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저가 공세와 기술 굴기가 속도를 내면서 한국 산업의 근간인 제조업이 흔들리고 있다. 중국은 주요 산업 전반에서 정부의 전폭적 지원 속에 빠르게 경쟁력을 끌어올리며 맹추격하고 있어 정부의 발 빠른 대책이 필요한 상황이다. 비상계엄과 탄핵소추 이후 사실상 리더십 공백기에 빠졌지만 '골든 타임'을 실기하지 않도록 특단의 대책을 발빠르게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중국은 미국의 전방위적 견제에도 '기술 굴기' 드라이브를 걸면서 철강, 정유, 화학 등 전통적인 중간재 산업을 넘어 반도체 등 첨단산업에까지 빠르게 추격하는 형국이다.
중국 업체들은 자국 정부로부터 막대한 보조금 등 전폭적 지원을 받아 미국의 강력한 제재에도 주요부문에서 자립화 성과를 내고 있다. 화웨이가 자체 개발한 6㎚(나노미터·10억분의 1m) 칩과 토종 운영체제(OS)를 탑제한 최신 스마트폰 '메이트 70' 등이 대표적이다.
한국과 기술 격차가 벌어졌던 중국은 한국을 턱 밑까지 추격하고 있다는 진단이 나온다. 한국은행은 '우리 수출 향방의 주요 동인 점검과 시사점' 보고서를 통해 향후 한국 수출은 중국의 자급률·기술경쟁력 제고와 시장점유율 확대, 미국 보호무역 강화로 증가세가 둔화할 것으로 내다봤다.
한국은행은 "중국은 정유‧화학‧철강 등 전통적인 산업과 함께 반도체, 신3양(전기차‧배터리‧태양광) 등 첨단산업에서도 공격적인 투자와 향상된 기술력을 기반으로 글로벌 영향력을 확대하고 있다"며 "구조적 제약요인들을 이겨내고 지속적으로 성장하려면 인재 확보, 첨단산업 육성, 고부가가치 서비스 육성, 수출시장 다변화, 외교·통상 분야 정책적 노력 등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업계에서도 중국 추격을 따돌리기 위해서는 정부와 국회가 신속히 제 역할을 해야 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경제계를 중심으로 경제 입법의 연내 처리와 경제 대책 마련 요구가 높지만 산업계의 염원과 달리 제 속도를 내지 못하면서 산업현장의 불신감도 높아지는 형국이다.
일례로 경제계가 수차례 촉구해온 반도체 특별법이나 K칩스법(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은 아직 국회 문턱을 넘지 못했거나 반쪽짜리 법안으로 통과됐다.
국회에는 보조금 등 재정 직접 지원과 주 52시간 규제를 적용하지 않는 것을 골자로 한 반도체 특별법이 발의됐지만 여야간 시각 차로 소관 상임위에 제자리걸음 하고 있다. 반도체 시설투자에 조 단위의 정부 보조금을 지원하는 미국과 대만, 일본 등 주요국과 달리 한국은 직접 보조금이 전무한 상태다. 그럼에도 비상계엄 사태 이후 논의는 전면 중단 상태다.
한국은 세액공제만 지원 중인데 여야가 합의했던 세액제율 상향 등 새로운 세제 혜택은 국회 본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K칩스법은 일몰 기한을 올해 말에서 3년 연장하는 내용만 겨우 통과돼 기업들의 큰 아쉬움을 샀다.
이에 대한상공회의소 등 경제 4단체들은 최근 국회를 찾아 주요 경제법안을 조속히 처리해 달라고 요청했다. 최태원 대한상의 회장(SK그룹 회장)은 "기업들이 경영에 전념할 수 있도록 경제정책만큼은 흔들리지 않고 추진됐으면 한다"며 "초당적 협력을 통해 무쟁점 법안만이라도 연내 통과시켜준다면 대한민국이 정상적으로 작동한다는 긍정적 시그널이 되고 거시지표에 대한 우려도 사라질 것"이라고 밝혔다.
특히 석유화학업계의 경우 정부 차원의 정책이 절실히 요구되고 있다. 석유화학 침체와 중국발 저가 공세, 고환율 삼중고에 시달리면서, 올해 상반기 '빅4' 석유화학 업체의 공장가동률은 이익의 마지노선인 평균 70~80% 선에 그쳤다. 석유화학업체들이 일부 공장 가동을 중단하거나 감원 등 각자도생에 나섰지만 사실상 생존 시험대에 내몰리면서 정부 차원의 적극적 대응이 시급해진 상황이다.
앞서 정부는 지난 4월 '석화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 협의체'를 출범시켰지만 이해관계자 간 의견 취합에 난항을 겪으며 구조조정 논의까지 나아가지 못했다.
석화업계는 오는 27일 열릴 것으로 예상되는 산업경쟁력강화 관계장관회의에서 '석유화학산업 경쟁력 강화 방안'이 발표될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여기에는 기업 간 인수합병(M&A)를 원활히 하기 위한 공정거래법 규제완화와 세제·금융 지원 등이 담길 것이란 관측이다. 지역사회의 요구가 높은 만큼, 여수 지역이 산업위기 선제대응지역으로 지정될지에도 관심이 쏠린다.
삼일PwC경영연구원은 보고서를 통해 "전방산업에 기초소재를 공급하는 기간산업인 석유화학산업이 흔들리게 되면 다른 산업까지 연쇄적으로 영향을 받게 돼 대한민국 산업 전체 밸류체인이 붕괴된다"며 "정부는 구조조정이 탄력을 받을 수 있도록 제도적 인센티브를 제공해야 하며 필요하다면 특별법도 제정해 파격 지원에 나서야 한다"고 제언했다.
김대종 세종대 경영학부 교수는 "경제에는 여야가 없는 만큼 여야와 정부는 긴밀히 협력해 현 위기를 극복해야 하며,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어 기업이 더 많은 이익을 낼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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