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리스크' 그림자가 미국 대통령선거일(11월5일)이 다가올수록 짙어지고 있다. 대미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 최대 불안요인으로 자리 잡고 있다.
적확한 대응에 실패할 경우 자칫 희생양이 될 수도 있는 만큼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 가능성에 대비해 정교한 대책 마련에 속도를 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월스트리트에서는 미국 공화당 대선후보인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백악관 복귀 가능성을 크게 평가하고, 관련 투자처를 공략하는 '트럼프트레이드'가 강해지고 있다.
국제 금값은 연일 최고가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변동성이 커지는 만큼 대표적인 안전자산인 금으로 수요가 몰리고 있는 것이다.
다소 주춤하긴 하지만 가상화폐도 주요 관심 대상이다. 미국을 가상화폐 수도로 만들겠다는 자칭 '가상화폐 대통령' 트럼프 전 대통령의 친화적인 공약을 시장은 기억하고 있다.
트럼프 전 대통령의 당선 가능성이 커지면서 뉴욕증시, 금융시장도 요동치고 있다.
RBC블루베이 자산운용의 채권부문 최고투자책임자(CIO)인 마크 다우딩은 9월 말 이후 트럼프트레이드를 늘렸다. 그는 트럼프 관세 정책으로 인플레이션이 강화할 것이라는 전망에 근거해 달러 강세와 장기 국채 금리 상승 등에 베팅한다. 달러가 강세를 보이고 미국 수익률 곡선이 가파르게 상승해 장기 금리가 단기 금리보다 더 많이 오를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강달러 역시 체크포인트다. '트럼프트레이드' 장세가 이어지면서 미국 국고채 금리가 크게 올랐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당선될 경우 대규모 국채 발행, 관세 부과에 따른 인플레이션 심화 등이 환율을 끌어올릴 것이라는 전망이 깔려있다.
달러 가치를 보여주는 달러인덱스는 다시 104를 돌파했다. 8월1일 이후 최고치다. 달러 강세로 서울 외환시장에서 원화 환율도 1380원 선을 넘어 1400원까지 돌파할 기세다. 트럼프트레이드 효과가 안전자산 선호와 강달러에 반영된 것이다.
통상 측면에서도 적지 않은 압박이 예상된다. '미국 우선주의' 심화는 이미 예고됐다. 글로벌 공급망 재편을 둘러싼 암투 역시 치열해질 전망이다. 대외의존도가 높은 우리 체제로서는 견디기 힘든 도전적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
앞서 트럼프 전 대통령은 현재 3% 수준인 관세율을 10~20%로 올려 모든 수입물품에 물리겠다는 공약을 내놨다. '관세 폭탄'으로 미국의 만성 무역적자 구조를 뜯어고치겠다는 구상이다.
이 경우 대미 무역흑자에 의존하고 있는 우리에게는 심각한 타격이 될 수밖에 없다. 미국의 8대 무역적자국으로 부상한 우리나라에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중단을 무기로 무리한 요구를 할 가능성도 점쳐진다.
실제 지난달 24일 조지아주 유세에서 중국, 한국, 독일을 콕 짚어 거론하면서 "다른 나라의 일자리와 공장을 빼앗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이기도 했다.
게다가 중국산에 대해서는 60%의 관세를 부과하겠다면서 무역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을 보였다. 6년 전 본격화된 무역전쟁이 재점화하는 것이다.
이 과정에서 우리의 대중 수출을 통제할 수도 있다. 반도체 산업의 치명타가 우려된다. 인플레이션 감축법(IRA)도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다. 현 정부의 다양한 보조금으로 현지에 진출한 우리 기업들이 오도 가도 못 하는 신세가 될 수도 있다.
국제통상 전문가인 제프리 숏 미국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 선임연구원은 16일 세계경제연구원이 주최한 웨비나에서 '트럼프 리스크'를 경고했다.
그는 "트럼프가 재집권하면 한국과의 무역적자에 주목할 것"이라며 "방위비 분담금, 자동차‧반도체 관련 미국 내 투자, 수출 제한 등을 비롯한 무리한 요구를 다시 할 수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면서 한국이 응하지 않을 경우 과거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탈퇴 위협처럼 한미 FTA 중단 위협을 가할 수 있다고 전망하면서 "한국이 벼랑 끝에 몰릴 위험이 있다"고 우려했다.
안보 역시 심각하다. 트럼프 전 대통령은 15일 시카고 경제클럽 대담에서 "한국은 '머니 머신(Money Machins)'"이라면서 방위비 분담금을 100억달러(약 13조원)를 내라고 압박했다. 이는 한미가 협상한 '제12차 방위비분담금협정(SMA)' 금액 1조5192억원의 9배에 달하는 수준이다.
트럼프 전 대통령이 2030년까지 적용되는 해당 협정이 이미 타결됐다는 사실을 모를 리 없다. 그런데도 합의 내용을 무시하고 재협상하겠다는 의중을 드러낸 것이다. 한국을 '돈 버는 기계'라면서 '안보 무임승차국'으로 여기는 만큼 윈윈으로 끝난 협상을 깨고 원점부터 다시 시작할 것이라는 우려에 무게가 더 실리게 됐다.
방위비 협상 문제는 단순히 재정적 부담뿐만 아니라 안보 불안을 확대할 수 있다. 무인기 관련 북한의 도발 가능성, 북한의 남북 연결도로‧철도 폭파 등으로 한반도가 일촉즉발의 위기 속에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안보도 거래로 보는 트럼프 전 대통령의 인식이 여실히 드러난 셈이다.
게다가 그는 수시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의 친분을 강조해 재집권 후 북미 '직접 협상' 가능성도 커지고 있다.
북핵 동결을 대가로 대북 제재를 풀어주거나 사실상 북한의 핵보유국 지위를 인정해주면서 군축 협상에 나서는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이 경우 한미 동맹은 물론, 대한민국 안보가 뿌리째 흔들릴 수 있다는 목소리가 제기된다.
정부는 "한‧미 동맹은 흔들리지 않을 것"이라고 하지만, 트럼프 전 대통령의 '미국을 다시 위대 하게(Make American Great Again, MAGA)' 기조를 고려하면 다소 안이하게 보인다.
최근 미국 대선 판세가 미묘하게 트럼프 전 대통령 쪽으로 흘러가고 있다. 트럼프 2기의 통상 및 대북정책 불확실성에 확실히 대비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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