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느려서 다른 버스들이 추월하잖아요. 심야에도 이런데 낮에 운행하면 어떻겠어요?"
심야 자율주행버스가 4일 밤 부푼 기대감과 함께 전 세계에서 처음으로 정기 운행을 시작했지만 다소 기대에 미치지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느린 속도, 부족한 좌석, 입석 금지, 급정거 등 곳곳에서 문제점을 드러냈다.
본지는 이날 자율주행버스에 탑승하기 위해 노선이 시작되는 합정역 정류소에서 밤 11시10분부터 대기했다. 정류소에는 일찍이 버스를 찍으러 온 여러 취재진과 시민들이 섞여 있었다. '세계 최초' 정기 운행 타이틀을 가진 심야 자율주행버스에 탑승하는 '세계 최초' 승객이 될 것이란 생각에 다들 설레는 표정이었다.
밤 11시35분쯤 버스가 들어오자 취재진은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렀다. 시민들은 교통카드를 움켜쥔 채 버스에 탑승할 준비를 했다. 자율주행버스는 당분간은 무료로 운행될 예정이지만 교통카드를 태그해야 탑승할 수 있다. 요금은 0원으로 자동 처리되며, 환승할인도 받을 수 있다.
그러나 시민들의 기대감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깨졌다. 자율주행버스 내에 준비된 20여석이 가득 차자, 안전요원은 뒤늦게 탑승한 시민들에게 하차하라고 했다.
10여명의 시민들은 당황한 표정과 함께 그 이유를 물었다. 그러자 안전요원은 "자율주행버스는 입석이 금지돼 있다. 좌석이 가득 찼으니 하차 해야 한다"고 거듭 강조했다.
하차 여부를 두고 잠깐 소동이 있었지만 버스는 결국 출발했다. 일반 시내버스와 비슷한 듯 다른 듯한 모습에 승객들의 얼굴은 다시 호기심으로 차올랐다.
버스는 운행되고 있었지만, 기사는 손을 핸들에서 떼고 있었다.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 핸들과 가까운 무릎에 손을 올려뒀을 뿐이었다.
내부도 기존 시내버스와 차이가 컸다. 버스 앞 오른쪽 자리에서 안전요원이 실시간 도로 흐름을 컴퓨터로 분석하고 있었다. 혹시 모를 상황에 대비하기 위함이었다. 버스 앞 왼쪽에는 위아래로 1m 정도 크기의 검은색 물체가 있었다. 박스 형태의 이 물체는 자율주행버스의 심장과도 같은 모듈·센서의 집합체였다.
버스에 함께 탑승한 유진수 서울대 기계공학 박사는 "자율주행 차량 같은 경우는 인지 판단 제어가 중요하다"며 "박스 내에 있는 여러 모듈은 하나로 통합돼 실행된다. 각 모듈별로 운영되기 위한 소형 PC 등이 검은 박스 속에 장착이 돼 있다"고 설명했다.
최신 기술을 바탕으로 버스는 평화롭게 운행되는 듯 싶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다른 문제에 직면했다.
'덜컹'
천천히 달리던 버스가 황색 신호등 앞에서 급정거했다. 버스 내부에선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왜 갑자기 멈추지?" "버스 기사가 없었다면 진짜 무서웠을 거 같은데" "기술 오류 아닌가" 등의 반응이 나왔다.갑작스러운 급정거에 대해 유 박사는 "심층 분석을 해봐야 정확히 알겠지만 아무래도 딜레마존 때문에 발생한 일 같다"고 추측했다. 딜레마존(Dilemma Zone)은 녹색신호에서 황색신호로 바뀌었을 때, 운전자가 정지선 직전에 멈추려 해도 물리적으로 불가능함을 나타낸다.
유 박사는 "사람이 운전자인 경우에는 황색 불에서 지나칠지, 멈출지 직접 판단하지만 자율주행차량은 임의로 정차하게끔 돼 있다"며 "급정거와 같은 문제는 안정성 면에서 더 수정이 필요해 보인다"고 했다.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이 구간에서는 승객을 태우지 않겠습니다" 좌석에 여유가 없는 버스는 몇몇 정류소에서 승객을 더 이상 태우지 않고 그냥 지나쳤다.
세계 최초라는 대대적인 홍보에 긴 시간 동안 정류소에서 자율운행버스를 기다린 시민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일부 항의 목소리도 나왔다. "왜 안 태워주느냐" "이게 무슨 상황이냐" "자리가 이렇게 많은데 왜 그러느냐" 등 반발이었다.
입석이 안 되기 때문에 좌석이 없으면 탑승할 수 없는 자율주행 차량이기에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사전에 시민들에게 충분히 안내가 됐다면, 여유 좌석을 온라인으로 볼 수 있도록 했다면 발생하지 않았을 오해였다.
강현우(32·남)씨는 "광역버스는 앱을 통해서 버스 좌석이 몇 개나 남았는지 확인할 수 있다"면서 "차라리 그러한 방식을 활용하거나, 광역버스와 같은 (기종의) 모델을 자율주행버스에 적용했다면 더 낫지 않았을까 싶다"고 했다.
너무 느린 속도도 불편을 유발했다. 버스 속도를 알리는 전자 계기판은 41km를 가리켰다. 박정원(61·남)씨는 "너무 느려서 다른 버스들도 추월한다. 심야에도 이런데 낮에 운행하면 어떻겠느냐"고 불만을 드러냈다.
박성중(65·남)씨 역시 "자율주행버스인지도 모르고 탔다. 노선을 보니 집 가는 방향이라 승차했다"면서 "이 버스의 특징을 꼽자면 기존 시내버스보다 느리다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외에도 하차 시 교통카드 태그가 안 되거나, 정류소 안내 멘트가 안 들리는 경우도 있었다. 관계자들이 회차 도중에 수리하며 문제는 일단락됐지만 이 역시 미흡한 측면이었다.
불편은 비단 승객들만 느끼는 게 아니었다. 합정역에서 출발한 버스가 동대문역에서 회차를 기다리자 안내요원은 "(버스기사·안내요원) 두 명이서 할 일이 아닌데"라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는 "기사는 운행을 보조하고 안내요원은 운행 중 PC를 통해 도로 흐름을 파악해야 한다. 정류소에 다다르면 빈자리를 일일이 세어 승객을 태우고, 안전벨트 착용까지 확인해야 한다"고 하소연했다.
이 차량이 자율주행 차량이 맞는지 의심하는 눈초리도 있었다. 한 승객은 "진정한 자율주행 차량이라면 문 개폐도 기계가 해야 하는 것 아니냐"고 물었다. 이에 관계자들은 아무 대답도 하지 못하고 옅은 미소만 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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