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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담] 친윤들의 난, 윤석열의 경고

오주한

말 그대로 개인적인 소견들을 써본 담론

우루산막부 등 요지부동에 尹 간접메시지

오닌의난 재현 우려도… “해당(害黨) 말라”

 

<“모든 천황 행위는 내각승인 필요”>

 

동서고금(東西古今) 막론하고 아무 기반 없이 오로지 남의 지원 업고 지존(至尊)이 된 인물 치고 끝이 좋은 사람은 거의 없다.

 

대표적 존재는 약 1000년이나 거의 일관되게 ‘바지사장’ 신세 못 벗어나는 일본 천황(天皇‧일왕)이 있다. 흔히들 천황가(家)를 두고 ‘세상에서 가장 호화로운 감옥’으로 표현한다. 1167년 헤이시정권(平氏政權) 출현 이래 2023년 오늘날까지도 천황은 실권(實權)이 없다. 심지어 미국 군정(GHQ)에 의해 천황의 인간선언이 이뤄진 1946년 이후론 재산도 ‘0원’이다.

 

일본 헌법 1조는 “천황은 일본국(日本國)의 ‘상징’”이라 못 박고 있다. 3조는 “국사(國事)에 관한 천황의 모든 행위는 ‘내각 조언‧승인’이 필요하다”고 하고 있다. 5조는 “황실전범(皇室典範‧황실에 관한 법률)에 따라 ‘섭정(攝政)’을 둘 수 있다”며 필요 시 천황을 노골적 허수아비로 만들 법적근거도 마련해놨다.

 

출처는 불분명하지만 일설에 의하면 일본 호무쇼(法務省‧법무부)는 “천황은 선한 존재이므로 의회 결정에 불복할 리 없다. 그럼에도 반항하면 ‘정신병’에 걸린 것 즉 미친 것이므로 섭정을 세운다”는 유권해석(有權解釋) 내린 적도 있다고 한다.

 

‘도장 찍는 기계’ 천황의 생활‧의전비용 일체는 ‘내각’ 소속 행정기관 궁내청(宮內廳)이 집행한다. 궁내청 장관은 ‘현대판 쇼군(將軍)’ 내각총리대신(內閣總理大臣)에 의해 임명된다. 만약 내각에서 예산지원 끊으면 천황가는 그 날로 손가락 빨아야 한다.

 

여성의 경우 마음대로 시집 갈 자유도 없다. 황족(皇族)이 아닌 이와 결혼하면 신적강하(臣籍降下) 원칙에 따라 평민신분이 된다. 평생 땀 흘려 돈 벌어 본 적 없는 천황가 여성들은 얼마 못 가 생계곤란에 시달리거나 콘크리트 정글의 비정함 맛보게 된다.

 

대표적 인물이 뉴욕 맨해튼(Manhattan)의 300만원 원룸 월세 감당 위해 변호사 시험에 연거푸 낙방한 사짜스러운 남편 대신 메트로폴리탄 미술관(Metropolitan Museum) 취업했던 고무로 마코(小室眞子)다. 마코는 품위유지비로 약 16억원을 일시불 수령할 수 있었으나 전국민적 지탄 앞에 포기한 바 있다. 이게 천황과 그 가족의 실제 처지다.

 

<천황가‧막부의 이전투구(泥田鬪狗)>

 

오늘날의 일본 헌법 5조스러운 행위가 과거 실제 벌어진 사례는 많다. 무로마치 막부(室町幕府) 3대 쇼군 아시카가 요시미츠(足利義満‧생몰연도 서기 1358~1408)는 왜구(倭寇) 토벌 및 감합무역(勘合貿易) 등 논의를 위해 수차례 명(明)나라에 사신 보냈다. 명 조정은 처음엔 황실이 아닌 막부 소속 사자 응대는 예에 맞지 않다며 내쫓았다.

 

그럼에도 요시미츠는 자신이 일본국의 실질적 지배자임을 인정받기 위해 사람을 계속 보냈다. 결국 1401년 건문제(建文帝)는 요시미츠를 일본국왕(日本國王)에 책봉했다. 천황이 두 눈 뜨고 멀쩡히 살아있는데 말이었다.

 

뛸 듯이 기뻐한 요시미츠는 명나라 사절단을 지극정성 맞이하고 배궤(拜跪‧절하고 꿇어앉음)했다고 한다. 영락제(永樂帝)는 아예 일본국왕 관인(官印‧도장) 등도 내렸다고 한다. 쇼군‧간파쿠(関白) 등에 의해 추대된 허수아비 천황은 그저 숨죽이고 이 난(亂)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104대 천황인 고카시와바라(後柏原‧1464~1526)는 무로마치 막부가 예산지원 끊어버리자 쫄쫄 굶는 신세가 돼 즉위식도 취임 22년만인 1521년에야 거행했다. 막부 2인자 간레이(管領‧관령)였던 호소카와 마사모토(細川政元)는 “천황 그거 어차피 바지인데 뭐 돈 아깝게 취임식까지 하나” 눈알 사납게 굴렸다고 한다.

