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0 총선'이 열흘도 남지 않은 가운데 집값과 부동산 시장에 영향을 줄 만한 교통 관련 정책들이 수도권을 중심으로 잇달아 쏟아지고 있다. 여야를 막론하고 철도 지하화, 지하철 노선 연장사업, 수도권광역급행철도(GTX) 조기 착공 등 지역 내 현안을 공약으로 내세우며 표심 잡기에 나선 것이다.
일각에서는 기존에 추진하던 사업마저 지지부진한 상황에서 막대한 민간 재원이 필요한 사업들이 제 궤도에 오를 수 있을지는 지켜봐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지난 총선과 마찬가지로 4년이 흐르도록 구체화된 것은 아무것도 없이 또다시 '도돌이표 총선 공약'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2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민의힘 공동 선거대책위원장인 나경원 서울 동작을 후보는 지난달 22일 기자회견을 열고 서울 광화문과 강남역을 18분만에 이동할 수 있는 '서울 내부순환 급행 전용 철도망'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이 자리에는 이용호(서대문갑), 최재형(종로), 이종철(성북갑), 서명옥(강남갑), 함운경(마포을) 등 국힘 서울 지역 후보들이 함께 했다. 디지털미디어씨티(DMC)역, 공덕역, 신촌역, 흑석역, 이수역, 강남역, 삼성중앙역, 건대입구역, 왕십리역, 성신여대역, 광화문역 등 11개 역에 급행 철도를 놓겠다는 계획이다.
내부순환 급행 철도 11개 역을 순환하는 데에는 35분이 걸린다. 강남~광화문은 기존 지하철 노선을 이용하면 40분 걸리지만 새 철도로는 18분으로 단축된다. 강남~신촌 구간은 기존 42분에서 15분으로 단축된다. 성신여대~광화문 구간은 기존 30분에서 5분으로 줄어든다.
이 자리에 함께 한 후보들은 모두 자신들의 총선 공약으로 내세웠다. 총선이 끝나면 서울시, 국토교통부, 기획재정부와 함께 합동 신속 추진 TF(태스크포스)를 구성하고 3~4년 내 실시협약 체결과 10년 내 완공을 추진하겠다고 약속까지 했다.
이처럼 교통대책은 총선용 공약으로 단골 메뉴다. 국민들이 가장 피부로 와닿는 정책인데다 집값에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휘발성 강한 호재로 작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업계 한 관계자는 "경전철과 GTX 등 출퇴근 시간과 직결되는 교통 정책은 총선만 되면 어김없이 발표되는 공약"이라며 "실현만 된다면 당연히 지역민들 삶의 질은 획기적으로 바뀔 것이기 때문에 국회의원의 대표적 치적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대표적으로 서울 승부처로 꼽히는 '한강벨트' 동쪽에 위치한 광진을에 도전장을 낸 여야 후보들은 모두 교통 공약을 전면에 내세우고 있다. 특히 이 지역이 관심을 크는 이유는 직전 총선에서 고민정 더불어민주당 후보가 오세훈 당시 미래통합당 후보를 상대로 불과 2.5%포인트 차 진땀승을 거둔 곳이기 때문이다.
이번 총선에서도 격전지로 꼽히는 가운데 민주당은 고 의원이 재선 도전에 나섰고 국민의힘은 서울시 정무부시장을 지낸 오신환 전 의원이 출마했다.
고 후보는 노후화된 동서울터미널 복합개발을 전면에 내세웠다. 수서역 SRT를 강변역까지 연장하고 2호선 지하화와 동서울터미널 현대화를 연계한 복합개발로 광진구를 서울 동북권 교통허브, 랜드마크로 조성하겠단 구상이다.
이에 맞서 오 후보는 오세훈 서울시장과 호흡을 내세우며 도시정비 부분을 주요 공약으로 제시했다. 지역특성을 고려한 맞춤형 재개발로 주거환경을 개선하고 기업에 매력적인 지역 환경을 만들겠단 구상이다.
2호선 지하화, 도시철도 2개 노선 신설 등 교통공약도 내놓았다. 경의중앙선 직결(용산~서울숲~자양~강변~남양주), 서울도시철도 신설(청량리~구의·자양~잠실) 등 철도 소외 지역을 위한 도시철도 확충에 나서겠단 공약이다.
동부간선도로 지하화 사업도 주된 관심사다. 여야 가릴 것 없이 해당 공사 구간과 인접 지역에서 총선에 나서는 각 후보들은 저마다 동부간선도로를 지하화하겠다며 공약으로 내걸고 있다.
중랑을 지역구에 출마한 이승환 국민의힘 후보는 "민주당이 중랑에서 12년간 집권하며, GTX와 동부간선도로 지하화 및 망우역사개발 등 단 하나도 시행된 게 없다"고 지적하며 날을 세우고 있다.
