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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담] 클린스만 기용의 미스터리

오주한

말 그대로 지극히 개인적 소견의 스포츠 담론

졸전‧태만에도 협회는 침묵…국민 의구심 증폭

국민을 개돼지로 여기지 않는다면 입장 내놔야

 

고선지(高仙芝‧생몰연도 ?~서기 755)는 당(唐)나라의 고구려 유민 출신 명장이었다. 외국인으로서 안서절도사(安西節度使) 등에까지 오른 입지전적 인물이다. 신당서(新唐書)는 그에 대해 “무장답지 않게 용모가 수려하고 말쑥했다. 영민하고 도량이 넓었으며 말(馬)을 잘 타고 활을 잘 쐈다”고 기록했다.

 

교육부 산하 한국학중앙연구원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 의하면 고선지는 747년 소발륙국(小勃律國) 원정 때부터 이름 떨치기 시작했다. 소발륙국은 지금의 파키스탄 길기트(Gilghit) 지방에 있는 나라였다.

 

당시 토번(吐蕃‧티베트)과 사라센(Saracen)제국은 당나라의 서진(西進)에 맞서 동맹 맺고 동진(東進)하고 있었다. 행영절도사(行營節度使)로 발탁돼 1만 군사를 이끌고 출정한 고선지는 오식닉국(五識匿國)을 거쳐 토번족 전진기지인 연운보(連雲堡)를 격파했다. 그리고는 험준한 힌두쿠시(Hindu Kush)산맥을 넘어 마침내 소발륙국의 수도 아노월(阿弩越)을 점령한 뒤 사라센과의 유일한 교통로를 차단해 동맹을 와해시켰다.

 

이 1차 원정의 공으로 고선지는 홍려경어사중승(鴻臚卿御史中丞) 등의 벼슬을 하사받았다. 750년 2차 원정에서는 사라센과의 결맹을 꾀하는 석국(石國‧지금의 우즈베키스탄 타슈켄트 일대)을 격파하고 그 국왕을 생포한 공로로 개부의동삼사(開府儀同三司)에 임명됐다.

 

비록 이후의 탈라스(Talas)전투에서는 패했으나 승률로 따지면 고선지는 충분히 명장 평가를 받고도 남았다. 여담이지만 해당 전투를 계기로 동아시아의 제지(製紙) 기술이 서양에 전파됐다.

 

그러나 고위층 당인(唐人)들은 이 유능한 외국인 감독을 매우 시기‧질투했다. 구당서(舊唐書)‧자치통감(資治通鑑) 기록에 따르면 전임 안서절도사 부몽영찰(夫蒙靈詧)은 고선지의 활약에 배가 아픈 나머지 그를 “개똥 같은 고구려 놈”이라고 욕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고선지가 마지막 참형을 당했을 때도 그 배후에는 그에 대한 시기가 깔려 있는 듯하다”고 추측했다.

 

고선지는 755년 11월 발발한 안록산(安禄山)의 난 진압에 투입됐다. 적군의 기세가 만만찮은 것을 본 고선지는 군사를 물려 전략적 후퇴를 감행했다. 그러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감군(監軍) 변영성(邊令誠)은 상황을 몇 배로 부풀리고 온갖 거짓말을 더해 황제 현종(玄宗)에게 참소했다.

 

신당서 고선지전(高仙芝傳)에 의하면 현종도 마치 “드디어 때가 왔구나” 여긴 듯 고선지를 군중(軍中)에서 참하도록 변영성에게 명했다. 서역(西域) 정복의 영웅 고선지의 시신은 거적때기에 싸여 아무렇게나 버려졌다. 죽기 직전 고선지가 병사들에게 “원통한가”라고 묻자 당인‧고구려인‧색목인(色目人) 가리지 않고 많은 군사들이 “원통하다!”고 부르짖었다.

 

당 조정은 고선지의 후임을 물색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우리 중 상당수가 너도나도 공 세우려 하니 누구를 대장 삼을지 의견일치가 안 된다. 또 우리가 직접 나가 싸웠다가 패하기라도 하면 그 책임을 면하지 못한다. 그래서 대신 다 덮어쓸 외국인 감독을 쓰긴 써야 하는데 그놈이 너무 유능해서 이기기라도 하면 우리 모두가 모양새 빠지고 밥그릇 위태로워진다. 그러니 그냥 말 잘 듣고 무능한 놈 쓰자. 벼슬 주는 대가로 그놈에게서 수수료도 좀 받고” 담합(談合)이라도 한 듯 마찬가지로 외국 혈통인 가서한(哥舒翰‧?~757)을 발탁했다.

 

돌궐족(突厥族) 출신인 가서한은 양귀비(楊貴妃)의 일족인 간신 양국충(楊國忠)의 눈에 들어 승승장구하던 인물이었다. 그러나 군사적 재능은 고선지에 비하면 몇 수 아래였다. 게다가 음주가무 즐기다가 풍질(風疾)이 들어 장기 유급휴가 나서는 등 노는 것도 매우 좋아했다.

 

양국충은 현종을 부추겨 가서한이 요지를 지키는 대신 나가 싸우도록 명하도록 했다. 군사를 끌고 출정한 가서한은 좁은 길목에 대군을 몰아넣는 실책을 범했다. 심각한 교통정체 상태에서 안록산에게 습격당해 앞뒤로 포위된 가서한은 동관(潼關)으로 달아나 굳게 지키려 했다. 그러나 부장 화발귀인(火拔歸仁)이 배반하고서 그를 반란군에 팔아넘겼다. 안록산의 포로가 된 가서한은 절개를 지키는 대신 즉각 “천자(天子)를 알현하옵니다” 엎드려 투항했다.

 

당나라는 멸망 직전까지 갔다. 이 어처구니없는 작태에 분노한 선수들 즉 병사들은 “양귀비‧양국충을 당장 죽여라” 피난 가는 현종에게 요구했다. 분위기가 심상찮음을 깨달은 현종은 그제야 두려움에 떨며 양귀비에게 자결을 지시했다. 양국충은 병사들의 창칼 아래 다져진 고깃덩이가 됐다. 당나라는 ‘장병들의 추대’로 보위(寶位)에 오른 숙종(肅宗) 대에 이르러서야 겨우 기사회생(起死回生)에 성공했다.

 

졸장 중의 졸장, 먹튀 전문가라는 악평(惡評)이 각계에서 자자한 남자축구 국가대표팀 감독 위르겐 클린스만(Jurgen Klinsmann) 인선(人選)을 두고 이해할 수 없다는 목소리가 높다. 거스 히딩크(Guus Hiddink) 같은 유능한 외국인 감독이나 국내의 출중한 감독들도 많은데 말이다. 축구 관련 협회 고위관계자들은 클린스만 경질 등을 요구하는 여론에 귀 닫고 있어 축구팬‧국민을 우습게 아는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온다.

 

클린스만 기용의 문제점은 그가 지금까지 보여준 성적에서 고스란히 드러난다. 협회의 생명원천은 축구팬들과 국민의 관심과 사랑이다. 그 애정이 지금 증오로 변하고 있다. 협회는 입이 달렸다면 변명이라도 내놓고 지체 없이 국민적 요구에 부응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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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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