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가 24조 원 규모의 체코 신규 원전 건설사업을 수주하는 쾌거를 이뤄내면서 취임 초부터 '1호 영업사원'을 자처한 윤석열 대통령의 리더십이 주목받고 있다. 특히 세계 최고 수준의 우리 원전 기술을 고사 직전까지 몰고 간 문재인 정부의 '탈(脫)원전' 정책을 과감히 폐기하는 결단이 없었다면 이번 체코 원전 수주는 이뤄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우리 기업이 외국에서 수십년 간 쌓아온 신뢰도 이번 수주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尹 '세일즈 외교' 체코 원전 수주 쾌거
20일 정치권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당선 후 해외 순방에 나설 때마다 '1호 영업사원'을 자처하며 현지에 진출한 우리 기업의 사업 수주를 전폭적으로 지원했다. 이번 체코 원전 수주 과정에서도 윤 대통령의 이런 '세일즈 외교' 전략이 주요했다.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정상회의 참석을 위해 미국을 방문한 윤 대통령은 지난 10일(현지시간) 워싱턴DC에서 페트르 파벨(Petr Pavel) 체코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가졌다.
이 자리에서 윤 대통령은 체코 정부가 추진 중인 신규 원전 사업에 세계 최고 수준의 시공 능력과 뛰어난 가격 경쟁력을 갖춘 한국 기업이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될 수 있도록 힘을 실어 달라고 요청했다.
이날 총 7개 국가 정상과 양자회담이 예정돼 있어 파벨 대통령과의 만남 시간은 20분으로 제한돼 있었지만, 윤 대통령은 회담이 15분쯤 지난 시점에 원전 관련 얘기를 꺼냈다고 한다.
윤 대통령이 파벨 대통령을 만나는 동안 안덕근 산업부 장관은 체코를 비밀리에 방문해 윤 대통령의 '친서'를 페트르 피알라 총리에게 전달했다. 안 장관은 올해 4월 이후에만 세 차례 체코를 방문해 우리 원전의 우수성을 강조하며 체코 정부를 설득했다.
A4 용지 두 장 분량으로 구성된 친서에는 "양국이 원전 분야에서 협력하면 원전 산업의 제3국 진출에 도움이 되고, 체코의 원전 산업에도 큰 도움이 된다"는 내용이 담겼다. 또 "현재 주 4회로 운행 중인 체코 프라하-인천공항 직항노선을 주 7회로 늘리자"는 내용의 '항공협정'도 포함됐다.
이에 대해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이런 것들을 비롯해 양국 간 다른 분야에서도 (전방위) 협력을 하자는 내용이 친서에 담겼다"고 말했다.
윤 대통령은 자신이 직접 체코 대통령을 만나 정상외교에 나서고, 다른 한편으로는 안 장관을 '비밀 특사'로 체코로 급파하는 '투 트랙 전략'을 구사한 것이다.
체코 정부는 우리나라가 원전 수주를 위해 보낸 수만 페이지 분량의 자료를 200여 명의 전문가를 투입해 검토한 끝에 최종적으로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을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했다.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원전 대국인 프랑스는 안방인 유럽 시장에서 고배를 마신 것이다.
◆文이 박은 대못 탈원전 폐기 결단 '신의 한수'
이번 체코 신규 원전 건설사업 수주 과정에서의 최대 난관은 '문재인 정부의 탈원전 정책'이었다.
문재인 전 대통령은 민주당 당대표 시절인 2016년 12월 재난 영화 '판도라'를 관람한 뒤 "고리 지역 반경 30㎞ 이내에 340만 명이 살고 있어 만에 하나 원전 사고가 발생한다면 최악의 재난이 될 것"이라며 "원전 추가 건설을 막고 앞으로 탈핵·탈원전 국가로 가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대통령으로 당선되자 그대로 탈원전 정책을 밀어붙였다. 대통령 취임 후인 2017년 6월 고리원전 1호기 영구 정지 선포식에서 "준비 중인 신규 원전 건설 계획은 전면 백지화하고, 원전의 설계 수명을 연장하지 않겠다. 원전 정책을 전면적으로 재검토해 원전 중심의 발전 정책을 폐기하고 탈핵 시대로 가겠다"면서 '탈원전'을 공식화했다.
