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 그대로 지극히 개인적 소견 담은 담론
놀고(N) 해먹고(H) 기만하기(K)의 달인들
새천년 되니 별 이상 종자들 정계서 난동
모든 불화의 근원 왜구
지난달 말 일본 국영(國營) NHK 방송이 간논지(観音寺‧관음사) 주지 다나카 세츠료(田中節竜)의 이상한 주장 하나를 보도했다. “불상(佛像)이 (한국에서) 돌아와 지역민들이 안심하는 걸 보는 게 가장 큰 소원이다. 조기반환을 요구할 것이다”
동월 26일 우리나라 대법원1부는 대한불교 조계종(曹溪宗) 서산 부석사(浮石寺)가 ‘불상을 돌려 달라’며 제기한 유체동산(有體動産) 인도 소송에서 부석사 패소 판결을 확정했다.
이 사건은 2012년 10월 한국인 절도범 10명이 일본 나가사키현(長崎縣) 쓰시마(対馬) 간논지에 봉인돼 있던 금동관음보살좌상(金銅觀音菩薩坐像)을 훔쳐 국내로 밀반입하면서 시작됐다. 범인들을 곧장 체포됐으며 불상은 우리 정부가 몰수했다.
그러자 일본 정부는 ‘불법 반출된’ 자국 문화재를 돌려 달라고 한국 정부에 요구했다. 이에 부석사는 2016년 국가를 상대로 “왜구(倭寇)가 약탈해갔던 불상이므로 원소유자인 우리에게 돌려 달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새로운 갑(甲) 군림한 NHK
이 어처구니없는 사건의 단초(端初) 제공한 왜구는 널리 알려져 있다시피 13~16세기 한반도‧대륙과 일본 내부에서 집단으로 무전취식(無錢取食)한 도적무리다. 로닌(浪人‧낭인) 즉 주인 없이 떠돌며 칼부림이나 해대던 조폭들도 왜구에 상당수 가담했다.
13세기 열도는 극도로 어려운 처지였다. 1274년과 1281년 여원(麗元‧여몽)연합군은 대함대 이끌고서 가마쿠라막부(鎌倉幕府)를 잇달아 쳤다. 특히 2차 원정에선 멸망한 남송(南宋)의 10만 대군까지 가세해 그 기세가 어마어마했다.
쓰시마‧잇키(壱岐) 등을 연달아 초토화한 연합군은 혼슈(本州) 하카타만(博多湾)에 상륙했다. 당시 열도의 전쟁은 마치 서양기사 대결을 연상케 했다. 사무라이(侍)들은 잇키우치(一騎打ち‧일대일 대결)에 앞서 서로의 ‘고귀한 혈통’ 확인하고 통성명했다. 무기도 일본도(日本刀)가 아닌 활이 주력이었다. 게다가 지금도 일본 활은 느리고 무겁기로 유명하다.
반면 여원연합군은 기보병(騎步兵)‧궁수(弓手)‧포수(砲手) 등의 유기적 연계를 통해 체계적으로 싸웠다. 무기도 예리한 장창(長槍)‧도검(刀劍)과 각궁(角弓)‧화포(火砲) 등이었다. 당연히 습관대로 여유 넘치게 통성명 하러 나온 사무라이 대장을 시작으로 일본군은 줄줄이 박살났다. 막부의 고케닌(御家人) 다케자키 스에나가(竹崎季長) 의뢰로 미상의 화가가 그린 몽고습래회사(蒙古襲來繪詞)를 보면, 야차(夜叉)의 얼굴을 하고서 활 당기는 고려군과 홀로 말 타고 내달리는 사무라이가 묘사돼 있다.
가미카제(神風) 즉 기적적인 바람의 힘이나 빌어서야 겨우 침략군 물리친 열도는 14세기 들어 난보쿠초(南北朝‧남북조)시대까지 맞았다. 곡식 재고가 바닥을 쳤지만 여원은 열도를 돕지 않았다.
굶어죽은 시체가 쌓이자 “이 때다” 외친 원조 도적떼, 유랑민, 몰락 사무라이들은 세포조직 형태로 왜구를 형성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로빈후드식 의적(義賊) 따위가 아닌 무고한 내‧외국 백성들이나 학살‧약탈‧겁탈하고 무전취식을 당연히 여기는 등 ‘새로운 갑(甲)’으로 군림했다.
그 따위로 놀면서도 악행 정당화를 위해 “우리는 몽골‧고려제국주의자 원쑤들을 무찌르고 야마토(大和) 민족의 자주적 발전을 이루기 위해 싸우는 투사들이다” 식의 그럴싸한 이데올로기 내세워 자국 대중을 기만했다.