이에 반해 현역 의원인 박홍근 민주당 후보는 올해 동부간선도로 지하화에 착공할 것이며 조기 개통을 공약했다. 이와 함께 GTX-E노선 신내역 정차 및 역세권 개발, GTX-B노선 상봉·망우역 복합역사 개발과 조기 개통, SRT 상봉역 연장 추진 등 다양한 교통 공약을 내놓았다.
노원을 지역구로 출마하는 현역 김성환 민주당 의원 역시 지난 총선 출마 당시 공약으로 이미 동부간선도로 지하화를 언급했다. 당시 김 의원은 중랑천 수변공원 조성을 위해 동부간선도로(창동~상계교)가 지하화될 것이라며 주민에게 약속했다. 바로 옆 노원갑에 출사표를 낸 같은 당 우원식 의원도 동부간선도로 지하화를 공약으로 낸 바 있다.
사실상 노원구는 전 지역에 걸쳐 동부간선도로의 영향을 상당히 받는 지역으로, 상습 정체 구간에 인접한 노원 주민들의 관심은 동부간선도로 지하화에 집중될 수밖에 없다. 그러다 보니 해당 지역에 출마하는 후보들마다 동부간선도로 지하화를 공약으로 내지 않을 수도 없는 셈이다.
다만 동부간선도로 지하화 공사처럼 큰 사업의 경우 사업 추진을 장담할 수 없어 공수표가 되기 일쑤다. 공사 주변 지역 주민들의 집단 민원이나 시민 단체의 반대에 부딪혀 무산되기도 한다. 민자사업인 만큼 사업성이 떨어지면 추가 부담금 우려도 크다.
이를테면 서울 지역구에 출마하는 후보들이 모두 내세우는 GTX-D·E·F 신규노선과 기존 A·B·C노선의 연장노선 추진에도 의문부호가 달린다. 강북 횡단 노선인 E노선의 경우 사업성이 떨어진다는 평가를 받는 기존 경전철 노선과도 일부 겹쳐 경제성 논란이 있다.
특히 순환선인 F노선은 도심 핵심역을 관통하기 보단 수도권 외곽을 순환하는데다 기존 선로를 활용하는 것이어서 고속철로서의 GTX 기능을 제대로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사업성에 민감한 민간 측이 GTX 노선과 도로 지하화에 대규모 투자할 자금 여력이 있는 지도 관건이다.
실제 위례신사선(위례신도시~강남 신사), 서부선(새절역~서울대입구역) 착공 역시 노선이 지나는 지역구의 후보들이 앞다퉈 공약으로 내세우고 있지만 서울시와 시공사 간 사업비 규모에 대한 이견이 커 장기간 표류 중인 상황이다. 서울 지하철 1호선 지하화 역시 2008년 총선 때 처음 나온 이후 선거철만 되면 단골로 등장했으나 아직도 실현되지 못했다.
이창무 한양대 도시공학과 교수는 "총선 때 나온 교통 개선책이 다 실현되는 건 불가능에 가깝다"면서 "민자 유치로 재원을 마련한다는 계획도 현실성이 낮고 바람직하지 않은 방향"이라고 말했다.
이런 가운데 서울시가 추진하는 무제한 교통카드인 '기후동행카드'가 이번 총선에서 수도권 민심의 새로운 변수로 떠올랐다. 서울시는 인접한 경기도 지자체로 기후동행카드 이용 범위 확대를 추진하고 있는데 인천시, 경기 김포·군포·과천시에 이어 고양시가 최근 다섯 번째로 합류했다.
서울시 대중교통을 월 6만원대에 무제한 이용하는 기후동행카드는 올해 초 출시 직후 큰 호응을 얻고 있지만, 민주당 소속 김동연 경기지사가 이끄는 경기도와는 사업 협의가 이뤄지지 않아 경기와 서울을 오가는 출퇴근 시민들이 사용에 제한을 겪고 있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국민의힘 경기·인천 지역 후보들도 '수도권 원패스' 추진을 공동 공약으로 내걸었다. 수도권 원패스는 서울·인천·경기에서 사용할 수 있는 무제한 교통정액권을 가리키는 것으로, 국토교통부 장관을 지낸 원희룡 공동 선거대책위원장이 지난달 말 선대위 회의에서 제안했던 공약이다.
경기 김용태(고양정), 이용(하남갑), 인천의 윤상현(동·미추홀을), 김기흥(연수을) 후보 등이 대표적이다. 모두 수도권 교통 정책에 민감한 지역에 출마한 후보들이다.
경기·인천 후보들의 공동 공약 추진은 같은 당 소속 오세훈 서울시장이 도입한 기후동행카드를 경기 등 다른 수도권 지역에서 쓸 수 없는 상황을 감안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더불어민주당은 공약집 가장 앞면에 '맞춤 교통패스'를 내세웠다. 기후동행카드와 유사한 개념으로 연령층과 주 사용 목적에 따른 다양한 패스를 도입하겠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청년(3만원), 일반국민(5만원), 노인(무료)을 위한 패스를 보급하는 한편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전용 패스와 시간제 패스도 도입하겠다고 공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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