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정부가 바이든 미국 행정부와 지난달 체결한 제12차 한미 방위비분담특별협정(SMA)이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의 재집권으로 재협상 기로에 섰다. 미국의 전술핵 재배치나 미국 전술핵을 탑재한 미국 잠수함의 한미일 공동 운용 등을 조건으로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인상한다면 한국에 '남는 장사'가 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8일 외교안보계에 따르면, 한국은 지난달 4일 미국과의 12차 SMA 협상에서 첫해인 2026년 분담금으로 전년 대비 8.3% 증액한 1조5192억 원을 부담하고, 2027~2030년 분담금 인상률을 물가 상승률에 연동시키기로 합의했다. 그러나 SMA는 한국과 달리 미국에서는 국회 비준 동의가 필요 없는 '행정협정'이라 의회 동의 없이 대통령의 의사에 따라 뒤집을 수 있다. 트럼프 당선인의 재협상 요구가 현실화할 것이란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동맹국에 막대한 '동맹 청구서'를 내밀어 온 트럼프 당선인은 특히 재집권 시 주한미군 주둔 경비 중 한국 분담 몫을 대폭 증액하겠다는 의사를 여러 차례 밝혀 왔다. 트럼프 당선인은 지난달 한 대담에서 한국을 "머니 머신"(money machine)이라고 칭하며 "내가 대통령이었다면 한국은 연간 100억 달러(약 14조 원)를 (주한 미군 주둔 비용으로) 냈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100억 달러는 2026년 방위비 분담금의 약 9배에 달한다.
윤석열 정부와 바이든 행정부가 창설한 한미 핵협의그룹(NCG) 등을 비롯한 확장억제 강화는 트럼프 2기 행정부에서 '핵우산 청구서'로 돌아올 우려가 있다. 앞서 트럼프 1기 행정부는 SMA에 '작전지원'(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 비용)과 '대비태세'(미군의 한반도 순환 배치, 역외 훈련비용, 장비 및 이동 비용 등 한반도 외부 비용) 항목을 신설할 것을 요구했다.
육군사관학교 출신 안보전문가인 박휘락 국민대 교수는 뉴데일리에 "(트럼프 행정부의 이러한 요구는) 너무 포괄적일 뿐 아니라 우리 비용 부담이 너무 커질 우려가 있다.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10년 전 미국 항공모함 1척을 운용하는 데 우리나라 국방예산의 3분의 1에 해당하는 규모의 비용이 투입됐다. 우리의 필요에 따라 한반도에 미국 전략 자산을 전개한다면 우리가 다는 아니더라도 일정 부분 비용을 부담해야 할 것이고, 그 비용은 SMA가 아니라 확장억제에 관한 협정을 새로 만드는 편이 더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이 한국에 전술핵을 재배치하거나 전술핵 탑재 미 잠수함을 한미일이 공유한다면 방위비 분담금을 5~6배 올려줄 수 있다'는 식으로 한국 정부가 선제적으로 제안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동맹 경시론자인 트럼프 당선인이 밝혀온 한국의 핵전력 강화에 대한 전향적인 입장은 사실상 '동맹 방기'를 시사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역제안은 '동맹 방기' 우려도 어느 정도 해소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예산 제약으로 현대화를 포기한 일부 전술핵 무기를 방위비 분담금의 틀 안에서 현대화한 뒤 한국 방어를 위해 쓸 수 있다면 한미 모두에 '윈윈'이 될 수 있다. 미국은 196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까지 전략 및 전술핵무기 목적으로 B61 폭탄을 제작했지만, 예산 제약으로 인해 100억 달러를 들여 480여 기만 'B61-12' 구성으로 정밀타격이 가능하게끔 현대화했다. 이와 관련해 양욱 아산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뉴데일리에 "미국의 전술핵 현대화 사업은 거의 마무리 단계에 와 있다. 그런데 전술핵 일부는 비용 문제로 현대화하지 않고 폐기한다. 그 폐기하는 전술핵 일부를 방위비 분담금 형식으로 현대화하고 한국만을 위한 핵무기로 보유할 수 있다면 한국에는 '남는 장사'"라고 말했다.
한반도 내 전술핵 재배치가 가능한 선택지는 제주도뿐이고 제주도에 '바다 위의 사드'라고 불리는 해상 배치용 요격 미사일 SM3를 배치할 수 있지만, 이는 국민 정서상 현재로선 실현 가능성이 크지 않다. 일본에 미 전술핵을 전진 배치하기게 적합하지만 일본 국민들의 반핵 기조를 고려하면 이도 사실상 불가능하다. 박 교수는 "평양으로부터 3400㎞ 떨어진 미국령 괌에 핵무기를 전진 배치하고 한미일 전투기가 유사시 투발하는 방안, 그리고 전술핵 탑재 미 잠수함을 관련 국가들이 공유하는 방안을 검토해 볼 수 있다"고 제언했다.
만약 주한미군의 존재가 대한민국 안보에 필수 불가결하다면 한국이 주한미군 방위비를 전액 부담할 수 있다는 발상도 해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송의달 서울시립대 교수는 저서 '신의 개입: 도널드 트럼프 깊이 읽기'에서 "미국을 상대로 매년 30조~60조 원의 무역흑자를 내고 있으면서 1억~2억 달러의 분담금 증액을 망설이다가 더 큰 것을 놓치는 소탐대실의 잘못을 범할 수 있다"며 "매년 수조 원의 선심성 예산을 쓰면서 방위비 분담금은 1000억 원이라도 아껴야만 애국하는 것이라고 여기는 분위기도 되짚어 봐야 한다"고 말했다.
송 교수는 "2024년 4월 총선을 앞두고 우리나라 유력 정당이 총선 공약으로 내놓은 국민 1인당 25만 원씩 민생 회복 지원금에 들어가는 비용은 13조 원으로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10년 치가 넘는다. 문재인 정부 시절인 2020년 한국 정부가 뿌린 코로나 1차 재난 지원금은 14조 원에 달했다"며 "방위비 분담금 증액에는 극도로 인색한 한국 정치인과 정부가 자국민에게는 이처럼 돈을 펑펑 쓰는 행태를 미국도 잘 알고 있다"고 지적했다.
http://www.newdaily.co.kr/site/data/html/2024/11/07/2024110700294.htm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