조선 중기 유학자 이항복(李恒福)의 백사집(白沙集), 태조실록(太祖實錄) 등에는 아기발도(阿其拔都‧아지발도‧생몰연도 ?~1380)라는 왜구 대장이 등장한다. 태조실록은 아기발도에 대해 “나이가 겨우 열대여섯인데 용모가 단정하고 고우면서도 사납고 날램이 비길 데 없었다” 기록했다. 백사집은 수양대군(首陽大君)의 역대병요(歷代兵要) 인용해 “고려 말 (한반도에 출병한) 아기발도가 ‘장차 금성(錦城‧나주)에서 말에게 여물 먹일 것’이라 소리쳤다” 기술했다. 물론 아기발도가 정말 실행했다는 뚜렷한 기록은 없다.
상술했듯 왜구는 해외에서 난동 부려 국가망신 야기함은 물론 자국민들 대상으로도 살인행각 서슴지 않았다. 결국 왜구는 1389‧1396년 고려‧조선의 쓰시마정벌에 협력한 무로마치막부(室町幕府) 쇼군(將軍) 아시카가 요시미쓰(足利義滿), 1588년 해적정지령 발동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豐臣秀吉), 조선통신사(朝鮮通信使) 재개를 애걸한 뒤 영접할 정도로 친(親)조선파였던 에도막부(江戶幕府) 등에 의해 완전히 박멸됐다.
대한민국 NHK는 언제 박멸되나
그간 NHK스런 행각 일삼으며 무전취식하고 이상한 사상이나 주장했던 전세계 ‘사짜’들이 철퇴 맞는 분위기다. 대표적 인물이 스웨덴의 자칭 환경운동가 그레타 툰베리(Greta Thunberg)다.
역대 타임지(TIME) 올해의 인물 최연소 인물로 선정될 정도로 잘 나갔던 툰베리의 직업은 사실상 ‘백수’다. 그는 2019년 125개국 2천여개 도시에서 적극적 기후변화 대응을 촉구하는 ‘학교 파업시위’ 등을 주도했다. 툰베리는 어린 나이에도 만인(萬人)을 내려다보며 ‘훈계질’ 나섰다.
허나 초창기 툰베리는 미국에는 바락바락 핏대 세우면서 정작 최대 이산화탄소 배출국인 중국에는 침묵했다. 남들에게는 일회용품 사용하지 말라 강제하면서 자신은 비닐봉지나 일회용 플라스틱을 대놓고 썼다. 환경을 위한다며 태양광 요트 타고 대서양 건너 뉴욕 유엔기후행동정상회의에 참석했으나 귀국 때는 비행기 탔다가 발각됐다. 2019년 12월에는 버젓이 열차 일등석을 이용했음에도 잠깐 기차바닥에 앉아 ‘빈곤 컨셉사진’ 찍었다가 마찬가지로 딱 걸렸다.
잠시 자중(自重)하는가 싶었지만, 어느새 뭘 어디에 썼는진 몰라도 무전취식 원천(源泉)인 후원금 떨어졌는지, 이달 12일 네덜란드 기후집회 연단에 올라서는 환경과는 아무 상관 없는 팔레스타인 지지연설 했다가 “정치발언 하지 말라” 항의 앞에 마이크 뺏기는 추태 보였다. 영국 데일리메일(Dailymail) 등은 “툰베리가 더 이상 순수한 환경운동가가 아니라는 비판을 듣고 있다” 진단했다.
필자도 물론 대한민국 산업화 시기 어쩔 수 없이 소외된 분들 있는 점 안다. 그러나 자칭 진보라면 귀감(龜鑑)이 되도록 열심히 일하면서 대한민국의 건설적 발전 위해 건전한 해결책 제시해야지, 반일(反日)팔이 등으로 무노동 폭식하면서 정작 5‧18 전야제 때는 일본스러운 룸살롱 가는 NHK스러운 왜구스러운 툰베리스러운 작태는 안 된다. 오죽 했으면 같은 운동권 출신들 사이에서도 “부끄럽다” 말이 나올까. 부끄럽지 않은 새천년이 되어야 한다.
오주한 前 여의도연구원 미디어소위 부위원장 [email protected]
고마움 미안함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이
휘젓는 세상
국민의힘도 언젠가부터 저런 걸 벤치마킹하더군요. 누구 때부터라 말하긴 참 그렇습니다만. 기가 막히고 코가 막힐 따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