이에 따라 국내에 새로 짓기로 했던 신한울 3·4호기 등 신규 원전 4기의 건설 계획이 전면 백지화됐다. 이후 국내 원전 산업은 급격한 내리막길을 걸으며 고사 직전까지 몰렸다.
하지만 2022년 5월 윤석열 정부가 출범하면서 상황은 반전됐다. 윤 대통령은 문 정부의 탈원전정책 폐기를 공식적으로 선언하면서 2030년까지 '원전 10기 수출'을 국정 과제로 제시했다. 고사 위기에 몰린 원전 생태계를 살리기 위해 정부가 전방위 지원에 나섰고, 중단됐던 신한울 3·4호기 공사도 재개됐다.
탈원전을 극복한 윤 대통령의 친원전 정책은 역대 최대인 24조 원 규모의 체코 신규 원전 건설 사업 수주로 이어지는 발판이 됐다. 이번 수주로 한국 원전 산업의 경쟁력이 2009년 아랍에미리트(UAE) 바라카 원전 수주에 이어 15년 만에 다시 한 번 세계 시장에서 입증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전날 '단 5년도 내다보지 못한 단견'이라는 제목의 글을 통해 "체코 원전 수주는 윤석열 정부가 원자력 발전 재건 선언 후 불과 2년 만에 이뤄낸 쾌거"라고 했다.
그러면서 "이와 달리 문재인 정부는 탈원전을 선언해 전력 수급을 불안하게 만들었고, 우리가 수십 년간 각고의 노력으로 키운 원전 생태계를 붕괴 직전까지 몰고 갔다"고 지적했다.
결국, 윤 대통령의 탈원전 폐기 결단은 '신의 한수'가 된 것이다.
◆"바라카 원전 보고 판단해 달라" … 한국 기업 신뢰 강조한 尹
윤 대통령은 지난 10일 파벨 체코 대통령과 정상회담에서 "바라카 원전 사업을 보고 판단해 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한국 기업이 납기를 확실히 지키고, 예산 면에서도 다른 나라에 비해 압도적인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을 어필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이 자리에서 "대한민국이 세계 최고의 시공 능력과 압도적인 가격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며 "수출입은행과 한국무역보험공사를 통한 금융 지원도 가능해 체코 원전 분야 발전에도 기여할 수 있다"고 말한 것으로 알려졌다.
원전 건설 사업의 경우 우리나라가 다른 나라에 비해 공기를 훨씬 단축하고, 비용을 상대적으로 적게 하는 데다가 특히 원전이 가동됐을 때 가동률이 다른 나라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윤 대통령은 바라카 원전 수주 당시 3명에 불과했던 UAE 원전 전문가가 수주 15년이 지난 현재 2000명이 활동하고 있다는 점도 강조했다고 한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지난 1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기자들과 만나 지난해 9월 피알라 총리와 회담한 내용을 공개했다.
한 총리에 따르면, 피알라 총리는 한국 원전의 경제성과 신뢰성을 높이 평가하면서 "특히 공사 기간을 정확히 지키는 능력에 아무 의구심이 없다"고 말했다고 한다.
또 유럽 다른 국가의 원전 건설 사업이 지연된 것을 예로 들면서 "비용이 애초 계획의 2배, 3배가 되고 날짜도 맞춰지지 않아 (해당국이) 굉장히 힘들어하는 것을 봐 왔다"며 "하지만 한국의 원전 기업들은 충분히 (공사를 계획대로) 해낼 수 있으리라는 데 대해 신뢰를 갖고 있다"고도 했다.
파엘라 총리는 지난 17일 신규 원전 건설사업 우선협상대상자로 한수원을 선정했다고 발표하면서 "모든 기준에서 한국이 제시한 조건이 우수했다"고 밝혔다.
한 총리는 "그간 윤 대통령과 기업들, 외교 채널이 '원 팀'으로 움직여 (체코 원전 수주) 성과를 냈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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