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유의 현직 대통령 내란 수사 국면으로 한국이 대혼란에 빠져든 가운데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탄핵정국이 빠르게 수습되지 않을 경우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심화할 수 있다는 글로벌 전문가들의 경고가 잇달아 제기되고 있다.
미국 경제매체 CNBC는 12일(현지시각) "한국 증시는 올해를 암울하게 보냈으며 다른 글로벌 증시보다 소위'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확대됐다"면서 "무엇보다 최근 정치적 격변은 이런 현상을 고착화할 것으로 예상된다"고 보도했다.
코리아 디스카운트란 한국 정치·경제·안보 등에 대한 투자자들의 우려로 한국 증시가 실제보다 낮은 밸류에이션으로 거래되는 것을 의미한다.
올 한 해 동안 한국 주식시장은 박스권 장세와 미국 대통령선거 불확실성, 금융투자소득세(금투세) 등의 악재를 겪으면서 국내외 투자자들의 외면을 받았다.
우리 정부는 2월 한국 증시 저평가 상황을 개선하기 위해 세제 지원 등 밸류업 정책을 내놨으나, 약 5개월 동안 반짝 상승세를 보였을 뿐 7월 이후 내리막을 걸었다.
9월 발표된 코리아 밸류업 지수 역시 기준이 모호하고 기존 지수와의 차별성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받으면서 실효성 논란이 계속되고 있다.
이처럼 경제정책에서 헛발질이 이어지면서 코스피 지수는 올해 7% 이상 떨어졌다. 지난달에만 3.92% 하락했고, 코스닥 지수도 8.73% 급락했다.
한국거래소에 따르면 코스피의 주가순자산비율(PBR)은 0.86배, 주가수익비율(PER)은 13.65배로 1년 전보다 하락했다. 코리아 밸류업 지수에 포함된 100개 기업의 PBR은 0.99배, PER은 10.29배에 불과하다.
반면 일본은 벤치마크지수인 닛케이225의 PBR이 1.44배, PER은 15.90배다. CNBC는 일본 증시가 부양책 시행 이후 급등한 반면 한국은 고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화려한 복귀로 미국과 일본, 중국 등 주요국의 주가가 일제히 상승곡선을 그린 반면 한국 증시만 나홀로 부진을 이어갔다.
문제는 3일 윤 대통령의 불법 비상계엄 선포로 한국 증시에 대한 투자자들의 우려가 더욱 커졌다는 것이다.
3일 이후 코스피는 모건스탠리캐피털인터내셔널(MSCI) 아시아(일본 제외) 지수 대비 2.3%P 더 낮은 성과를 기록하는 등 큰 타격을 입었다.
수사기관들이 윤 대통령을 '내란 수괴(우두머리)'로 지목하면서 수사망을 좁혀가고 있는 가운데 국정운영을 컨트롤할 리더십의 부재로 '밸류업 정책'도 타격을 입었다는 지적이 나온다.
뿐만 아니라 이 같은 상황으로 코리아 디스카운트 유발 원인으로 지목된 '재벌 기업의 지배구조로 인한 이중화'가 심화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CNBC는 재벌기업으로 삼성전자와 LG, SK, 현대를 꼽으면서 이들 기업이 한국 국내총생산(GDP)의 약 40%를 차지한다는 점을 지적했다.
미즈호증권의 비슈누 바라탄 아시아(일본 제외) 거시경제리서치 책임자(전무이사)는 10일 보고서에서 윤 대통령의 불법 계엄 시도로 한국 자산의 위험 프리미엄이 높아져 밸류업 정책에 차질이 빚어졌다고 밝혔다.
이어 "취약한 정부와 분열된 정치 속에서 윤 대통령을 축출하려는 노력은 증시 밸류에이션을 높이려는 정책적 노력을 약화하고 지연시킬 가능성이 크다"면서 한국의 권력 균형이 재벌들에게 유리하게 이동해 결국 코리아 디스카운트를 더욱 심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했다.
모닝스타의 아시아주식 리서치 책임자인 로렌 탄은 탄핵 정국 수습이 늦어질수록 투자자들이 한국 증시를 외면할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는 "리더십 교체가 길어질수록 투자자들이 관망할 가능성이 커질 것"이라며 "윤 대통령은 인기가 없다. 평화로운 리더십 교체가 이뤄진다면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스미토모 미쓰이은행의 아시아 거시경제 전략 책임자인 제프 응은 경기 침체와 수출 둔화, 원화 약세로 인해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내년에도 지속할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다.
그는 "투자자 신뢰는 중기적으로 회복될 수 있지만, 현재 단계에서는 국내 불확실성이 빠르게 해소될 가능성은 작아 보인다"고 진단했다.
한편 최상목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글로벌 신용평가사 3사(S&P, 무디스, 피치) 등과 컨퍼런스콜을 가졌다고 밝혔다.
회의에 참석한 3사 고위 관계자들은 "한국의 경제시스템이 강건하며 하방리스크가 현실화할 가능성이 없다"고 했지만, 정부가 긴급 화상회의를 자청해야 할 정도로 상황이 좋지 않다는 의미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앞서 S&P는 4일 "비상계엄 사태가 한국 신용등급에 실질적 영향은 없다"고 했으나, 상황은 암울한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6일 무디스는 "정치적 여파가 장기화하면 예산안과 같은 중요한 법안을 효과적으로 통과시키거나 경제 성장 둔화, 어려운 지정학적 환경, 인구 고령화로 인한 구조적 제약 등 수많은 과제를 해결하는 정부의 능력에 부담을 줄 수 있다"며 "정치적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이미 약세를 보이는 기업과 소비자 신뢰가 약화해 내수에 부담을 주고 경제 성장에 부담을 줄 수 있다"고 분석했다.
같은 날 피치도 "정치적 위기가 장기화하거나 지속적인 정치적 분열로 정책 결정의 효율성, 경제적 성과 또는 재정이 약화할 경우 신용 하방 위험이 증가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저성장과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인의 관세 전쟁 예고에다 정치 불안이라는 돌발악재까지 겹치면서 국가 신용등급까지 위협받고 있는 실정이다. 국가 신용등급이 떨어지면 정부·기업의 외화 조달이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 환율 급등 등으로 경제위기 우려가 고조된다.
무디스(Aa2), S&P(AA), 피치(AA-)는 한국에 사상 최고의 신용등급을 부여한 이후 거의 10년째 유지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 때도, 문재인 정부 5년 동안에도 흔들리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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