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전 대통령이 미국 트럼프 2기 행정부 출범을 앞두고 북미 대화 가능성이 거론되는 것에 대해 '한국 패싱'을 우려했다. 윤석열 정부의 대북 강경 정책이 계속되면 북한이 한국을 배제한 채 미국과 직접 대화에 나설 것이라는 주장이다. 그러나 집권 당시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이라는 조롱을 들은 문 전 대통령이 무책임한 훈수를 두고 있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나온다.◆"尹, 대북 정책 전환 안 하면 한국 패싱"
문 전 대통령은 13일 부산 APEC 누리마루에서 열린 '20회 한겨레-부산 국제심포지엄' 축사에서 "트럼프 2기 행정부가 북한 핵과 미사일 문제 해결을 위해 북미 대화 재개를 추진할 것으로 본다"며 "지금 같은 대결주의적 남북 관계가 계속된다면 북한은 우리 정부를 배제하고 미국과 직접 대화하고자 할 것이고, 미국도 그에 호응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한반도의 운명을 좌우하는 중대한 국면에서 한국이 패싱을 당하고 뒷전으로 밀려나 소외되는 상황에 부닥치게 되는 것"이라며 "앞으로 도래할 수 있는 대화 국면에서 한국이 소외되지 않고 당당하게 역할을 하려면 현 정부가 더 늦기 전에 대북 정책의 기조를 전환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덧붙였다.
문 전 대통령은 트럼프 2기 행정부가 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전을 추진한 뒤 러시아와 관계 회복에 나설 수 있다고 봤다. 그렇게 되면 미국이 러시아를 통해 북한과의 대화 국면을 조성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정부가)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의 종식과 함께 러시아와의 관계를 다시 정상화하고 협력 관계를 회복해 나갈 것을 염두에 두면서 지금부터 균형 있는 국익 외교를 펼쳐나갈 필요가 있다"며 "그런 흐름에 뒤처진다면 한국은 단지 대화 국면에서만 소외되는 것이 아니라 대화 국면의 진전에 따라 북한과 미국, 일본, 러시아 간의 관계가 개선되는 동북아 정세 속에서 남북 관계만 적대 관계가 지속되는 대단히 퇴행적이고 반역사적인 상황을 맞이하게 될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문 전 대통령의 이런 발언은 현 정부의 강경 일변도 대북 정책이 계속되면 동북아 외교전에서 한국이 배제될 것이라는 주장으로 풀이된다. 그는 "더욱 심각한 문제는 한국이 소외된 가운데 북미 대화가 재개되면 한국과 미국의 입장 사이에 괴리가 생길 수 있다는 점"이라고 했다.◆文, 재임 당시 '김정은 대변인' 논란
정작 문 전 대통령은 재임 당시 '혼밥 외교'로 논란을 일으킨 장본인이다. 그는 2017년 중국 국빈 방문 당시 10끼 중 8끼를 혼자 먹어 "외교 참사", "굴종 외교" 등의 비판을 받았다. 시간이 지난 뒤 문 전 대통령은 회고록에서 당시 논란에 대해 "외교를 후지게 만드는 일"이라고 반박했다.
문 전 대통령의 대북 정책도 실패에 그쳤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세 번의 남북정상회담과 북미정상회담을 성사했음에도 북한으로부터 돌아온 건 '특등 머저리', '삶은 소대가리' 등의 악담이었다. 무엇보다 문재인 정부는 가장 중요한 과제로 꼽힌 북한의 비핵화에 실패했다. '김정은이 비핵화 의지가 있다'는 문 전 대통령의 낙관적이고 안일한 대북 인식이 문제라는 지적이 뒤따랐다.
문 전 대통령이 북한의 핵무기 성격을 '방어용'이라고 말한 사실이 뒤늦게 알려져 그의 대북관이 다시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다. 허버트 맥매스터 전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회고록에 따르면, 문 전 대통령은 2017년 당시 마이크 펜스 부통령에게 "북한 김정은은 방어를 위해 핵이 필요하다고 믿었을 뿐"이라고 말했다. 사실상 북한이 대외적으로 밝힌 핵 개발 명분을 그대로 답습한 것이다. 문 전 대통령은 퇴임 후에도 '김정은의 수석대변인'이라는 꼬리표를 떼지 못했다.
문재인 정부에서 초대 대통령 비서실장을 지낸 임종석 전 실장은 최근 "통일하지 말자"고 주장해 여야 모두로부터 빈축을 샀다. 그의 발언은 북한이 지향하는 '반(反)통일 두 국가'를 수용하자는 취지로 해석됐고, 더불어민주당 내에서도 "반헌법적"이라는 목소리가 나왔다.
이에 대해 국민의힘 한 관계자는 문 전 대통령의 이날 발언에 대해 "북한과의 관계 개선을 도모하다가 일방적으로 무시당하고 우리 국민의 자존심을 짓밟는 소리를 들은 문 전 대통령이 본인의 과오는 반성하지 않고 훈수를 두고 있다"며 "최소한의 염치도 없는 몰지각한 행태"라고 비판했다.
◆'대북송금' 연루된 이재명, 文 정책 계승
야권 유력 대선후보인 이재명 민주당 대표의 대북관도 문 전 대통령과 크게 다르지 않다. 문 전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을 계승하겠다고 밝힌 이 대표는 최근 "이긴 전쟁보다 더러운 평화가 낫다"는 말을 거듭 설파하고 있다. 여권에서는 "평화를 가장한 굴종"이라고 비판했다.
이 대표는 지난 3월 "왜 중국에 집적거리냐. 그냥 셰셰(謝謝·고맙습니다) 하면 된다"고 말해 또 다른 '굴종' 논란에 휩싸였다. 이와 관련, 한동훈 국민의힘 대표는 "민주당의 대중국 굴종 인식이 다시 한번 확인됐다"고 꼬집었다. 북한군의 러시아 파병에 정부가 참관단 파견을 검토하자 "뭐 하러 남의 전쟁에 끼어드느냐"고 지적했다.
아울러 이 대표는 '쌍방울 대북송금' 사건에 연루돼 재판을 받고 있다. 그는 경기도지사 시절 이화영 전 경기도 평화부지사와 공모해 김성태 전 쌍방울 회장에게 자신의 방북 비용을 포함한 총 800만 달러를 북한에 대납하게 한 혐의를 받는다. 당시 '이재명의 경기도'는 유엔의 대북 제재 등 국내외 법과 규정을 피해 남북 교류 활성화를 모색했는데, 이 대표의 대북 정책 기조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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