 

105대 천황 고나라(後奈良‧1497~1557)는 심지어 동네 꼬마들로부터 돌 맞는 신세였다고 한다. 고셋케(五摂家) 출신 등 일부를 제외한 귀족 출신 궁녀(宮女)들은 밥 먹고 살고자 매춘에까지 나섰다. 귀족 남성들은 칼잡이 사무라이(侍)가 돼 지방 다이묘(大名) 밑에 들어갔다. 고나라 자신도 어필(御筆)을 팔아 근근이 입에 풀칠했다.

 

무신정권 출현 이전이긴 하지만 쇼군에 버금가는 세도가(勢道家)였던 소가노 우마코(蘇我馬子‧551?~626)는 아예 천황을 갈아치우기도 했다.

 

스슌(崇峻) 천황을 강제로 옥좌 앉힌 우마코는 스슌이 자신을 견제하자 자객 야마토노아야노 아타이코마(東漢直駒)를 보내 죽여 버렸다. 이후엔 스슌의 조카딸 스이코(推古)를 새 천황으로 삼고서 그 뒤에 앉아 쇼토쿠 태자(聖德太子‧성덕태자)와 함께 조정을 쥐고 흔들었다. 우마코 등으로선 만세일계(萬世一系) 원칙만 지키면 됐다.

 

<영(令) 안 서자 전면 나서는 듯한 尹>

 

인요한 국민의힘 혁신위원장의 당 지도부‧중진‧친윤 험지출마 요구는 사실 윤석열 대통령 의중(意中)이었단 게 중론이다.

 

지지율이 나날이 제자리걸음(상세사항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이면서 ‘퇴임 대통령의 저주’ 앞둔 윤 대통령이 자신을 용산에 앉혀놓고 제 실속만 챙기려던 이들 속셈을 알아챈 것 아니냐는 추측이다.

 

당사자들은 의혹을 부인 중이지만 오늘(5일) 적어도 윤석열→인요한 하명설(說)만큼은 뒷받침할 발언이 나왔다. 윤석열정부 출범과 함께 대통령비서실 시민사회수석에 임명돼 이달 퇴임한 강승규 전 수석이 SBS라디오에서 “윤 대통령도 인요한 혁신위 성공을 바랄 것”이란 취지로 말한 것이다. 이를 두고 윤 대통령이 전면에 나서서 분명한 경고메시지 낸 것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그러나 김기현 대표 등 혁신대상으로 지목된 이들은 요지부동(搖之不動)이다. 김 대표는 최근엔 “내 고향 울산 가운데 왜 시비냐”는 취지로 목소리 높였다. 장제원 의원도 비슷한 발언을 내놨다. 김 대표는 자신을 당 공천관리위원장에 임명해달라는 인 위원장 요구도 일축했다. 5일엔 기자들로부터 ‘인 위원장을 만날 계획이 있나’ 질문을 받자 “당은 끊임없이 혁신해야 한다”고 답해 혁신위와는 별도의 혁신 추진 추측을 낳았다.

 

당 지도부‧중진‧친윤 등의 태도를 두고 반은 우스갯소리로 일본 막부‧다이묘에 빗대는 목소리가 있다. 김 대표의 경우 그의 지역구가 울산인 점을 들어 ‘우루산마치(蔚山町) 막부’로, 장 의원의 경우 부산 사상구인 점 이유로 ‘사상 다이묘’로 부르는 식이다.

 

반면 막부‧다이묘와 대립하는 천황 포지션 격인 윤 대통령을 두고선 뭐라고 불러야 할지 좋을까라는 여론이 있다. 윤 대통령이 막부‧다이묘의 난을 평정할지, 막부‧다이묘의 창칼에 무릎 꿇을지에 따라 호칭이 달라질 수 있다는 것이다. 일각에선 ‘정당제조기’ 등 별칭이 따라 붙는 윤 대통령 멘토 김한길 국민통합위원장을 통한 신당(新黨) 창당설도 흘러나온다.

 

누가 최후의 승자가 될지 흥미진진하지만 자칫 전국시대 야기한 오닌의 난(応仁の乱) 같은 결과 초래될까 우려하는 시선도 적지 않다. 권력싸움 해 동귀어진(同歸於盡)하든 말든 알 바 아니나 당(黨)과 민생(民生)까지 결딴내지는 말길 분명히 요구한다. 당과 국가는 그들의 사유물(私有物)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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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email protecte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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