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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담] 對홍준표 타초경사

오주한

말 그대로 지극히 개인적 소견의 담론

자중하고 지피지기‧상하동욕자승 해야

 

고래(古來)로 상대하기 어려운 존재를 꺾기 위한 전술 중 하나가 자극‧도발이다. 이는 병서(兵書)에도 적혀 있을 정도로 역사 깊고 효과 있는 술책이다. 삼십육계(三十六計)에 나오는 타초경사(打草驚蛇‧풀을 쳐서 뱀을 놀라게 한다) 등이 그것이다. 타초경사는 변죽을 울려 상대의 행동을 이끌어낸다는 의미로도 쓰이는 사자성어다.

 

타초경사 응용 사례는 20세기 서양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1989년 미국은 파나마를 전격 침공해 독재자 마누엘 노리에가(Manuel Noriega) 축출에 나섰다. 궁지에 몰린 노리에가는 파나마 주재 바티칸 대사관으로 피신했다.

 

교황청과의 외교관계를 고려해 총구 내린 미군은 대신 기상천외한 전술을 동원했다. 신성한 가톨릭 대사관 앞에 대형스피커를 설치한 뒤 24시간 ‘헤비메탈’을 틀어댄 것이었다. 아닌 밤중의 봉창 두드리기에 열 뻗친 대사관은 결국 노리에가를 내쫓아버렸다. 미국 내 돈세탁 등 혐의로 기소된 노리에가는 1992년 미 연방법원에서 징역 40년이 선고됐다.

 

동아시아의 대표적 타초경사는 사마의(司馬懿)에 대한 제갈량(諸葛亮)의 도발이다. 정사삼국지(正史三國志) 등에 의하면 제갈량은 서기 234년 10만 대군을 이끌고 마지막 북벌(北伐)에 나섰다. 그를 막아선 건 예외 없이 숙적 사마의였다.

 

위(魏)나라가 늘상 제갈량을 대적하는 방법은 나가 싸우지 않고 주요 길목에 진채‧성채 세워 굳게 지키는 것이었다. 이는 단순하면서도 촉군(蜀軍)에게 치명적이었다. 위나라는 장기전을 치를만한 국력이 뒷받침됐으나 촉한(蜀漢)은 한계가 있었다. 수차례 싸움을 걸다가 지친 제갈량은 사마의를 진영 밖으로 끌어낼 기상천외한 방법을 떠올렸다.

 

어느 날 촉의 사자가 사마의를 방문했다. 사자는 “장군께선 위풍당당한 삼군(三軍) 통솔자임에도 싸울 생각은 않고 벌벌 떨며 숨어만 있으니 아녀자와 다를 게 무엇 있소? 장군이 사내대장부라면 마땅히 저희 승상(丞相‧제갈량)과 승부를 겨루시오. 아니라면 세 번 절한 뒤 승상의 선물이나 감사히 받으시오” 말했다. 그리곤 사마의에게 ‘등이 훤히 패인 청담동식 신상 드레스 및 초호화 다이아 반지와 반짝반짝 황금 귀고리’를 선사했다.

 

21세기 오늘날이라면 사마의로선 “지금 여성비하 하는 거요? 여성단체에 신고해야지” 맞받을 수 있었다. 그러나 약 2천년 전 시대상에서 남자를 여자에 비유하는 건 당장 살인이 나도 할 말이 없는 어마어마한 모욕이었다. 사실 지금도 상당수 남성들에게 “기생오라비 같은 놈”이 치욕적인 건 마찬가지이긴 하다.

 

수도 없이 참을 인(忍)자를 새겼던 사마의도 사자의 그 한마디에 폭발하고 말았다. 사마의는 즉각 천자(天子)에게 표문(表文) 올려 “나가 싸우게 해주세요. 현기증 난단 말예요” 씩씩대며 졸라댔다. 황제 조예(曹叡)가 뜯어말렸기에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사마의는 재까닥 제갈량이 파놓은 함정에 걸려들어 상방곡(上方谷)의 불쇼가 현실화될 뻔했다.

