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지극히 개인적인 소견 담은 담론
오만한 野, 풍자의 쓴맛 앞에 환골탈태하길
풍자‧패러디의 힘은 크다. 재치 있는 비틀기로 국민에게 카타르시스를 선사해 풍자 대상에 대한 비판 효과를 크게 배가(倍加)시킨다. 때문에 오늘날은 물론 중세에도 풍자‧패러디는 존재했다.
해서(海瑞‧생몰연도 1514~1587)는 명(明)나라의 청백리(淸白吏)였다. 보통 명대에는 장거정(張居正)의 사례처럼 유능한 관리라 해도 부정축재하는 게 관례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그러나 해서는 오로지 녹봉(祿俸)만으로 생활했으며 그마저도 사회 취약계층에게 아낌없이 나눠주곤 했다. 때문에 후일 그가 낙향해 모친의 환갑잔치를 열었을 때 고기반찬이 상에 오른 게 장안의 화제가 될 정도였다.
1549년 과거에 급제한 해서는 여러 지역에 부임하며 지현(知縣)‧주판관(州判官)‧호부상서(戶部尙書)‧병부상서(兵部尙書)‧상서승(尙書丞)‧우첨도어사(右僉都御史) 등을 지냈다. 얼마나 바른 소리를 잘했는지 그의 별명은 해청천(海靑天)이었다. 송(宋)대의 명판관 포청천(包靑天)에 빗댄 별칭이었다.
승승장구하던 해서는 1566년 호부운남사주사(戶部雲南司主事)에 임명됐다. 호부는 중앙관직으로서 해서는 비로소 천자(天子)에게 직언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됐다.
당시 황제는 암군(暗君)인 주제에 세종(世宗)이란 묘호(廟號)를 얻었던 가정제(嘉靖帝‧1507~1567)였다. 무능했던 그는 내부로는 간신 엄숭(嚴嵩)이 활개치고 밖으로는 북로남왜(北虜南倭‧북쪽의 여진‧타타르와 남쪽의 왜구)가 설쳐도 제대로 다스리지 못했다.
가정제 그 자신도 정사(政治)에는 손 놓고서 재산 불리기 및 측근들에 대한 가학적 괴롭힘에만 몰두했다. 불로불사(不老不死)의 비약을 만든답시고 “안 내놓으면 어디를 확 찢어버린다”며 어린 궁녀들 월경액을 채취하는 엽기적 행각을 벌여 임인궁변(壬寅宮變)을 자초하기도 했다. 임인궁변은 학대를 참다못한 16명의 궁녀가 가정제를 베개로 눌러 죽이려 한 초유의 시해(弑害) 미수사건이었다.
당연히 해서는 분기탱천(憤氣撐天)해 호부 인사발령 당해인 1566년 가정제를 준엄히 꾸짖는 치안소(治安疏)를 올렸다. 그런데 해당 상소는 고리타분한 비판으로만 채워진 게 아닌 이러한 내용도 포함돼 있었다.
“폐하께서 보위(寶位)에 오르신 후 백성들은 한 결 같이 입 모아 말합니다. ‘가정(嘉靖)의 사람은 집안이 가정(家淨)하다’”
이 말인 즉슨 “가정제 네놈 때문에 서발 장대 휘둘러도 거칠 게 없을 정도로 백성들 집집마다 텅 비어 있다” 즉 “무일푼으로 굶어죽고 있다”였다. 가정제 연호(年號)인 가정과 ‘집안이 깨끗하다’는 뜻의 가정이란 단어가 한자만 다를 뿐 발음이 비슷한 걸 노린 일종의 언어유희였다.
지금 시각으로는 다소 썰렁한 아재개그이지만 당대로서는 상식을 깨는 엄청난 파격이었다. 엄격 근엄 진지한 제국의 황제에게 이렇듯 통쾌하게 말장난 걸었으니 상소문 내용을 소문으로 접한 백관‧백성들은 입 틀어막고 킥킥거리거나 배꼽 잡고 나뒹굴었다.
그에 비례해 노기충천(怒氣衝天)한 가정제의 얼굴은 아재개그 소재감이 됐다는 분노에 울그락불그락 물들어갔다. 변태스럽게 궁녀들 쫓아다니던 가정제는 “해서 그놈을 당장 잡아들여 물고를 내라” 엄명했다.
그러나 카타르시스를 맛본 여론은 이미 기울대로 기운 상태였다. 좌우는 “해서는 이미 관을 짜두고 상소를 올렸습니다” 만류했다. 해서를 처형한다면 해서의 이름은 만고(萬古)의 충신(忠臣)으로 길이 남을 터이고 가정제 자신은 만고의 폭군(暴君)으로 기록될 터였다. 결국 해서 처벌은 투옥으로 마무리됐고 그마저도 가정제가 사망하자 재상 서계(徐階)에 의해 무혐의 처분돼 풀려났다. 석방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옥리(獄吏)들은 갖은 음식을 바리바리 싸들고 가서 해서를 축하했다고 한다.
최근 넷플릭스 신작드라마가 한 장면으로 인해 야당 지지자들로부터 거센 항의를 받고 있다고 한다. 9일 공개된 ‘살인자ㅇ난감’ 7화에는 형정국 회장이라는 캐릭터가 등장했다. 안경을 쓰고 백발을 뒤로 넘긴 형정국의 손녀 이름은 ‘형지수’였다. 극중 비리혐의로 수감된 형정국은 접견실에서 ‘초밥’을 먹었다. 죄수번호는 과거 성남시로부터 ‘대장동’ 아파트 부지 6개 블록을 공급받은 모 건설사의 수익금 추정 총액 4421억원을 연상케 하는 4421이었다.
넷플릭스 측은 ‘특정 정치인 패러디 차원은 아니다’고 일축했다. 그럼에도 야당 강성지지자들 사이에서는 해당 드라마 시청거부 운동 움직임이 발생한다고 한다. 그러나 많은 중도‧보수 시민들은 묻는다. “현 여당 대상 풍자‧패러디 작품들에는 그리 낄낄거리더니 왜 지금은 정색하고 내로남불인가”
그간 정치편향적 풍자에만 익숙하던 야당 강성지지층으로선 ‘살인자ㅇ난감’의 몇몇 장면들이 민감하게 받아들여질 수밖에 없긴 할 것이다. 풍자는 공정히 이뤄져야 하는 법, 국민은 야당을 대상으로 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권리가 있다. 앞으로 더 많은 작품의 신랄한 풍자를 기대하며 이를 계기로 야당이 그간의 오만함에서 탈피하길 바란다.
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email protected]
여당인 국힘당도 문제가 많지만 야당인 더불어민주당이야말로 정말 문제가 많다고 생각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