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한편 헌재는 논란이 지속되자 이날 '6인 체제'로도 윤 대통령 탄핵 심판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진 헌법재판소 공보관은 "6인 체제로도 윤 대통령의 탄핵 심판 심리와 변론 모두 가능하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재판관들은 변론 준비 절차를 통해 검찰과 경찰 등의 수사 기록을 조기에 확보한 뒤 신속한 심리에 나서기로 하고 선임 헌법 연구관을 팀장으로 10명 규모의 헌법연구관 태스크포스(TF)도 구성했다. 헌재는 1차 변론준비기일을 오는 27일 오후 2시에 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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