 

사마의도 후일 제갈량이 사망하고 제정신으로 돌아오자 “천하의 기재(奇才)였다”며 라이벌의 능력을 인정했다. 제갈량의 시신을 모시고 퇴각하는 촉군을 사마의가 추격하지 않은 일화에서 사공명주생중달(死孔明走生仲達‧죽은 제갈량이 산 사마의를 쫓아낸다)이라는 말이 나왔다.

 

반면 진정한 현자(賢者)에게는, 바티칸 대사관 사건은 엄숙‧정숙함을 생명으로 하는 종교 관련이니 예외로 하고, 타초경사가 좀처럼 먹혀들지 않았다.

 

삼국지연의(三國志演義) 기준으로 제갈량은 어느 날 오(吳)나라와 촉한의 동맹을 위해 강동(江東)을 방문했다. 유비(劉備)와 연합해 조조(曹操)에게 맞서는 게 껄끄러웠던 강동 호족들은 일제히 제갈량에게 시비 걸었다.

 

강동이장(江東二張) 중 하나인 장소(張昭)는 “그대는 스스로를 관중(管仲)‧악의(樂毅)에 견줘왔다. 때문에 유황숙(劉皇叔‧유비)은 세 번이나 그대를 찾아가 초빙한 끝에 당신과 수어지교(水魚之交)를 맺었다. 그런데 보라. 유황숙은 당신을 얻고 나서는 도리어 이전보다 더 한심한 신세가 돼 유랑걸식 중이다. 관중‧악의가 그 따위 인물이었나?” 도발했다.

 

제갈량은 껄껄 웃으며 “황숙께서 형주(荊州)를 차지하는 건 식은 죽 먹기였으나 차마 동족(유표‧劉表)의 땅을 뺏을 수 없어 포기하신 것이다. 400년 전 한고조(漢高祖)께선 수차례 패한 끝에 항우(項羽)를 무찔렀는데 그 무슨 항우 산 뽑는 소리인가?” 받아쳤다.

 

장소가 깨갱 하고 기둥에 소변 지리자 이번엔 우번(虞翻)이 나서서 “조조에게 패해 우리에게 의지하러 온 주제에 큰소리가 과하다” 윽박질렀다. 제갈량은 허허 웃으며 “넓은 강동 땅과 강력한 수군(水軍)을 갖고서도 조조에게 항복하자 짖어대는 너희가 할 말은 아닌 듯하다” 응수했다.

 

설종(薛綜)은 “조조는 이미 강산의 3분의 2를 차지했다. 그를 따르는 게 천도(天道)”라고 했다가 “이런 역적놈” 한마디에 혈압 올라 쓰러졌다. 유학파 출신 엄친아 엄준(嚴畯)은 “너 무슨 경전(經典) 공부했냐” 거들먹거렸으나 “일자 바늘의 프로 낚시꾼 강자아(姜子牙‧강태공)는 대학 문턱에도 못 가봤다. 이 주입식 교육의 폐물아” 한마디에 데굴데굴 꿀꿀 멍멍했다.

 

국민의힘 맏형 격인 홍준표 대구시장의 발언‧행보를 두고 여당 내에서 초재선‧원외를 포함해 시비들이 쏟아진다. 필자가 보기엔 타초경사의 성격도 적잖이 있는 듯하다. 그러나 상대가 누군지 보고 술책 걸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적지 않다. 지금은 쓸데없는 에너지 낭비가 아닌 총선 참패에 책임질 자는 책임지고 상하동욕자승(上下同欲者勝)해야 할 때라는 당원‧보수층의 준엄한 명령을 국민의힘 일부 인사는 잊지 말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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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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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whiteheart
    2024.04.22

    누울자리 보고 발 뻗으랬다고

    상대 봐가면서 말을 해야지요~~

     

    글 잘 보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